본문 바로가기
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KIA가 로페즈를 포기하기 힘든 이유는?

by 카이져 김홍석 2010. 9. 25.

아퀼리노 로페즈(KIA. 35)는 설명이 필요 없는 지난해 최고의 투수였다. KIA에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고, 본인은 다승왕과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하며우승청부사로 자리매김하자, 시즌 후 각 팀들이 모두로페즈같은투수를 구하기 위하여 외국인 투수 영입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의 로페즈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부진이라기에는 지난해와 비교하여 롤러코스터의 폭이 너무 컸다. 전반기까지 로페즈가 거둔 성적은 1 8 1세이브. 단지 2년차 징크스라기에는 너무나도 혹독한 추락이었다.

 

여기에는 일단 본인의 잘못도 컸다. 지난해의 성공에 자만했는지 시즌 초반 체력적으로 준비가 덜된 모습을 보이며 구위가 떨어져있었고, 상대 타자에게 패턴까지 읽히면서 작년처럼 '언터처블'의 위용이 사라졌다.

 

하지만 로페즈만을 비난하기는 어려웠다. 원래부터 빈약하던 KIA 타선과 불펜의 지원은 더욱 열악해졌다. 로페즈의 올 시즌 타선지원율은 9이닝당 평균 4.25점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로페즈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2~3점밖에 뽑아내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다. 심지어 현장에서 지켜보던 팬이나 기자들조차도 유독 로페즈가 나오는 날 KIA 타선이 더욱 침묵하는 징크스를 의식할 정도였으니 본인이 체감하는 답답함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로페즈는 따르지 않는 승운에 평정심을 잃고 덕아웃에서의 거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며인심까지 잃었다. 외국인 선수라는 신분적 한계도 있었지만, 기물을 부수고 동료들을 질타하는 모습은 승부욕으로 미화하기에는 어려웠다.

 

작년처럼 팀 사정이라도 좋았으면 모를까.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팀 캐미스트리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일삼는 로페즈의 실망스러운 모습에그래도 로페즈인데...’하며 기대했던 언론과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지난해 로페즈가 나지완에게 한국시리즈 MVP를 빼앗기며 실망한 모습을 보이자 자발적으로 제작한 MVP 트로피를 선물하며 애정을 과시하던 KIA 팬들은그럴 바에는 아예 퇴출시켜라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KIA 구단은 실제로 로페즈의 거취에 대하여 고심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퇴출 카드만큼은 꺼내지 않았다. 성적은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고, 기량은 구위보다는 마인드의 문제이기 때문에 평정심만 회복하면 언젠가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을 것이라는 코칭스태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KIA가 올해 다시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경우,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올리며 역투했던 로페즈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던가. 로페즈는 시즌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서서히 예전의 위용을 되찾았다. 로페즈는 8월 이후 등판한 8경기 중 6번이나 7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퀄리티스타트도 6번이나 해냈다. 비록 팀은 포스트시즌에서 멀어졌지만, 시즌 막바지에나마 KIA 구단이 그토록 원하던 안정적인이닝이터의 면모를 회복하고 있다는 게 더 값지다.

 

무엇이 로페즈를 달라지게 한 것일까. KIA 구단측은 마인드의 변화라고 지적한다. “원래 실력은 나무랄 데 없는 투수 아니었나. 그런데 시즌 초반부터 여러 가지로 운도 안 따르고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마음이 조급해졌고, 몇 차례 감정조절에 실패하면서 상황이 더욱 꼬였다.

 

로페즈의 올 시즌 문제는 사실 구위보다는 심리적인 면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를 보면 제구력과 경기운영 능력은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 스스로 평정심을 잃었고, 수비나 불펜을 믿지 못해 성질을 부리기 일쑤였지만 최근에는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는 모습이 돋보인다.

 

시즌 막바지가 가까워오면서 본인도 나름 위기의식을 느낀 듯하다. 외국인 선수라고 해도 듣고 보는 눈과 귀가 있는데 자신을 둘러싼 여론이 어떻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다. 스스로 평정심과 집중력을 찾으면서 본래의 실력이 나오는 것이다.”

 

한때 멀어진듯하던 다음 시즌의 재계약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8월 초 로페즈가 상승세를 타던 시점에 당시 KIA 측은지금은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시기상조다. 일단 올 시즌이 끝난 뒤 냉정하게 시즌 성적과 향후 팀 재정비 여부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남은 기간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는데 기여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답변하여 여운을 남긴바 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서는 포스트시즌 탈락에도 불구하고 로페즈의 재계약 가능성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투수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상황에서 애증은 있지만 여전히 로페즈만큼 검증된 투수는 시장에 흔치 않다.

 

로페즈도 구단과의 재계약 의사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해와 비교하여 주도권이 구단에 넘어왔다는 것이 변수다. 양측이 적절한 수준에서 몸값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내년에 부활한 로페즈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만 다스릴 수 있다면, 여전히 로페즈만한 외국인 투수는 쉽게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KIA 타이거즈]

 

 

추천 한 방(손가락 모양)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로그인 없이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