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할을 치고도 ‘잘했네, 못 했네’라는 소리를 들어야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건 질투 아니면 높은 기대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타격머신' 김현수(두산)가 바로 그런 예다.
김현수에게 있어서 올 시즌은 실험적인 한 해였다. 생애 처음으로 4번 타자 보직을 맡으며 본격적인 거포 변신을 테스트해보기도 했지만 슬럼프에 빠졌고, 한때 2할대 타율로 추락하며 결국 타순이 원상복귀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타석에서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김현수 최대의 장점이던 선구안이 다소 약화되고 좌투수에게 눈에 띄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김현수의 최대 지지자였던 두산 김경문 감독마저도 “타석에서 예전만큼의 적극성과 집중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대만큼 타격이 풀리지 않자 지난 달 26일 대구 삼성전에선 애착을 가지고 있던 396경기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중단해야 했던 아픔도 겪어야만 했다. 또한 경기력 외적으로는 간간히 거친 경기매너와 팬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도마에 오르며 스타플레이어로서의 마음가짐 측면에서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수는 후반기 심기일전하여 3년 연속 3할대 타율(.317)을 기록했고, 자신의 한 시즌 최다홈런(24개) 기록도 넘어섰다. 지난해 100타점을 돌파했던 기록이 89타점으로 다소 줄어든 게 아쉽지만 “역시 김현수”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그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2년 연속 .357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타격왕과 최다안타왕을 두루 섭렵하고 거침없는 성장곡선을 그렸던 지난 두 시즌에 비교한다면 김현수에게 쏟아지던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많이 줄어든 편이다. 김현수의 성적은 류현진, 이대호, 홍성흔 등 몬스터 시즌을 보낸 선수들의 활약에 가려졌고, 팀순위도 일찌감치 3위를 확정지으며 드라마틱하게 주목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는 큰 경기에서 빛을 발한다. 팀이 가장 원하는 ‘해결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중요한 무대는 역시 포스트시즌이라는 사실을 김현수는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올 시즌 은퇴를 선언한 ‘양신’ 양준혁은 자신의 타격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후배로 김현수를 꼽았다. 물론 “지금 잠시 잘한다고 만족하지 말고 야구에 완성이란 없다는 자세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뼈있는 지적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타자의 눈도장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김현수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의 무게를 보여준다.
김현수는 8월 이후 경기에서는 다시 간간이 4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두산이 정규시즌 3위를 일찌감치 확정지은만큼 남은 경기에 대한 성적부담 없이 마음껏 원하는 배팅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컨디션과 자신감을 회복한 원인 중 하나다.
두산은 어느덧 가을잔치의 단골손님이 되었지만, 단기전에서는 언제나 주인공을 빛내주는 조연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두산과 그 팬들은 더 이상 단지 가을잔치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김현수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 반전을 노리는 두산에게 천군만마와도 같다. 두산은 그간 꾸준한 성적에 비하여 가을잔치에서는 많이 웃지 못했다. 특히 큰 경기에서 가장 믿었던 타선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침묵하며 아쉬움을 자아냈던 기억이 많다.
누가 뭐래도 결국 두산 타선의 기둥이자 해결사는 김현수다. 시즌 막판 순위를 일찌감치 확정 짓고 다소 무기력증에 빠진 두산 타선을 되살리는데 김현수의 부활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김현수 역시 최근 책임감을 의식한 듯, 가을잔치를 앞두고 한층 진중해진 모습이다.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극심한 부진으로 패배의 원흉이 되었고, 2009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홈런을 비에 도둑맞는 아쉬움을 곱씹기도 했던 김현수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자신과 두산의 명예회복을 위한 의지에 불타고 있다.
이번 가을에는 과연 김현수가 ‘가을의 전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차세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의 가을 행보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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