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롯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결정지은 최고의 수훈 선수는 가을잔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아닌, 이번이 포스트시즌 첫 경기였던 전준우였습니다.
언제나 항상 이 맘 때가 되면 들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포스트시즌 같이 큰 경기에서는 경험 많은 선수가 유리하다”
라는 말. 그 경험이라는 것은 베테랑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포스트시즌을 치러본 과거의 경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올해도 일부 야구 전문가와 팬들은 두산의 ‘포스트시즌 경험’을, 그 중에서도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이겨본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전문가와 팬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확실한 증거라도 있는지 말입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니 얼마든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스트시즌을 2번 이상 참가해 본 선수들의 3번째 포스트시즌부터의 성적과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참가한 선수들의 그 당시 성적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얼마든지 비교가 가능하죠. 직접 작업을 해서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그 작업의 분량이 워낙 방대할 것 같아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증거제시’가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행히 제가 아니더라도 할 일 없는(?) 미국의 야구 통계학자들은 그러한 작업을 지난 세월 동안 수 차례에 걸쳐 해왔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죠.
“포스트시즌에서 경험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건 아무런 근거 없는 편견에 불과하다. 경험이 있다고 더 잘하지도 않고, 없다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는다. 전체 선수의 ‘첫 경험 성적’과 ‘재 경험 성적’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첫 경험 성적’이 아~~~주 미세하게 더 좋다.”
그들은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나 ‘큰 경기만 되면 작아지는 선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표본이 적은 상황에서는 특별히 가을만 되면 펄펄 나는 것 같은 선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가을만 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선수도 있는 듯 보이지만, 표본이 늘어나면 날수록 모든 선수들의 포스트시즌 기록은 자신의 정규시즌 커리어 통산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죠.
물론 언제나 상위 5%와 하위 5%의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좀 특별하게 ‘가을을 타는 선수들’이라고 봐야겠죠. 유독 가을이 되면 잘하는 선수가 있고, 또 못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경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요. 단순한 개인차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반박을 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몇 번의 실제적인 예도 생각이 나시겠지요. 지난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의 이종범이 그랬던 것처럼,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의 센스 넘치는 플레이로 가을 잔치의 행방이 완전히 달라졌던 기억이 한두 번쯤은 있으실 테니까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기억은 수도 없이 많지요.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장면들이 생각이 납니다. 작년 한국시리즈 1차전의 영웅이 이종범이었다면, 7차전에 시리즈를 마무리한 주인공은 포스트시즌을 처음 경험해보는 나지완이었습니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의 우승을 견인하고 뒤이어 코나미컵에서까지 두각을 나타냈던 당시 19살짜리 애송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실 겁니다. 작년 준PO 1차전의 주역이었던 조정훈과 올해의 전준우는 포스트시즌 경기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처럼 ‘경험’이 가져다 주는 재산은 ‘실력’ 내지 ‘성적’과는 무관합니다. 단순히 이리저리 같다 붙이기 좋은 말일 뿐이죠. 언뜻 생각해보면 많은 경험이 유리할 것 같지만, 정말 그렇다면 야구가 그토록 어렵다는 말을 듣겠습니까?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쉽게 풀리지 않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라는 종목 아니던가요?
기자와 해설자들은 베테랑이 잘하면 “역시 경험이 중요해요!”라고 말하고, 신인이 잘하면 “신인의 패기가 빛났어요!”라고 말하고, 무명의 백업 선수가 날아다니면 “깜짝 스타의 등장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단순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처럼 상황에 따라 같다 붙이기 좋은 말일 뿐입니다.
포스트시즌으로 인한 부담감은 베테랑이라고 해서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눌리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더 자신의 의지를 담아 100%에 가까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느냐의 문제죠. 거기에 경험이라는 것이 끼어들 여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물론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요. 조금은 덜 긴장한다거나, 조금은 현장의 분위기에 잘 적응한다거나 하는 정도로 말입니다.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반드시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의 ‘실력’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선수에 따라 긴장을 많이 하면 안 풀리는 선수가 있는 반면, 오히려 적당한 긴장을 했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요. 경험이 그런 부분까지 커버해주지는 않습니다.
제발 포스트시즌만 되면 매년 나오는 그 ‘경험’이라는 추상적인 자산을 바탕으로 어디가 유리하다는 식의 예상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확실한 근거를 제시를 하던지 말이죠. 아무런 근거도 없이 편견에 사로 잡혀 ‘느낌에 불과한 경험이란 요소를 들먹여봤자, 아무런 설득력이 없습니다.
야구계에 널리 퍼진 ‘속설’ 가운데는 이처럼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맹신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와 같은 말을 반복하니, 다른 이들도 이것이 사실인 냥 알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죠. 현장에 있는 선수들까지도 이유 없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야구에 관련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바로 이와 같은 ‘근거 없는 속설’이 아닐까 싶네요.
포스트시즌에서의 승리를 가져다 주는 건, 이기고자 하는 의지와 100%의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그날의 컨디션입니다. 당장의 실력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 수도 없는 ‘경험’ 따위가 아닙니다. 두산이 이긴다면, 그건 그들의 ‘경험’ 덕분이 아니라 ‘뛰어난 실력’ 때문입니다. 롯데가 이긴다 해도 마찬가지죠.
오늘(30일) 밤에는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립니다. 김선우와 사도스키가 선발로 예고되었는데요. 과연 이번에는 양 팀 중 어느 팀이 더욱 승리에 목 마른 모습을 보이며,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지, 다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한 번 지켜봅시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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