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15일)부터 올 시즌 프로야구의 대미를 장식할 한국시리즈가 시작됩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가 유례없을 정도로 흥미롭게 진행된 터라, 올 시즌 포스트시즌은 특정 팀을 막론하고 야구팬 모두의 축제가 되고 있죠. 그리고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해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 이렇게 단 두 팀만이 남았습니다.
올 시즌 초반부터 내내 1위를 독주하며 끝내 한국시리즈 직행에 성공한 SK와 후반기에 엄청난 상승세를 타며 한 때 SK의 1위 자리를 위협한 삼성.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도 10승 9패로 팽팽했을 만큼, 이들은 올 시즌 최고의 팀다운 위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SK는 정규시즌이 종료된 후 3주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고, 반면 삼성은 두산과 5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간신히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낼 수 있었지요. 비룡과 사자가 맞붙는 올 시즌 마지막 대결 역시 또 하나의 명승부로 기억될 수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 김성근 vs 선동열, 양 팀 감독의 심리-신경전
현재 우리나라 프로야구 8개 구단의 감독들 가운데 가장 심리전과 신경전에 능한 이를 뽑으라면 당연히 ‘야신’ 김성근 감독을 첫 손에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역대 한국 프로야구의 감독들 중 가장 심리전을 잘 이용했던 사람은 유일한 V-10의 주인공인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었죠. 그 김응용 감독에게 사사받은 선동열 감독 역시 만만찮게 심리전을 잘 하는 편입니다.
이미 두 감독은 미디어데이 행사 때 양준혁이 벤치에 앉는 문제를 두고 전초전을 벌였습니다. 선동열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배려해주길 바랐지만, 김성근 감독은 ‘원칙대로’라는 말로 응수했죠. 결국 삼성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양준혁을 더 이상은 덕아웃에서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김광현을 덕아웃에 앉혀놓았던 김성근 감독이 이를 문제시 한다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전초전에서는 SK가 한 방 날리고 들어가는 셈입니다.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가 힘과 힘의 대결이었고,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가 집중력과 집중력의 싸움이었다면, 이번 SK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좀 더 세밀하고 치밀한 승부가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리즈 내내 감독들이 종종 등장해 이런 저런 항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K는 평소와 다름 없이 언제나 감독의 잘 짜여진 작전과 섬세한 야구를 통해 점수를 차곡차곡 쌓으려 할 것이고, 삼성 역시 이번에는 플레이오프와 다르게 좀 더 투수운용에 신경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오승환과 구자운이 복귀했으니, 선동열 감독도 자신의 뜻대로 투수진을 가동할 수 있겠지요.
앞선 두 번의 포스트시즌 시리즈는 감독의 존재감보다는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한국시리즈는 양 팀 감독의 지배력이 얼마만큼 선수단을 장악하고 있으며, 감독의 의도대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느냐의 여부가 좀 더 부각되지 않을까 싶네요. 김성근 감독의 그러한 치밀한 야구에 유일하게 비슷한 스타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감독이라면 그건 역시 선동열이겠지요. 어쩌면 이번 한국시리즈는 ‘한국형 야구’의 참 맛을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명승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1차전 필패’ SK, 이번에는 승리할까?
SK는 올해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지만, 작년까지 3번의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을 모두 패했습니다. 2007년에는 홈에서 2연패 후 4연승으로 우승, 2008년에는 1차전 패배 뒤 2~5차전을 싹쓸이 하면서 우승, 2위로 올라간 작년에도 원정에서 치른 1,2차전은 전부 졌었죠. 2연패 후 리버스 스윕으로 장식한 작년 플레이오프까지 합쳐서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SK는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 번도 1차전을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2차전까지 놓고 봐도 8경기 중 고작 1번을 이겼을 뿐이지요.
묘한 징크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4번의 시리즈 가운데 3번을 이겼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작년 한국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3번은 모두 ‘기다리는 입장’이었죠. 올라오는 팀을 상대할 경우, 보통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경기 감각의 저하인데, 김성근 감독의 SK는 1,2차전을 패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경기 감각을 회복하고 결국 그 시리즈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SK가 올해는 1차전에서 승리를 차지하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까요? SK의 1차전 선발은 김광현, 과거의 미숙한 모습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급 에이스로 성장한 바로 그 김광현입니다. 반면, 상대 선발은 외국인 선수인 팀 레딩이죠. 메이저리그 10승 투수 출신이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분명 실망스런 수준이었습니다.
올 시즌 김광현은 정규시즌에서 삼성을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5경기에 선발 등판해 4승(1패)으로 7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고, 방어율도 1.31로 가장 낮았으며, 탈삼진도 40개로 가장 많은 개수를 기록했습니다. 유독 삼성전에 강했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안타율이 .161에 불과하니 말 다했지요.
김광현이 ‘기대대로의 피칭’만 해준다면 1차전 승리는 무난할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삼성 투수진을 두들기며 4연승 스윕의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죠. 김광현은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선발로 나왔다 두산 랜들과의 맞대결에서 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팀의 에이스답게 기선제압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오승환의 합류, 얼마나 도움될까?
삼성의 한국시리즈 엔트리는 플레이오프 당시와 비교해 딱 2명만 달라졌습니다. 외국인 투수인 크루세타와 백업 포수 채상병이 빠지고, 대신 오승환과 구자운 2명의 투수가 새로 합류한 것이죠. 구자운의 활약도 기대가 되지만, 역시 눈길을 끄는 주인공은 오승환입니다.
최근 2년간의 활약이 다소 미미하다고 해도 오승환은 여전히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국내 최고의 불펜 에이스입니다. 2005년 데뷔와 더불어 선동열 감독의 신생 삼성의 주역이 되어 2번의 우승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고, 그때부터 2008년까지의 4년간은 ‘역대 최고의 마무리’를 향해서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지요. 작년부터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올해도 14이닝을 던진 것이 고작이지만, 오승환의 컨디션이 90%이상 회복되었다면 SK로선 부담스런 상대가 하나 늘어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승환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후 달라진 2007년 이후의 SK를 상대로 통산 21경기에 등판해 2.33의 방어율을 기록 중입니다. 11번의 세이브 찬스를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두 성공시켰고, 피안타율도 .149에 불과하죠. 현재 SK의 타자들 가운데 오승환을 공략하는데 재미를 본 선수는 거의 없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오승환은 정근우, 박경완, 박정권, 박재상, 최정, 김강민, 김재현, 나주환 등 SK의 주전 타자 8명을 합계 31타수 1안타(유일하게 최정이 7타수 1안타)로 침묵시켰습니다. 그나마 2개의 안타를 모두 홈런으로 기록한 박재홍(6타수 2안타 4타점)과 조동화(4타수 2안타) 정도가 강점을 보였을 뿐입니다. 오승환이란 존재는 이렇게나 SK에 큰 부담이 되는 존재입니다.
수술 후 이제 갓 1군 경기에 복귀한 오승환을 곧바로 마무리로 기용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셋업맨으로는 등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돌부처’라 불릴 정도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특유의 돌직구를 마구 뿌려대는 오승환의 강심장이라면, 포스트시즌에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상대가 두산이었고, 또한 유독 선발진이 일찍 무너졌으니 안-정-권 트리오로도 버티지 못했을 뿐, 삼성의 불펜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거기에 오승환이 가세했다는 것은 훨씬 더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불펜 운용이 가능해졌다는 뜻이지요. 선동열 감독이 데뷔 이후 보여준 투수 운용의 중심축은 어디까지나 오승환이었고, 그가 돌아왔다는 것은 적어도 심리적인 면에서는 삼성 투수진이 100% 전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체력적 열세인 삼성이 우승하기 위해선?
사실 올 시즌 정규시즌 동안 양 팀이 보여준 전력은 거의 백중세였습니다. 시즌 전체를 통해 드러난 전력도 그렇고, 서로간의 맞대결에서 보여준 힘도 거의 대등했지요. 투수력과 타력에서 양 팀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전반기의 기세는 SK가 좀 더 좋았고, 후반기는 삼성이 우세했지요.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7전 4선승제의 시리즈를 치렀다면, 전문가들의 예상도 거의 박빙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삼성은 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그것도 2번의 연장 승부를 포함해 5번 모두 1점 차의 피 말리는 승부 끝에 간신히 올라온 상황이죠. 그러한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SK의 일방적인 우세를 점치고 있습니다. 정규시즌 막판에 드러난 SK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떨어진 체력이었는데, 그것은 3주간의 휴식을 통해 완벽하게 회복이 되었으니까요. 유일했던 약점이 사라진 SK와 없던 약점이 생긴 삼성, 당연히 무게의 추는 SK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죠.
단, 삼성이 SK에 비해 앞서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실전 경기감각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자들의 ‘타격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삼성이 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 그러했듯, SK도 한국시리즈 1~2차전에서는 100%의 타격감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삼성은 이러한 점을 파고들어 1~2차전을 모두 잡고, 적어도 5차전 이내에 승부를 봐야만 우승을 노릴 수 있습니다.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플레이오프를 최종전까지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것은 모두 9팀, 그 중 한국시리즈에서도 상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고작 2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2팀은 플레이오프에서의 기세를 이어가, 한국시리즈에서도 기선부터 확실히 제압한 후 각각 4승 무패와 4승 1패로 일찌감치 시리즈를 마무리한 덕에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6차전 이상 간 팀은 모조리 패했지요.
삼성도 마찬가집니다. 오승환이 합류했다곤 하나, 그것이 이미 지쳐 있는 불펜투수들을 회복시켜주진 않습니다. 따라서 타격감에서 앞서 있는 1차전을 무조건 잡아야 하지요. SK도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1차전부터 김광현이란 최고의 패를 꺼내든 것이지만, 만약 삼성이 그 김광현을 꺾고 1승을 선취한다면 그 효과는 2승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으로선 이번 1차전에 무조건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과연 1차전을 삼성이 잡아낼 수 있을까요?
▲ ‘크레이지 모드’의 주인공은 누구?
단기전에서는 정규시즌에서의 타격을 믿을 수가 없죠. 롯데의 중심타선이 이미 그것을 잘 보여준바 있으며, 삼성도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난 중심 타선의 활약은 미미했습니다. 다행히 삼성은 ‘영웅한이’ 박한이가 크레이지 모드에 돌입해 타선을 이끌었고, 또 하나의 숨은 MVP 김상수가 맹타를 휘두르며 그 뒤를 받쳐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어느 팀의 누가 평소 이상의 화력을 선보이며 팀을 이끄느냐’가 양 팀 타선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선수가 나오는 팀이 좀 더 우승에 근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삼성은 역시 이번에도 박한이와 김상수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SK 투수들이 테이블 세터진과 중심타선을 지중적으로 견제한다면, 역시 현재 감각이 좋은 그 둘이 돌파구를 마련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죠. 또한, 정규시즌에서 SK를 상대로 매우 강했던 최형우(3홈런 19타점 .305)에게 거는 기대도 큽니다. 이미 PO 5차전에서 홈런맛을 본 터라, 그대로 타격감을 끌어 올린다면 충분히 기대를 해도 좋겠지요.
SK에서는 ‘짐승’ 김강민(3홈런 11타점 .439)의 활약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독 삼성전에 강한 모습을 보였을뿐더러, 올 시즌 리그 정상급 타자로 발돋움하면 아시안게임 대표로까지 뽑혔죠. 전반적인 분위기가 워낙 좋아 기대를 해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히든카드’인 안치용, 김성근 감독이 투수를 11명으로 가져가면서도 안치용을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은 그만큼 안치용이 삼성전에 강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치용이 긴성근 감독의 계산대로 ‘단기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SK의 우승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지겠죠.
게다가 SK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을의 사나이’가 있습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환상적인 타격감을 자랑했던 박정권이 그 주인공이죠. 박정권은 지금까지 포스트시즌에 18경기 출장해 5홈런 17타점을 기록했고, 타율/출루율/장타율이 무려 .423/.456/.827에 달합니다. 무시무시한 성적이죠. 작년에 SK가 우승하진 못했지만, 2009년 최고의 가을남자는 분명 박정권이었습니다. 그는 올해도 팀의 중심타자이며, 작년의 위용을 재현한다면 또 하나의 신화를 작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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