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토)에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2010 한국시리즈 2차전 역시 최정의 연타석 홈런 등에 힘입어 SK 와이번스가 4-1로 삼성 라이온즈를 꺾었습니다. SK는 선발 ‘큰’ 이승호(1.2이닝 1실점)가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지만, 이후 전병두(2.1이닝)-‘작은’ 이승호(3이닝)-정대현(1이닝)-송은범(1이닝)으로 이어진 철벽 불펜이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경기 초반은 삼성의 분위기였습니다. 위태롭긴 했어도 선발 차우찬(5.1이닝 3실점)이 잘 막고 있었고, 그 사이 타자들은 2회 이영욱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경기의 분위기는 4회말 SK의 5번 타자 최정의 투런 홈런 한방으로 바뀌고 말았죠. 최정은 6회에도 대포를 쏘아 올리며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8회에는 이날 포수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던 박경완이 권혁에게 쐐기 솔로포를 터뜨리면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삼성의 힘이 SK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한 시합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1차전을 9-5로 이겼던 SK는 홈에서 2승을 선취하여 7전 4선승제인 한국시리즈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습니다. SK는 이제 남은 5경기 중 2경기만 이기면, 2년 만의 왕좌 복귀와 더불어 대망의 V-3를 달성하게 됩니다.
부제 : ‘야신’ 김성근 감독의 “생각대로 하면 되고~!”
SK라는 팀은 선수단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 머리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지요. 각 선수들은 유기체의 손과 발이 되어 김성근 감독의 생각과 작전대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SK의 야구는 선수들의 개성보다는 감독의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야구를 잘하기 팀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각각의 선수가 똑똑하고 센스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자신의 위치에서 ‘알아서 잘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 명이 확실한 머리가 되고, 나머지 선수들은 철저한 훈련과 관리 속에 톱니바퀴 맞물리듯 하나로 맞물리는 것입니다.
둘 중 뭐가 어려울까요? 전 두 번째가 더 어렵다고 봅니다. 단순히 김성근 감독의 존재만으로 지금의 SK가 이 정도의 강팀이 된 것은 아닙니다. SK 이전에 김성근 감독이 맡았던 팀들은 대부분 그 ‘한계’도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김성근 감독이 떠난 후에는 늘 이런저런 잡음이 많았던 것도 감독의 의도와 선수들(혹은 프런트)의 성향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SK는 다릅니다. 지금의 SK는 ‘유기체의 우두머리로서 경기의 모든 것을 컨트롤 할 능력이 되는 감독’과 ‘그런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수 있는 훈련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독의 뜻에 따라 철저하게 따라줄 수 있는 선수들이 모여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이 아닐까요? 거기에 그런 감독을 믿고 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프런트까지, SK의 놀라운 강함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이승호를 깜짝 선발로 내세우고, 그렇게 올린 선발을 2회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교체하고, 상대 투수가 좌완이라는 이유로 전날 홈런을 친 박정권을 7번으로 내리고, 무사에 2명의 주자가 나가면 타순에 관계없이 번트를 지시합니다. 이런 식의 SK 야구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당장 앞선 준PO나 PO에서도 이런 형태의 야구는 볼 수 없었죠.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런 야구를 계속해서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선수들이 그런 김성근 감독의 지시에 아무런 불만이나 어색함 없이 태연하게 따르고, 또한 그 기대에 확실하게 부응한다는 점이지요. 1회부터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것을 이상하지 않게 여기고, 자신이 팀 내 최고 강타자임에도 번트 지시를 받는 것을 기분 나빠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말이 ‘일본식’이지, 일본에서도 이런 야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SK 선수들은 언뜻 보면 단순히 ‘야구하는 기계’처럼 보이지만, 감독의 지시를 이행한 이후의 행동은 그 어떤 팀보다 열정적이고 패기가 넘칩니다. 수비시에 보여주는 재치 있는 플레이와 주루 플레이에서의 과감한 시도는 그들이 단순히 ‘시키는 대로 하는 선수’가 아닌 ‘생각하고 야구를 하는 선수’임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이미 ‘관리야구’라는 말로 단순히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한참 벗어난 수준입니다.
개개인의 특별하고 출중한 능력보다는 팀으로서의 강함으로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팀. 가만히 뜯어보면 이렇게 매력적인 구석이 많은 팀이 SK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하고 바라는 야구 스타일과는 전혀 정 반대되는 야구지만, 그런 개인적인 취향과는 관계 없이 또 하나의 완성된 형태의 야구를 만들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번 2차전 역시 그런 SK의 야구가 확실하게 그 힘을 발휘한 경기였습니다. 시합은 처음부터 ‘야신’ 김성근 감독의 의도대로 그가 쓴 시나리오 속에 그려졌고, SK 선수들은 그러한 감독의 밑그림에 색깔을 입히는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했지요. 삼성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경기 자체를 자신들의 흐름으로 만드는 SK 특유의 힘에는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2회 선발투수 이승호를 교체할 때, 우완인 엄정욱이나 글로버가 마운드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좌완인 이승호를 상대하기 위해 구성한 삼성의 타선을 완전히 헝클어뜨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등판한 선수는 또 다른 왼손 투수인 전병두였습니다. 전병두가 4회를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간 후 올라온 선수 역시 좌완인 ‘작은’ 이승호였죠.
1차전에서 나란히 3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한 두 타자 중 김재현은 상대 선발이 좌완이라는 이유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박정권은 3번에서 7번으로 타순이 내려갔죠. 하지만 이들의 표정에서 ‘불만’이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7번 타자 박정권은 태연하게 희생 번트를 시도(실패하긴 했지만)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잔전의 시행과 선수의 기용이 계속되면서 SK만의 독특한 야구가 완성되어가죠.
전병두와 이승호라는 좌완을 잇달아 올리면서 삼성의 ‘좌완 상대 타선’을 힘으로 눌러버리더니, 8회에는 언더핸드인 정대현을 올려서 상대의 타격 리듬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4사구를 허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안타를 적게 맞으면서 실점만은 하지 않는 야구. 박경완의 뛰어난 리드와 도루저지 능력,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수비력을 100% 활용하여 한 번 잡은 경기의 흐름을 상대에게 넘겨주지 않는 ‘지키는 야구’가 이번 2차전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상대인 삼성도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기대 이하의 피칭으로 실망을 안겼던 차우찬은 ‘SK 킬러’라는 명성이 부끄럽지 않게 나름 제 몫을 해주었습니다. 6회 1아웃까지 6피안타 2볼넷 3탈삼진 3실점으로 나름 선방했지요. 실점은 모두 최정에게 맞은 홈런 2방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등판한 안지만도 위기는 있었지만, 추가 실점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타선도 고작 1점에 그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8회를 제외하면 매 회마다 주자가 출루했고, 맞아서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출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지요. 도루 실패가 몇 차례 있었지만, 적극적인 플레이만이 돌파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걸 비난할 순 없을 겁니다. 수비에 있어서도 적어도 이번 2차전만큼은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SK와 더불어 수준 높은 경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시합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SK가 가진바 전력을 드러낸 경기에서 패한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충격이 클 겁니다. 사실 1~2차전에서 SK가 가진바 전력을 풀 가동한 것은 아니었지요. 1차전에서는 김광현이 한 순간에 무너지며 역전을 허용했지만, 그걸 불펜과 타선의 힘으로 뒤집었습니다. 3회에는 선발부터가 ‘깜짝 기용’이었던 이승호였는데, SK의 완벽한 계투진과 홈런포에 눈물을 흘려야 했죠.
차라리 김광현과 카도쿠라가 연이어 등판해 완벽한 피칭을 했거나, SK가 여유가 없을 정도로 불펜을 풀가동시킨 끝에 2연패를 당했다면, 아쉬움은 있지만 얻은 것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1~2차전에서의 패배는 양 팀의 명백한 전력차만 뚜렷하게 각인시키고 말았네요. 게다가 권혁은 여전히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요.
롯데와 두산, 두산과 삼성의 앞선 시리즈에선 3점 차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그토록 드라마틱한 경기가 연속해서 펼쳐졌던 것이지요. 하지만 상대가 SK쯤 되니 3점차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군요. 체력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여유 있는 투수 운용이 가능한 SK가 얼마나 무서운 팀인지가 이번 한국시리즈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삼성이 특별히 못해서 졌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지 가진바 전력의 차가 생각보다 컸고, 플레이로프를 통한 체력적인 열세의 영향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 이상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SK의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야구, 그리고 그 상상을 초월하는 경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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