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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일본과 접전, 누가 중국 야구를 만만하다 했는가?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1. 16.


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 중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선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4강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도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일본과 중국은 앞서서 약체인 태국과 몽골을 상대로 각각 1승씩을 따낸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양 팀의 대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관심거리였다. 준결승이나 결승에서 만날 상대들이기에 대표팀 조범현 감독과 김시진 투수코치가 직접 이 경기를 관전하는 등 전력 분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업야구(사회인야구) 선수들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일본과 세미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중국의 대결은 팽팽한 접전으로 펼쳐졌다. 양 팀 모두 8개씩의 안타를 주고받는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과는 일본의 3-0 승리로 끝났다. 야구의 프로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국이라고는 하나 실업야구가 주축이 된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일본 대표팀의 수준을 대만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일전에서 드러난 중국 대표팀의 전력을 만만히 볼 수는 없게 됐다. 사실상 한국과 중국의 준결승 매치업이 결정된 상황, 우리가 중국을 상대로 패할 리는 없겠지만, 연이어 펼쳐질 결승전을 대비해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며 이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 가장 큰 뉴스거리는 단연 대한민국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이었다. 본선 1차전에서부터 결승까지 아홉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큰 관심거리였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금메달 소식에 가려진 또 하나의 이변이 있었다. 중국 국가대표팀이 아시아 3강 중의 하나인 대만을 8-7로 꺾은 것이다. 아시아 야구의 4등 국가로 알려진 중국이 대만을 이겼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꽤 충격이었다. 대만전 승리에 고무된 중국은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도 9회까지 팽팽한 ‘0’의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선전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린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곧 드러났다. 이후 열린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중국이 또 다시 대만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비록 패자 부활전에서 만난 대한민국에 0-14로 패하며 대회를 마감해야 했지만, 최근 2년간 대만을 두 번이나 이긴 중국 야구의 저력은 야구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 메이저리그도 눈독 들이는중국시장

 

사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야구 분야에서는 아시아의 4등 국가였다. 프로야구를 진행하거나 프로화를 추진 중인 국가가 4개국(한국, 일본, 대만, 중국)임을 감안해 본다면, 사실상 중국이 야구 최하위국인 셈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 중국야구에 호기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었다. 특히 그 중 LA 다저스가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저스라면 그러할 만도 했다. 그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야구 내/외적인 부문에서 여러 차례선구자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재키 로빈슨을 비롯한 흑인 선수들을 최초로 기용한 구단도 다저스였고, 라디오 중계방송을 맨 처음 시작한 곳도 다저스였다.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 등 메이저리그에아시아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도 다저스다.

 

그랬던 다저스가 한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피터 오말리 전 구단주는 중국야구 시장 개척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다저스를 포함한 다른 구단들도 중국야구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중국이라는 시장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일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13억 이라는 인구에 있다. 중국의 한 농가에서놀란 라이언같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유망주가 농사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이언은 고향인 텍사스에서 건초 더미를 정리하는 농사꾼이었으며,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 또한 프로무대 데뷔 전에는 농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바 있다.

 

메이저리그를 포함하여 일본 야구도 중국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 광동 레오파스에서 타격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던 추성건 전 서울고 코치는일본 구단이 중국에 미즈노 글러브를 무상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야구 선진국들의 투자는 성과로 나타났다. 미국과 일본의 각 구단들은 중국 시장에서 뛰어난 선수들을 데려와 비교적 싼 가격에 계약을 맺고 이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중국야구의 활성화로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WBC에서 중국대표로 레이 창(27)이 참가하면서 중국지역에 야구 붐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올해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더블A 팀인 포틀랜드 레드삭스에서 타율 0.298, 9홈런 55타점을 마크했다.

 

2003 3월에 세미 프로리그가 출범한 것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베이징 타이거즈, 텐진 라이온즈, 사천 드래곤즈, 상하이 이글스. 광동 레오파스, 강소 호프스타즈의 총 6개 팀으로 시작됐지만, 중국 야구 시장을 감안해 보았을 때 팀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프로화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악재로 4개 팀만 남은 대만과 상당부문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국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선수는 투수 루지엔강(31)이다. 베이징 올림픽과 WBC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루지엔강은 중국 대표팀의 에이스라 불릴 만하다. 특히, 지난해 WBC 대만전에서 선발로 나와 5 1/3이닝 동안 4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해 중국에 첫 승을 선물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2년 전 올림픽에서는 한국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여 4번 이승엽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을 기록하기도 했다.

 

중국 텐진 라이온스에서 주축 투수로 활약중인 리즈량(20)도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일본전에서 선발로 나선 리즈량은 구원 투수 왕페이(28)로 교체되기 전까지 무실점으로 일본 타선을 틀어막았다. 그 역시 2008년 아시안클럽 시리즈에서 한국시리즈 챔피언인 SK와의 경기에서 등판했던 경험이 있다. 루지엔강과 리즈량을 포함하여 지난 올림픽 한국전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무실점을 기록했던 부타오(27) 역시 눈에 익은 이름이다.

 

타선에서는 추성건 전 서울고 코치가 광동 레오파스 인스트럭터 시절 키웠던 유격수 지아더롱(25)이 가장 익숙한 이름이다.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쳐주지 못하고 있지만, 그 역시 올림픽과 두 번의 WBC에서 모두 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그 외에도 일본전에서 2루타 하나를 포함하여 두 개의 안타를 뽑아냈던 춰이샤우(22)요주의 대상이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야구에서쉬어가는 팀이었다. 그러나 이쉬어가는 팀에 우리 대표팀은 올림픽에서 혼줄이 난 바 있다. 당시 대표팀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으로 간신히 중국을 꺾을 수 있었다. 지난해 WBC에서는 우리가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이번 대회 역시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안방이라는 점이 껄끄럽다.

 

단판승부라는 것은 언제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변이란 언제나 방심이란 내부의 적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더 이상 중국야구를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유다. 좀 더 긴장하고, 확실한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다.

 

// 유진[사진=스포츠조선, 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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