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투-타에서 한 수 위의 전력을 자랑하며 대만을 9-3으로 비교적 손쉽게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야구 종목에서 세 번째로 금메달을 획득한 대표팀은 4년 전 카타르 도하에서 당한 ‘패배의 치욕’을 말끔히 씻는 데도 성공했다.
‘도하 참사’ 이후 두 번의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기술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발 빠르게 이번 대회를 준비한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의 선전에 안주하지 않고, 금메달을 위한 최상의 멤버를 구축한 것도 대표팀의 선전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원동력은 최종 엔트리에 든 24명의 선수들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최선을 다한 데 있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거라는 프라이드를 잠시 접고 조국을 위해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류현진 역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예선 첫 경기와 마지막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팀 승리에 기여했다. 선수단을 하나로 묶으며 주장으로서의 임무를 톡톡히 해낸 봉중근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으며, 결승전 승리 투수로 이름을 올린 윤석민 또한 제 몫을 다했다.
24명의 선수들 모두가 적어도 한 번씩은 경기에 출장했고, 저마다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헌데, 그 중에서도 추신수와 더불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중요한 순간마다 ‘해결사’ 본능을 발휘했던 강정호(23, 넥센)가 그 주인공이다. 대표팀의 백업 유격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강정호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3루수로 맹활약하면서 ‘3루수 강정호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광주일고의 ‘유틸리티맨’에서 아시안게임 대표팀까지
화정초-무등중-광주일고를 거쳐 2006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 전신)의 1라운드 지명을 받은 강정호는 고교 시절부터 다재 다능함을 자랑했던 ‘유틸리티맨’이었다. 고교 2학년 때 참가했던 청룡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타격상과 최다 안타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투-타에서 맹활약했던 3학년 시절에는 모교의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끌었다.
고교시절 그가 주로 책임졌던 포지션은 투수와 포수였지만, 팀 사정에 따라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나타냈다. 신인지명 당시 현대 스카우트팀은 그를 ‘포수’로 호명했다. ‘포스트 김동수’로 강정호를 키워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재박 당시 감독은 강정호를 향하여 “박진만의 뒤를 이을 만한 뛰어난 유격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며, 그를 내야수로 전향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 때문일까? 그는 2006년 데뷔 이후 이듬해까지 1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2군 무대를 전전해야 했다.
그랬던 그가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8년도였다. 팀 이름도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바뀐 뒤였다. 시즌 초반에는 타격 부진으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는 타율 0.271, 98안타(8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히어로즈의 기둥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23홈런 81타점을 기록하는 등 심상치 않은 타격을 보였던 강정호는 한때 ‘최고의 타격 실력을 지닌 유격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주로 중심타선에서 활약했던 강정호는 생애 첫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같은 유격수 포지션에 손시헌이 있었기 때문에, 강정호는 주로 백업 요원으로 경기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강정호는 대표팀 소집 훈련 때부터 범상치 않은 타격감을 과시하면서 조범현 대표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 평소에는 ‘무뚝뚝’, 야구에 대한 열정은 ‘최고수준’
그런 강정호의 ‘한 방’은 홍콩과의 예선전에서 터져 나왔다. 대타로 타석에 등장한 강정호는 좌측 담장을 크게 넘어가는 홈런을 작렬시키며, 대표팀의 15-0 콜드게임 승리를 도왔다. 추신수와 함께 타자조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다는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홈런이었다.
타격감이 최고조에 올라 있던 강정호는 결국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 주 포지션인 유격수가 아닌 3루수로 선발 출장하게 됐다. 타력을 극대화 하겠다는 조범현 감독의 노림수가 엿보인 선수기용이었으며, 그 경기에서 강정호는 기대대로 4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우려했던 3루 수비에서도 이렇다 할 실수 없이 매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3루수 강정호’ 카드가 ‘합격’ 판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대만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강정호는 2홈런 포함 3안타 5타점을 기록하며 ‘결승전의 히어로(영웅)’로 떠올랐다. 대표팀이 뽑은 9점 절반 이상이 강정호의 방망이에서 나왔을 만큼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추신수와 더불어 이번 대회에서 3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강정호는 결승전을 통해 ‘깜짝 스타’로 등장, 향후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강정호는 평소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나선다. 그만큼 말수가 적다. 그러나 일단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린다. 경기장에서 그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제 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제 구실을 다하는 선수’가 바로 강정호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아시아를 정복하고 다시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강정호. 스스로의 맹활약으로 한국의 우승을 이끈 그를 향해 야구팬들은 ‘셀프 면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가 받을 포상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새로운 스타로 거듭난 그가 내년 시즌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야구팬들 앞에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유진[사진=넥센 히어로즈, 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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