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탱크’ 박정태의 존재는 정신적 지주, 그 이상이다. 박정태는 1991년에 데뷔한 이후 거인 군단의 199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음은 물론, 암흑기를 맞이했던 2000년대에도 부산을 떠나지 않으며 끝까지 롯데 유니폼만 입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그는 2004년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자갈치’ 김민호, ‘호랑나비’ 김응국 등과 더불어 롯데 기관총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었다.
그는 데뷔 년도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1년 연고지 신인 우선지명을 받아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박정태는 122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85, 14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신인왕을 받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성적이었다.(당시 신인왕은 쌍방울의 조규제-9승 7패 27세 1.64-에게 돌아갔다.) 이듬해에는 타율 0.335, 149안타, 14홈런, 79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그는 현역 시절 내내 많은 부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에 성공했다. ‘탱크’라는 별명도 이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박정태는 재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상황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부활하여 팬들 앞에 나타났고, 이 때문에 롯데 팬들에게 ‘근성과 투혼의 상징’과 같은 선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5회 수상(역대 2루수 최다 기록)에 빛나는 박정태는 통산 1141안타 531득점 638타점 타율 0.296의 뛰어난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고, 지금은 롯데의 2군 감독으로 여전히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클리블랜드)의 외삼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리틀 박정태’가 그 뒤를 따르기 위해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직 아버지의 커리어 앞에서는 한 없이 어리고 부족하지만,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는 박수를 쳐 줄만하다. 경남고등학교 야구부에 몸담고 있는 박정태 감독의 아들인 박시찬(16)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 아버지는 ‘프로에서’, 아들은 ‘학교에서’
사실 프로야구를 포함하여 고교, 대학야구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부자(父子)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연세대학교 야구부에 몸담고 있는 이성곤(19)은 이순철 해설위원의 아들이며, 북일고 졸업 이후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동엽(19)은 전 한화 이글스 포수 김상국의 아들이다.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한화 송진우 코치의 아들과 조카도 야구를 한다.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에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외조카 이영재(18)는 북일고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내년이면 고교 3학년이 되는 송우석(17)은 포수와 내야수로 활약 중이다.
이들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접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야구하는 장면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저절로 야구에 흥미를 지니게 된 셈이다. 이들에게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조기교육이나 다름없었던 셈. 박정태 감독의 아들인 박시찬 역시 마찬가지다.
▲ 대구 모처에서 만난 박정태 감독(사진 중앙)과 두 아들. 사진 왼쪽이 박 감독의 장남 박시찬이다.(사진=유진)
사직중학교 졸업 이후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한 박시찬은 아버지와는 달리 투수로 야구부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올 시즌에는 빼어난 3학년 선배들의 활약과 부상 등으로 인하여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주말리그가 시행되는 내년에는 충분히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경남고 이종운 감독도 이에 동의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라는 공통분모로 묶이게 되면, 그만큼 받는 혜택도 클 수 있다. 특히, ‘박정태 2세’라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에 대해 박시찬을 비롯한 야구선수 2세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팀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은 김대유 역시 이에 동의했다. 부산중학교 김종석 감독(전 롯데)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잘 찾아가지 않는다. 야구선수 2세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자신들만의 남다른 고충을 이야기했다.
박정태 감독 역시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들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박 감독은 “결국 자신이 좋아서 해야 한다.”며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근성’이라는 측면을 많이 강조하는 박 감독다운 평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화려한 야구 경력을 봐왔던 박시찬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야구를 시작했지만, 다른 것은 뒤로 하더라도 아버지가 야구를 하던 당시 가장 강조하셨던 ‘끈질김’만큼은 배우고 싶다.”라고 이야기한다. ‘부전자전’이라는 것은 바로 이들 부자(父子)를 두고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박시찬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장 올 시즌엔 특별히 보여준 것이 없다. 심창민(삼성), 서진용(SK), 김우경(롯데), 이준명(LG) 등 프로로 진출한 3학년 선배들의 기세가 상당히 강했기 때문이었다. 2학년이 되는 내년 시즌에는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계 훈련 결과에 따라 투수가 아닌 야수로도 뛸 수 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내야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살이 조금 더 붙어야겠지만, 177cm / 75kg의 체격 조건도 아버지의 현역 시절과 비슷하다. 누가 보아도 부자관계라는 것을 알아 볼 만큼 얼굴도 비슷하다. 그래서 주위에서 박시찬에 붙여 준 별명도 ‘리틀 박정태’다.
▲ 존경의 대상, 아버지라는 이름
아직 프로 지명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박시찬은 많은 국가대표급 내야수들을 뒤로 하고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아버지 박정태를 뽑는다. 롯데 팬들의 큰 사랑을 먹고 사는 아버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리틀 박정태’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한다.
어쩌면 ‘리틀 박정태’ 박시찬이 아버지처럼 뛰어난 내야수로 성장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라인업을 책임지는 핵심 멤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투수든 내야수든 그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건 간에 ‘부자 롯데 멤버’의 탄생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 유진[사진=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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