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원하던 병역혜택을 받았다. 이제 그는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연봉조정 신청 자격을 얻게 된 추신수는 당장 내년부터 상당한 액수의 연봉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장기계약 여부는 인디언스 구단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다.
헌데, 미국의 한 언론에서 이를 두고 꼬투리를 잡았다. 뉴저지주의 홈뉴스 트리뷴이 ‘Something’s wrong with this deal(이번 거래엔 무언가 잘못됐다)’는 제목의 기사로 추신수의 병역 문제를 두고 비아냥거린 것이다.
"3만의 주한미군은 한국 방위를 위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인데, 한국인인 추신수는 병역 혜택을 받고 미국에서 연봉 대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기사 내용의 주요 골자다. 그리곤 6.25 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테드 윌리엄스를 비롯해 2차 대전 당시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거론하며, 그와 비교해 추신수와 그에게 혜택을 준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그걸 또 국내의 어떤 한 언론이 ‘받아쓰기’처럼 보도했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극적인 기사를 좋아하는 각각의 포털 사이트들은 그 기사를 전면에 배치했고, 이를 두고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링크)
간단하게 집고 넘어가면, 일단 저 기사를 작성한 미국 기자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병역 면제’와 ‘병역 혜택’의 차이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팬들 중에서도 그 두 가지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추신수를 비롯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면제’가 아닌 일종의 ‘대체복무’다. 그들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이후 각각의 종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는 신체적인 결함 등 군복무를 하지 못할 상황이 되어 면제를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추신수는 ‘군대 면제자’가 아닌 ‘대체복무자’이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해 자신의 일터에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셈이다. 지금부터는 추신수가 ‘한국인 메이저리거’로서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것 자체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추신수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더욱 큰 일이기도 하다.
현재는 이른바 ‘국가 브랜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년 전이라면 군사력이 그 나라의 국력을 대변하는 모든 것이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각각의 국가는 자신들의 국가 이미지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인들의 인식이 또 하나의 무형의 자산이 되어 국가의 힘이 된다.
스포츠를 통한 외교는 그런 국가 브랜드의 질적 향상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그들 한명 한명을 모두 ‘스포츠 외교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대체 복무’를 인정받은 것이고, 그것은 그들이 총을 메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국가에 이바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혹은 애써 무시한 채, 추신수의 병역 혜택을 비꼬는 미국 언론의 기사는 매우 악의적임과 동시에 어리석은 것이다. 추신수라는 한국인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함으로 인해 느끼는 한국인들의 자부심, 그리고 그를 통한 ‘Korea’라는 국가 브랜드의 전파 효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우리나라에 전쟁이라도 벌어졌다면, 그래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무장하고 전쟁터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 그런데 추신수가 귀국을 거부하고 미국에 체류하며 메이저리거로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미 언론이 추신수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니, 그런 상황이라면 국내 여론부터가 가만 있을 리 없다.
헌데 그런 것도 아닌 상황에서 단지 자신의 직업에 따라 근무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비교하여 추신수의 병역 혜택을 비난한다는 것은 너무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그네들이 테드 윌리엄스를 비롯한 참전 메이저리거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그들 마음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모욕이다.
한국에는 한국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준에 따라 병역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적어도 다른 나라의 원칙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다면, 좀 더 조사를 하고 명확히 인식을 한 다음에 했어야 했다. 이번처럼 ‘우리 아이들(주한미군)은 너네 나라에서 고생하는데, 왜 너희 아이(추신수)는 우리나라에서 돈 많이 벌며 잘 먹고 잘 사느냐’는 식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논리를 들고 나와서는 곤란하다.
또한, 그 기사 내용을 인용해 보도한 국내 언론의 기사를 읽어봐도 ‘혜택’과 ‘면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일반적으로 딱히 구분하지 않고 편히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면,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운동선수들의 병역특례가 과연 합리적인지 생각할 기회를 줬다'며 인터넷 토론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사족을 덧붙이기에 앞서 ‘면제’와 ‘혜택’이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추신수는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정당하게 병역 혜택이라는 권리를 획득했다. 이 ‘기준’에 대해 비판의 여론이 형성되면서 국내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일개 미국 기자가 언급하기엔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민감한 문제다.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혜택 문제는 미국의 일개 언론이 굳이 걱정하거나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다. 더욱이 완벽한 논리로 무장한 눈부실 정도의 명문이라 하더라도 보기 불편할 텐데, 저런 수준 이하의 빈약한 논리라면 더더욱 사양한다. 비판을 해도 우리가 하고 비꼬아도 우리가 할 테니 쓸데 없는 신경은 꺼주기 바란다.
P.S. 홈뉴스 트리뷴의 기사 내용 중에는 “테드 윌리엄스가 추신수의 조국을 위해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마치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 없는 전쟁이었지만, 오로지 순수하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정의를 위해 참전하기라도 했다는 논조다. 이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 6.25의 근본 원인은 대한민국의 분단이며, 그 분단을 조장한 대표적인 나라가 어디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6.25전쟁에서 미국이 ‘제3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 카이져 김홍석[사진=두산 베어스, 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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