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선수와 구단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친 ‘동반자’이긴 하지만,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한다. 특히 겨울이 되면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선수들은 구단의 계획에 따라 내년 시즌을 위한 몸 만들기에 돌입하여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지만, 또 다른 장소인 연봉 협상 테이블에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수고한 대가를 연봉으로 보상 받길 원한다. 젊고 실력 있는 선수는 ‘성적대로 달라’며 큰 소리치고, 베테랑들은 ‘경력과 그 동안의 노고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구단은 구단 나름대로 줄 타기 하듯 어떻게든 연봉 총액을 줄이기 위해 심리전을 펼친다. 바로 이 연봉 협상의 과정과 결과가 스토브리그의 또 다른 재미인 것이다.
올해도 큰 소리를 떵떵 칠 수 있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선수들도 있다. 구단들도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크게 보따리를 푸는 곳이 있는 반면, 사정 없이 삭감의 칼을 휘두르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쩐의 전쟁, 지금부터 내년 시즌의 연봉이 기대되는 대표적인 선수들을 살펴보자.(괄호 안의 금액은 2010년 연봉이다)
이대호(3억9천만원) – 정확히 1년 전, 롯데는 팀 내 최고타자의 연봉을 감히 삭감하려다 이대호 본인과 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욕은 욕대로 먹고 연봉은 연봉대로 올려줘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4억원을 넘기지 않았고, 거기에 자존심이 상한 이대호는 올 시즌 전대미문의 ‘타격 7관왕’이라는 희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구단 측에 제대로 복수(?)를 했다. 그런 이대호의 내년 연봉은 올 겨울 초미의 관심사다. 못해도 6억원 대는 돌파할 것으로 보이며, 일각에선 김동주(7억원)를 뛰어넘는 ‘프로야구 전체 연봉 킹’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과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을 정도다. 물론 스크루지 같은 롯데 구단이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들이 어떤 대비책을 내놓을 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류현진(2억7천만원) – 2006년 데뷔 후 곧바로 이듬해에 1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역대 연봉자 대열에 합류한 류현진은 1억8천만원과 2억4천만원을 거쳐 올해 2억7천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는 모두 연차별 최고액 기록이며, 내년에는 6년차 최고액 연봉 신기록(종전 기록은 2000년 이승엽의 3억원)을 무난히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의 류현진은 이대호와 더불어 모든 프로야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성적에 따른 인상폭을 감안하면 당장 5억원 대로 진입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한화의 팀 성적이 걸림돌이다.
김상현(2억4천만원) – 지난해 부상을 안고 있는 와중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팀의 우승을 이끈 것까진 좋았지만, 김상현의 지난 겨울은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기 보다는 각종 행사 참석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았고, 연봉 협상 과정에서도 숱한 잡음을 일으켰다. 길고 긴 줄다리기 끝에 결국 엄청난 인상률을 기록하며 거액의 연봉을 약속 받았지만, 정작 올 시즌의 성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프로야구 역사상 딱 1년 잘했다는 이유로 2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을 받아낸 선수는 김상현이 유일하다. KIA 구단이 그런 김상현에 대한 처분을 어떻게 할지를 지켜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김현수(2억5200만원) – 2008년 리그 타격왕에 오른 김현수는 2009년에 200% 인상된 1억2600만원의 연봉을 받았고, 올해는 그 보다 100% 인상된 2억5200만원을 받았다. 올해도 그는 몸값이 아깝지 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활약을 했다. 이번에는 두산이 김현수에게 어느 정도의 인상을 약속해줄까? 아마도 50% 이상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단숨에 4억원 선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거둔 성과(3위)에 비해 개인성적이 향상된 선수들이 많다는 점이 두산 측의 고민이며, 김현수가 포스트시즌에서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도 대폭 인상을 의심케 하는 요인이다.
최진행(3천만원) – 2010 프로야구에서 몸값 대비 효율이 가장 높았던 선수를 꼽으라면 아마도 그 첫 손에 꼽힐 선수가 바로 최진행일 것이다. 최진행은 사실상의 풀타임 첫해였던 올 시즌 32홈런(2위) 92타점(5위)을 기록하며 김태균과 이범호가 빠진 한화 타선을 홀로 이끌었다. 그보다 공헌도나 개인성적에서 뒤쳐지는 어린 선수들(오지환, 안치홍 등)도 1억원을 약속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 오고 있는 상황, 최진행이 그들보다 적게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프로야구 역대 최고 인상률은 팀 동료 류현진이 신인 시절 기록한 400%(2천만-->1억)이며, 타자 가운데 최고는 지난해 김상현이 기록한 361.5%(5200만-->2억4천만)다. 최진행이 과연 이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지 지켜보자.
이종범(2억6천만원) – 2007년까지 5억원을 받다가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던 이종범은 2008년과 작년에는 2억원씩을 받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팀 우승에 공헌하며 모처럼 연봉 인상의 기쁨을 맛봤었다. 하지만 올 시즌 다시금 팀은 추락했고, 이종범의 개인 성적도 바닥을 치고 말았다. 이종범의 선수생활 연장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KIA 구단은 이번에도 큰 폭의 삭감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 분명하고, KIA 팬들은 이에 또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양신’이 은퇴한 상황에서 ‘바람의 아들’을 향한 대우가 어느 정도 일지가 무척 궁금하다.
양의지(2400만원) – 신인왕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오지환이 LG의 새로운 연봉 정책에 의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보장 받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와 더불어 2년차인 안치홍도 억대 연봉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올 시즌 신인왕이자 포수라는 특수 포지션을 책임지고 있는 양의지의 인상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으로만 보면 1억원을 넘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두산은 그런 식의 파격적인 대우를 잘 하지 않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같은 신인왕 출신의 임태훈이나 2008년 타격왕에 오르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김현수의 경우도 나란히 200% 인상에 그쳤다. 두산이 ‘신인왕’ 양의지의 자존심을 세워줄 지, 아니면 구단의 전통(?)을 그대로 지킬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박명환(5억원+@) – 2007년 박명환이 LG와 맺었던 FA 계약(계약금 18억, 연봉 5억)은 올해로 끝이 났다. 박명환은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동안의 실적을 가지고 새롭게 연봉 협상을 벌여야 한다. 계약금을 4년 동안 분할하여 지급받았다 치면 올해 박명환이 받은 실질적인 연봉은 9억5천만원이라 할 수 있다. 처참했던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 본다면, 대규모의 삭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008년 현대가 히어로즈로 바뀔 당시 송지만의 연봉이 6억원에서 2억2천만원으로, 무려 3억8천만원이나 깎인 것이 역대 최대 삭감액 기록이며, LG에서 4억원을 받다 방출된 마해영이 2008년 롯데와 5천만원에 계약하면서 기록한 87.5%가 역대 최대 삭감율이다. 어쩌면 올해의 박명환이 이 두 가지 불명예 기록을 모두 갈아치울 지도 모른다. 올 겨울 박명환의 가슴 속엔 혹독한 한파가 몰아칠 것 같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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