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한국 야구계의 ‘뜨거운 감자’와 다름 없었던 박찬호의 최종 행선지는 미국도 한국도 아닌 일본 프로야구의 오릭스 버팔로스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상당한 업적을 쌓은 박찬호가 굳이 일본 프로야구에 몸 담을 필요가 있느냐는 측면에서 상당수의 팬들이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가족을 위한 일본행, 존중 받아 마땅하다!
오릭스 버팔로스로의 입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많은 분들이 실망도 하고 아쉬워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더 큰 의미를 가지고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한 박찬호는 이어서 “아이들이 커가면서 고생하는 아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활하는 내 모습을 보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메이저리그에서의) 은퇴 시기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결국 그의 메이저리그 은퇴와 일본 진출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선택은 결과와 관계없이 무조건 존중 받아야 한다. 박찬호 역시 무엇보다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야구를 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의 편안한 생활과 행복을 위해서다.
그 삶의 원칙에 있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가족이다. 행여나 이 결정으로 인해 수백만의 팬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박찬호에겐 아내 한 사람의 행복이 더 중요하고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제일교포 3세인 박리혜 씨는 결혼 후 박찬호가 활약하는 미국에서 생활해왔고, 나중에 박찬호가 은퇴를 한다면 그 때는 한국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남편인 박찬호가 그 사이 1~2년 정도는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생활해 보는 것도 가장으로서 내릴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결정이 아닐까?
그렇기에 박찬호의 이번 결정 그 자체나 동기에는 그 어떠한 아쉬움도, 섭섭함도, 실망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를 위해 팬들이 실망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한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어차피 그는 항상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사나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결과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과라기 보단 그 모든 동기와 하나 하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현실 자체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의 일본행은 아내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앞으로 부딪히게 될 난관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현실이 가져다 주는 아쉬움, 그리고 걱정
박찬호 스스로도 “여태까지 쌓아온 명예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주위에서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박찬호의 일본행 소식을 접한 이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와 같은 우려였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다. 그의 총 누적연봉은 거의 천억원에 이르며, 동양인 출신 메이저리그 최다승 투수로서의 명예도 얻었다. 이미 돈에 대한 부분은 오래 전에 초탈한 상황이며, 올해 노모의 기록을 넘어서면서 남아 있던 마지막 목표까지 달성했다. 그야말로 17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하면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셈이다.
그로 인해 현 시점에서 팬들의 바람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하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남은 선수생활을 고국의 팬들과 함께 해주길 바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돌아오지 말고 선수생활의 마지막까지 메이저리거로서 활약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팬들의 상당수는 박찬호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동기 자체에는 공감을 하더라도, ‘왜 하필 일본이냐’는 결과에는 쉽사리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찬호의 일본행은 또 다른 도전이다. 워낙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마다하지 않는 박찬호라지만 일본 무대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라고 해도 30대 후반의 박찬호가 그곳에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팬들이 아쉬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걱정을 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사실 그가 일본에서 생각 이상으로 잘 적응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왕 오랜만에 선발투수로 뛰게 되었으니, 좋은 방어율로 두 자리 승수를 거두며 팀의 주력 투수로 활약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행여나 박찬호가 부진했을 경우다.
메이저리그에서라면 그가 실패를 하고 또 한 번의 좌절을 겪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그의 팬들은 그가 오뚝이처럼 매번 부활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며, 어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응원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 무대가 일본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싫든 좋든 박찬호는 한국 야구의 자존심이다. 그는 선동열 이후 최고의 에이스이며,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야구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 박찬호가 하필이면 일본이라는 무대에서 부진을 겪게 되어 2군을 오르내린다면, 그땐 우리나라 야구팬들의 자존심에도 생채기가 나게 된다.
어떤 팬은 “코리언 특급 박찬호가 일본에서 조롱을 받는다면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행여나 그런 일은 그 가능성조차 없었으면 했기에 이번 일본행을 선뜻 축하해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찬호를 지켜봐 왔던 야구팬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또한, 이 결정으로 인해 최소한 30대의 박찬호를 국내에서 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은퇴를 선언한 박찬호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생활의 마지막은 한국에서’라는 뜻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했다. 실제로 이번 일본행은 한국행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73년생인 박찬호는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39세, 일본 생활을 1년 만에 마무리하고 최대한 빨리 한국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2012년이면 마흔이 되어 버린다. 박찬호가 30대 후반에도 강속구를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몸 관리를 잘하는 타고난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40대는 장담하기 힘들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왕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라면 조금이라도 이른 나이에 오기를 바랐고, 그런 의미에서 내년 시즌 복귀가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박찬호가 일본을 거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 복귀의 시기도 최소 1~2년은 늦춰지게 됐다. 사실 그때라면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좋은 기량과 성적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운 시기다. 조금이라도 전성기적 기량이 남아 있는 박찬호를 한국의 야구장에서 보고 싶어했던 팬들에게는 아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 수밖에 없다. 1년 동안 오릭스의 에이스로서 맹활약한 후 특별법의 적용을 받아 2012년에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박찬호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또한,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라고 기원한다.
그러나 그 이면으로는 거듭되는 아쉬움과 우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선택에는 후회가 없고 존중 하고 싶지만, 하필이면 그 무대가 일본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과 성적에 대한 부담은 걱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아무쪼록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다운 위용을 과시하여, 한국 야구의 자존심과 그 팬들의 가슴에 괜한 상처가 남지 않도록 해주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며, 언제나 그래왔듯 앞으로도 진심으로 응원할 뿐이다.
P.S. 이런 저런 말들로 여러 가지 우려를 표현했지만, 기대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오랜만에 붙박이 선발투수로 활약하게 될 박찬호의 피칭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야구 투-타의 자존심욿 군림해 온 박찬호와 이승엽이 한 팀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박찬호가 선발등판한 경기에서 이승엽이 홈런으로 그의 승리를 결정지어 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내년 한해 동안 이와 같은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일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OSEN.co.kr, 홍순국의 순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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