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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실패로 끝난 선동열 감독의 여정

by 카이져 김홍석 2011. 1. 5.



2010
년 야구계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뜬금없이 터져 나온 선동열 감독의 해임 소식이었다. 비록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맥없이 4연패로 물러나긴 했지만,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발판 삼아 준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성과였다.

 

6년의 재임 동안 2번의 우승, 1번의 준우승, 그리고 단 한 번을 제외하면 팀을 매번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감독이 급작스럽게 해임된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직 4년의 임기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선 감독의 해임에는 대체 어떤 배경이 깔려 있었던 것일까?

 

업적만 놓고 보면 성공한 명장

 

선동열 감독은 명투수 출신답게 화끈한 공격력으로 대변되던 삼성이라는 팀을 강력한 투수력을 갖춘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삼성의 투수코치 시절부터 손을 봤던 투수들을 잘 활용해서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것도 선 감독이 구축한 강력한 불펜진의 활약 덕택이었다.

 

비록 2번의 우승 이후 3년간은 한국시리즈와 거리가 멀었지만, 그럼에도 구단으로부터 5년 재계약의 선물을 받았고, 작년에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해 강적 SK와 막판까지 1위 다툼을 벌이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지난 시즌 삼성이 준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력의 힘으로 장원삼을 영입한 덕도 봤지만, 그 전까지는 패전처리도 버거웠던 차우찬을 리그에서 손꼽을 정도의 구위를 가진 선발투수로 성장시켰고, 평범한 불펜투수였던 안지만을 강력한 직구를 던지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키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권혁과 정현욱도 여전히 삼성 불펜의 한 축을 이루며, 경기 후반 삼성이 리드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0시즌의 차우찬과 안지만이 전부가 아니다. 선동열 감독이 재임 기간 중 삼성 투수들을 리그에서 손꼽을만한 일류투수로 만들어낸 사례는 무수히 많다. 투수코치 시절부터 손을 봐 최고의 에이스로 성장시킨 배영수를 비롯해, 유망주에 불과했던 권혁, 권오준 등을 최고의 불펜투수로 발돋움시켰다.

 

또한, 오승환을 선동열 자신이 마무리로 뛰던 시절을 연상시킬 만큼 무시무시한 직구를 던지는 괴물투수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른이 넘도록 변변찮은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공만 빠른 선수로 남아있던 정현욱도 선 감독 체제하에서 빛을 본 선수다.

 

다만, 불펜투수를 키운 실적에 비해 뛰어난 선발투수를 키워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동안 삼성의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던 탓에 김광현, 류현진, 한기주 같은 특급 유망주를 수급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09년 공동 다승왕에 오른 윤성환, 지난해의 차우찬을 뛰어난 선발투수로 만들어내면서 선발투수를 잘 키워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어느 정도는 불식시켰다.

 

투수 육성능력은 김성근 감독이나 김시진 감독이 더 뛰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투수교체 타이밍을 잡는 능력만큼은 타 감독이 흉내를 내기 어려웠던 선 감독만의 비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즌 삼성은 5회까지 리드를 잡은 경기에서는 어지간하면 패하지 않았다. 삼성의 불펜 자원이 그만큼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선동열 감독의 절묘한 투수 교체 타이밍도 삼성의 5회 리드 시 불패 신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지난 시즌뿐 아니라 선 감독의 재임 기간 내내 그의 투수교체 타이밍은 많은 팬과 전문가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임 초기에는 투수에 비해 타자를 키우는 재주가 없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선 감독 체제하에서 성장세를 보여준 젊은 타자는 투수들 못지않게 많다. 현재 삼성의 중심타선을 형성하고 있는 젊은 3인방인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은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에 기량을 꽃 피운 선수다.

 

박진만을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한 김상수를 비롯해 이영욱, 오정복 등 선동열 감독 밑에서 팀의 주축 멤버로 발돋움한 젊은 타자들의 숫자는 투수들에 뒤지지 않는다. 롯데에서는 최악의 선수였지만 삼성에서는 최고의 2루수로 발돋움한 신명철과 지난 시즌 다소 부진했지만 늦은 나이에 뛰어난 외야수로 모습을 보인 강봉규를 통해서 베테랑을 갱생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팬들에게 지지 받지 못한 실패한 감독

 

이처럼 투-타에 있어 세대교체에 성공하고, 부임하자마자 2번 연속 패권을 차지했으며, 3년간 전력을 다지다가 결국 준우승까지 이르게 한 선동열 감독이 구단으로부터 급작스럽게 해임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선동열 감독은 부임부터 삼성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동열은 삼성의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해태의 전설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삼성의 우승을 번번이 좌절시킨 원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삼성 출신의 레전드인 이만수가 아니라 삼성의 적이었던 선동열이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사실은 팬들이 그를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지휘봉을 잡자마자 2년 연속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해 우승에 목마른 삼성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중 2번을 안겨줬지만, 선동열 감독은 여전히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삼성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색깔을 지워버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삼성은 과거부터 이만수, 김성래, 강기웅, 이승엽, 양준혁 등으로 대변되는 강한 공격력의 팀이었다. 해태가 전성기를 달렸던 시기에도 늘 리그 최고의 타선은 삼성이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타력은 믿을 것이 못 된다며, 타력을 소홀히 하고 투수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의 올드팬으로선 자신의 라이벌이 사령탑이 된 것도 못 미더운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색마저 부인하기 시작하자 더더욱 선 감독을 지지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선동열 감독 특유의 스타 의식도 삼성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선동열의 삼성이 우승을 차지했던 당시 삼성의 팀득점은 리그 수위권이었지만, 선동열 감독이 보여준 지키는 야구스타일 탓인지 많은 삼성팬들은 팀이 가진 공격력이 빈약하다고만 느꼈다. 그럼에도 선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해나갔다.

 

선동열 체제하에서 기용된 외국인 타자는 크루즈가 유일했을 정도로 외국인 선수는 언제나 선발 투수 두 명을 활용했고, 팬들은 이런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 크루즈마저 시즌 중 퇴출당하자, 선 감독은 또 다시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타력은 여전히 믿을 것이 못 되고, 투수력을 기본적으로 다져야 이길 수 있다는 선 감독 특유의 지론은 팀의 성적을 상승시키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해주었지만, 팬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물론, 모든 팬이 선 감독의 야구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선동열 감독 특유의 지키는 야구의 매력에 빠져 지지를 표한 삼성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선 감독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까지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 것은 푸른 피의 레전드양준혁의 은퇴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이었다. 연속 4위와 주축 선수의 잇단 부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가뜩이나 예년만큼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선 감독이었지만, 2010시즌은 세대교체의 완숙기에 접어들며 성적에 있어 극적인 반등을 가져왔다. 하지만 양준혁의 은퇴는 선동열 감독의 이미지를 악당으로 만들고 말았다.

 

사실 양준혁의 은퇴에 선 감독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를 은퇴시킨 감독이라는 이유로 선동열 감독을 향한 삼성 팬들의 비판 여론은 거셌다. 성적은 좋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삼성팬들은 감독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기는 것이 오히려 괴롭다고 토로한 팬들마저 있었고, 심지어 다른 팀을 응원하겠다며 떠난 팬도 적지 않았다.

 

커리어에 있어서는 삼성이 거둔 우승 중 절반을 이룩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랜 라이벌 팀의 상징적인 인물이 사령탑으로 취임하여 삼성이 가진 전통의 색을 부인하고, 삼성팬들이 원하는 야구를 하지 못한 것, 그리고 삼성팬들이 절대적으로 추앙하는 선수의 은퇴를 가져왔던 것이 선동열 감독의 여정이 실패로 끝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만약 선동열 감독이 삼성이 가진 전통과 색깔을 유지한 채 화끈한 공격 야구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2회 차지했다면, 과연 이런 식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해임 통보에 팬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선동열 감독이 이룩한 뚜렷한 업적에도 그의 퇴장을 반대하는 삼성팬보다 그의 퇴장을 반기는 삼성팬이 더 많다는 사실은, 6년이라는 긴 여정 동안 선 감독이 기울인 모든 노력이 어쩌면 허상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프로야구의 주인공은 감독, 선수, 구단이 아닌 팬이다. 성과와 업적으로는 선동열 감독만큼의 위치에 오른 감독은 현 리그에 김성근 감독을 제외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선 감독의 삼성에서의 감독 생활은 성공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낯설다. 오히려 프로야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팬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선 감독의 야구는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선동열 감독의 갑작스러운 해임의 상세한 정황은 짐작하기 어렵지만, 삼성 수뇌부에서 선동열 감독 경질을 결심한 배경에는 그가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씁쓸하게 퇴장하지만, 쉬는 동안 자신이 왜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여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선동열식 야구를 재정립할 수 있다면, 감독 선동열에게 모자란 2%를 채워주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Lenore 신희진[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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