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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과도한 세리머니보다 과도한 규제가 더 문제!

by 카이져 김홍석 2011. 1. 13.

끝내기 안타를 친 후에 맘대로 좋아하지도 못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이 이보다 답답할까. 다가오는 시즌부터는 좋고 싫은 감정조차 마음대로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내려진 엄명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는 지난 11일 올 시즌부터 끝내기 홈런 및 안타 후 과도한 환대행위(물통, 쓰레기통, 헬멧 등으로 때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선수단 행동지침을 시행하기로 했다. 여기서 KBO과도한이라는 단어에 유독 방점을 찍었다. 선수들의 과격한 세리머니가 때로는 정도를 지나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고, 이것이 상대팀 입장에서는 예의가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선수들의 세리머니가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은 사실 이전부터 있어왔다. KBO의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인식(63) 전 한화 감독은 최근 들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선수들의 세리머니에 대해 정도를 넘어섰다.”고 꼬집은 바 있다.

 

“(끝내기 안타나 홈런을 날린 선수를) 발로 걷어차고, 때리고, 쫓아다니며 얼음물을 붓기 일쑤다. 심지어 헬멧을 썼다고는 하지만 방망이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다른 헬멧으로 내리치기도 한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너무 높아졌다. 자칫 이러한 장난이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선수도 동료들의 축하 세리머니를 피해 도망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도중 과도한 세리머니로 인해 해프닝이 벌어진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야간경기에서 결승 홈런이나 안타를 날린 선수에게 달려가 물폭탄을 퍼부었는데, 그 선수가 감기에 걸려서 며칠간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했다. 배트로 헬멧을 두드리거나 공을 쥔 손으로 뒤통수를 때려서 머리에 부상을 당할 뻔했던 다소 아찔한 경우도 있었다.

 

한 선수는 솔직히 어떤 경우에는 몇몇 선수들이 이런 때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푸는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평소에 범접하기 어려운 선배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간다거나, 물세례를 퍼붓는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식이다.

 

나도 언젠가 홈런을 치고 덕아웃에서 환송을 받다가 누구에게 뒤통수를 하고 세게 맞았는데, 헬멧을 쓰기는 했지만 그 충격으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뒤돌아보니 후배 선수가 배트로 머리를 친 것이었다. 그 분위기에서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어서 그냥 넘어가기는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자칫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혐오감을 초래할 수 있다. 악의는 없다고 하지만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행동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불쾌감을 안길 수 있다면 자제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자발적인 감정표현을 인위적인 지침을 만들어서 규제하려는 사고방식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아마추어나 10대 학원 선수도 아니고, 프로라면 그 정도는 세리머니를 알아서 자제 또는 순화하라는 권유권장정도의 지침만으로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KBO는 일부 선수들의 과도한 세리머니에 대한 우려를 내세웠지만, ‘과도함이라는 수식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성인 프로 선수들의 표현방식을 일일이 규제하려고 하는 낡은 사고방식이 아닐까?

 

프로 선수라면 자기만의 개성과 쇼맨십으로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도 하나의 의무다. 끝내기 세리머니도 그 중 하나다. 단지 기쁨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도 기왕이면 품위 있게해달라고 권장할 수는 있지만, ‘물이나 방망이 같은 도구는 사용하지 말라. 과도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식으로 일일이 수위에 제약을 두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선수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촌스러운 발상이다.

 

일부 선수들의 일탈된 세리머니에 대한 야구 원로들의 애정 어린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법으로 막아야 할 것풍속으로 권장할 것이 엄연히 따로 있다. 선수들이 욕을 한다거나 침을 뱉는다든지, 또는 관객이 보는 장소에서 프로선수로서 모범적이지 못하거나 직접적으로 혐오감을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히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규제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길게 봤을 때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과도한 규제가 선수들의 창의성을 가로막고 팬들에게도 혐오감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 역사를 향해가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우리의 프로 선수들이 그 정도의 융통성과 자정능력도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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