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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KIA의 6선발 로테이션, 고집인가 묘수인가?

by 카이져 김홍석 2011. 1. 26.

조범현 감독이 처음으로 부임했던 2008시즌, 6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을 때, KIA가 직면한 문제는 상당히 많았다. 투수진도 문제였지만, 해태 시절까지 포함해 타이거즈 역사상 최저 홈런(48)을 기록하면서 장타력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보통의 감독이라면 타선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타이거즈 팬들에게 자존심을 되찾아주겠다던 조범현 감독의 선택은 타력 보강이 아닌 투수력 보강이었다.

 

조범현 감독의 회심작 6선발

 

KIA구단은 바로 전 시즌까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한 메이저리거 아킬리노 로페즈를 영입했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검증이 끝난 릭 구톰슨까지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맞이한 2009, 이 두 명의 투수는 27승을 합작하며 타이거즈가 1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범현 감독이 시즌 전에 공언했던 것처럼 타이거즈 팬들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것이다.

 

당시 조범현 감독만이 꺼내든 독특한 전술이 바로 6선발 체제였다. 이는 사실 일본 프로야구에서 6선발 체제에 길들여져 있던 구톰슨의 요구에 따라 시도된 것이다. 구톰슨은 4일 휴식 후 등판에 난색을 보였고, 실제로 25번의 선발등판 중 4일 휴식 후 등판한 경기는 3번에 불과하다.

 

각별하게 구톰슨의 등판간격을 지켜준 덕분에 그는 시즌 중후반까지 에이스의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구톰슨이 시즌 막판 체력적인 문제점을 보인 것도 사실이라 등판간격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팀과 선수가 모두 손해를 봤을 확률도 높다. 조범현 감독 스스로도 6선발 체제를 도입하여 선발투수들의 체력을 관리해준 덕분에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2009년 우승은 6선발 체제 덕분?

 

그러나 12년의 기다림 끝에 달성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단순히 ‘6선발 체제의 덕이었다고 보기에는 투/타에 있어서 더 큰 요인이 존재했다. 선발투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기에 KIA가 여름 들어서 더위에 지친 SK를 따돌리고 광란의 승률을 올리며 정규시즌 1위를 확정 지을 수 있었지만, 투수진에서 큰 역할의 해주었던 것은 네 명의 에이스급 투수들의 뒤를 완벽하게 막아준 손영민과 유동훈의 잠수함 콤비였다. 이 두 명은 불펜으로 나와 11 22홀드 23세이브를 합작했고, 특히 유동훈은 57경기에 등판해 단 4자책밖에 기록하지 않은 놀라운 투구를 보이며 KIA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불펜진의 대활약뿐 아니다. KIA가 여름에 치고 올라간 것은 선발투수들의 덕보다는 공격력의 힘이 컸다. 특히, 20 4 .833의 엄청난 승률을 올렸던 8월에는 타자들이 33리의 팀 타율과 43홈런을 터뜨리며 맹활약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같은 기간 3할 이상의 팀 타율을 기록한 팀은 KIA가 유일했고, 두 번째로 타율이 높았던 SK가 기록한 .281의 타율을 크게 웃돌았다. 홈런포 또한 두 번째로 많은 롯데, 삼성보다 16개를 더 쏘아 올렸으며 .927라는 어마어마한 OPS를 기록했다.

 

4명의 에이스급 투수를 건강하게 돌린(중간에 윤석민의 이탈이 있긴했지만) 6선발 체제가 KIA의 우승에 크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은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손영민과 유동훈의 불펜 콤비, 그리고 최희섭, 김상현 그리고 나지완으로 대표되는 장거리포가 적시에 터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6선발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

 

김성근 감독이 투수들의 보직 파괴와 적극적인 플래툰 시스템으로, 김경문 감독이 좀처럼 변화를 주지 않는 라인업과 셋업맨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불펜운용으로 대표되듯이 조범현 감독하면 떠오르는 것이 ‘6선발 체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톰슨을 떠나 보낸 2010년에도 조범현 감독의 6선발 체제는 계속 유지됐다.

 

시즌 시작과 함께 6번째 선발의 기회를 부여받은 것은 전태현이었다. 그는 좋은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직은 유망주에 불과했다. 10번의 선발 등판에서 2 5패 평균자책 6.10으로 부진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구톰슨 대신 영입한 로드리게스, 라이트도 부족한 투구 끝에 퇴출되었고, 가장 마지막에 영입한 콜론이 비교적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한계투구수가 80개에 그쳐 가뜩이나 힘겨워하던 불펜진의 피로가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아준 전태현과 외국인 투수 나머지 한 자리가 부진했음에도 조범현 감독은 6인 로테이션을 고집했다. 이에 기회를 받은 것이 이대진, 김희걸, 곽정철, 이동현, 정용운 등이었으나, 선발투수의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할만한 투수는 그 누구도 없었다.

 

이들이 등판하는 대신 서재응(선발등판시 평균자책 3.34), 윤석민(3.77), 양현종(4.25), 로페즈(4.69), 콜론(3.91) 같은 선수들이 한 번씩이라도 더 등판하는 것이 팀에 더 이득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윤석민과 서재응은 잔부상과 팀 사정 등을 이유로 로테이션을 들락거렸지만, 이들이 5일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데 무리 없는 컨디션이었다면, 그들 대신 기량이 부족한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선발투수가 불펜투수를 보호하지 못하다

 

6선발을 운용하는 조범현 감독의 방법도 현명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앞서 콜론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6선발 체제를 운용하면서도 조범현 감독은 다른 감독에 비해서 선발투수의 한계투구수를 더 많이 가져가지 않았다. 6선발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선발투수가 일주일에 한 번만 던지면 되기 때문에 한 번 등판에 120개 이상의 투구를 기록하는 일이 잦다. KIA 선발투수들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등판했지만,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특별히 많다고 보긴 어려웠다.

 

리그에서 가장 완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로페즈의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99.6개로 100개에 조금 못 미친다. 6선발 체제를 선택했다면, 선발투수가 다소 실점을 하더라도 마운드에 좀 더 오래 둘 필요가 있었다. 윤석민은 106.8개를 투구해 류현진 다음으로 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높았지만 선발 등판 경기가 적었고, 지난 시즌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해 준 양현종은 100.3개를 기록하며 리그에서 여섯 번째로 평균투구수가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 등판하는 투수들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투구수를 기록한다면, 고생은 불펜투수가 다 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 시즌 개막하자마자 KIA 불펜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손영민은 재작년과 마찬가지로 작년에도 많은 공을 던졌고, 3일 연투도 네 번이나 있었다. SK의 정우람과 이승호(20), 두산 고창성 등 리그에서 가장 잦은 등판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3일 연투는 손영민보다 적었다. 로스터에 한계가 있기에 6인 선발로테이션은 불펜진의 두께를 약화시켰고, 불펜의 두께가 약해진 결과, 쓰는 선수만 계속 쓰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결국 불펜진의 피로누적이 경기 막판 잦은 역전을 허용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6선발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

 

올 시즌 예상되는 KIA의 선발로테이션은 로페즈 - 윤석민 - 양현종 - 서재응 - 블레이클리라고 봐야 한다. 블레이클리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4명은 누가 1선발의 중책을 맡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네 명의 좋은 선발을 보유하고 있고, 지난해 팀 성적의 발목을 잡은 불펜진과 타선이 좋지 못함에도 또다시 선발투수를 영입한 것도 팬들은 불만을 품고 있는데, 심지어 조범현 감독은 이들에게 한 번의 등판 기회를 더 주는 대신, 이번에도 6번째 선발투수를 활용하려고 구상 중이다.

 

정녕 6선발을 성공하게 하고 싶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여섯 번째 선발이 최소한 팀이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기게끔 기량을 갖춰야 한다. 단지 기계적으로 6선발을 돌리기 위해 5이닝도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서는 안 된다. 적어도 5이닝 정도는 3~4실점 이내로 막아줄 수 있는 선발투수가 있어야, 6선발 로테이션을 돌리더라도 이해가 갈 것이다.

 

두 번째로, 선발투수들의 한계투구수를 다른팀보다 적어도 한 이닝 정도는 더 던지게끔 투수 운영을 해야 한다. 타 팀 선발투수들과 다를 바 없는 투구수를 주문한다면, 작년처럼 불펜진의 혹사는 필연적이다. KIA는 투수력이 좋은 팀이지만, 선발투수가 좋다 뿐이지, 지난해 리그 최다 블론을 기록했을 정도로 불펜진은 질과 양에서 발전이 더 필요한 팀이다. 그나마 잘 던지는 몇 명의 투수가 초반 혹사로 나가떨어지면, 6명의 선발투수가 모두 완투하지 않는 한 팀은 매 경기 후반을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인 로테이션, 고집인가? 묘수인가?

 

윤석민과 서재응, 두 명의 투수들이 최근 2시즌 동안 잔부상에 시달린 터라 6인 로테이션은 여건만 허락된다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팀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전력에서 넘치는 부분을 덜어서 모자란 부분을 메우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조범현 감독은 모자란 부분(불펜, 타력)을 채우는 게 아닌, 이미 강한 부분(선발진)을 재차 두텁게 쌓고 있다.

 

물론, 이러한 조범현 감독의 승부수가 2009년처럼 들어맞아 KIA 2년 만에 또다시 한국시리즈 패권을 잡을 수 있는 묘수가 될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6선발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에 모두 들어맞아 무적의 투수진을 갖출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팀 전력의 균형이 맞지 않은 모습이 명확해서, KIA 타이거즈의 팬들조차 응원팀의 오프시즌 행보에 불안한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조범현 감독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6인 선발로테이션은 한 해는 성공했고, 한 해는 실패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한 번 조범현 감독은 6인 선발진을 내세워 대권을 잡기 위한 회심의 한 수를 던지려 하고 있다. 블레이클리를 영입해 선발진을 강화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가 던진 한 수가 타이거즈 팬들의 불안한 시각을 잠재우고 타이거즈의 통산 열한 번째 우승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 Lenore[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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