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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일본 진출한 한국 투수들, 첫해는 고전한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2. 13.

야구에도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성공한 한국인 선수들의 해외 진출무대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 프로야구다. 많은 선수들이 국내보다 훨씬 좋은 야구환경에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풍족한 대우가 보장되는 일본야구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현해탄을 건넜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는 외국인, 특히 한국 선수들에게는 결코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었다. 내노라는 빅리그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도 일본무대를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치고 떠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한국 선수들에게도 쉬운 무대일 리 없다. 특히 진출 첫해인 데뷔 시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다. 1996년 일본에 진출해 센트럴리그 주니치 드래곤스 소속으로 마운드에 오른 선동열의 성적은 513세이브에 그쳤고, 시즌중반부터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도 겪었다. 한국무대를 평정한 국보급 투수의 몰락은 국내 팬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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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동열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며 이듬해 1138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선동열은 일본무대에서 보낸 4시즌간 104 98세이브, 198이닝 228탈삼진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하는 등 은퇴할 때까지 나고야의 태양이란 명예로운 별명으로 불렸다.

 

선동열과 함께 주니치에서 활약했던 이상훈도 비슷한 케이스다. 이상훈은 주니치 이적 첫해이던 98년에는 11경기에서 1(평균자책점 4.68)에 그쳤다. 하지만 이듬해 손가락 혈행장애로 셋업맨으로 보직을 바꾸었고, 바뀐 보직에서 훌륭히 적응하며 선동열과 함께 주니치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반면 정민태, 정민철같이 끝내 실력발휘를 못하고 초라하게 떠나야만 했던 선수들도 있다. 정민철은 2000년 요미우리에 입단하여 2, 평균자책점 4.81에 그쳤고, 1년 뒤에 입단한 정민태는 10경기에 등판하여 6.16의 평균자책점으로 2승에 그치는 등 출전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이러한 한국인 에이스들이 일본 진출 첫해에 부진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미 국내무대에서부터 많은 이닝을 소화하여 어깨가 혹사당해있는 상태였고, 당시만해도 해외진출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라 낯선 일본야구에 적응할만한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선동열과 이상훈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던 주니치와는 또 다르게, 요미우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정민태나 정민철, 조성민처럼 비슷한 포지션에서 외국인 선수 기용제한을 놓고 한국인 선수들끼리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겪는 등, 오히려 한국 선수들의 집중이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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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국인 투수들의 첫해 부진 공식에 대해 예외가 되는 것이 바로 임창용이다. 이미 국내무대에서 혹사의 대명사였던 임창용은 일본진출 당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한물간 투수로 치부되었으나, 오히려 일본무대에서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며 1533세이브의 호성적을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본무대에서 한국인 투수로서 첫해부터 발군의 성적을 올린 거의 유일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구대성도 나름 준수한 케이스로 꼽힌다. 구대성은 일본 진출 첫해인 2001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7910세이브, 평균자책점 4.06을 기록했다. 국내무대에서 보여준 위력을 감안하면 그리 화려한 편은 아니었으나, 당시 오릭스의 팀 사정상 타선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승리를 날린 경우가 많았고, 오릭스 입단전까지 미국와 일본진출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던 터라 리그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단지 구대성의 스타일상, 일본야구보다는 차라리 조금이라도 일찍 메이저리그에서 진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올 시즌에는 두 명이나 되는 메이저리거 출신 거물급 한국인 투수들이 동시에 일본야구에 도전장을 던진다. 박찬호와 김병현은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결코 잊을 수 없는 거물들이다.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빅리그에서만 무려 124승을 거두며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수립한 한국 야구의 자존심이고, 김병현은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던 정상급 클로저이자, 한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우승경험을 보유한 선수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가 일본무대로 진출한 경우는 많았지만, 미국무대를 거쳐 일본야구로 들어온 케이스는 아직까지 없었다는 점에서 박찬호와 김병현의 활약 여부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프로 생활을 내내 빅리그에서 보낸 사실상 미국형 선수에 가깝다. 리그의 수준 차를 떠나 미국과 일본의 야구 스타일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보다도 더욱 심하다.

 

박찬호와 김병현은 빅리거 시절에도 공격적인 피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투수들이다. 박찬호는 불펜에서 활약하다가 4년여 만에 선발투수로 복귀하는 터라 체력과 구종이 최대의 변수로 지적된다. 김병현은 오랜 공백으로 인하여 떨어진 경기감각의 회복 여부과 함께 정교한 선구안을 자랑하는 일본 타자들을 구위로 압도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박찬호와 김병현의 활약이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야구의 자부심과도 직결되는 코리안 메이저리거 출신이기 때문이다. 박사실 찬호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상태라 메이저리그에서는 불펜투수로 전향한지 오래고, 김병현은 3년여 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따라서 당장 첫 시즌에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일본무대에서 자칫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경우, 한국 야구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만큼 이들이 한국 야구사에 차지하는 위상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와 일본 야구가 서로 간에 은근한 자존심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박찬호와 김병현이 순조롭게 일본 무대에 연착륙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티스토리 뉴스뱅크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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