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프로야구는 좌완투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한화의 류현진, SK의 김광현을 필두로, 삼성의 장원삼과 차우찬, 롯데의 장원준, LG의 봉중근 등 두산, 넥센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은 모두 수준급 왼손투수들을 한 명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김정수 이후로 뛰어난 왼손투수를 보유하지 못해 오랜 시간 고생한 KIA에도 2009년부터 양현종이 등장해 황량했던 타이거즈 왼손투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작성 중이다.
▲ 부담감 속에 에이스가 되어버린 2010년
2010시즌은 양현종이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시즌이었다. 2009년만 하더라도 190⅓이닝을 던지면서 14승 5패를 기록한 로페즈가 있었고, 3.24의 평균자책과 13승의 성적으로 그 뒤를 받친 구톰슨, 여기에 국가대표 우완 에이스로 평가 받는 윤석민도 양현종의 앞에서 그의 부담을 덜어줬다.
그 덕분인지 양현종은 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낮은 평균자책(3.15)과 세 번째로 낮은 피안타율(.238)로 12승을 수확, 데뷔 3년 만에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터뜨리며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2008년 자신을 괴롭힌 제구력 부분에서 큰 발전을 보이며, 5.7개였던 9이닝당 볼넷 허용수를 3.5개로 줄인 것이 환골탈태의 주요 비결이었다.
하지만 2009시즌과 달리 2010년의 양현종은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마운드에 서야 했다. 로페즈는 윈터리그 참여의 후유증인지 전반기에 1승 8패 평균자책 5.63의 부진에 허덕였고, 윤석민은 팀 타선 불발과 불펜진의 잇단 방화에 지쳐 6월 18일 SK와의 경기에서 역전패한 분을 참지 못하고 라커룸 문을 강타해 손가락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미 구톰슨은 KIA와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 결별한 상황이었고, 구톰슨의 대체로 영입한 로드리게스는 시즌을 뛰어보지도 못하고 부상으로 이탈했다. 이어서 영입한 라이트를 단 두 경기만에 부상을 당했고, 콜론은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체력적 문제로 5이닝을 넘기기도 버거워했다.
그런 상황에서 3선발로 평가되던 양현종은 졸지에 에이스의 중책을 떠맡아야 했다. 다른 투수들이 모두 흔들리던 시기에 홀로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키면서 전반기에만 12승을 거두어 김광현, 류현진 등과 다승왕 다툼을 벌였고, 6월 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처음으로 완봉승을 맛보는 기쁨을 안기도 했다.
▲ 여름 이후 추락하다
6월 한 달 동안 5경기에 선발로 나와 2승을 거뒀고, 1.87의 평균자책을 기록한 양현종은 그러나, 7월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부진이 시작됐다. 7월 4일 등판한 경기에서 양현종은 한달 전에 셧아웃 시킨 삼성타선을 맞이해 1이닝 동안 4개의 4사구를 남발하는 등 5실점하며 1회 이후 마운드를 내려왔고, 7월 한달 동안 4.88의 평균자책으로 부진했다.
8월에는 더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8월에 등판한 5경기에서 단 한 번도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 된 경기도 2번이나 됐다. 문제는 역시나 4사구였다. 8월 한달 동안 양현종은 23⅓이닝을 소화하면서, 1이닝당 거의 한 개에 육박하는 20개의 사사구를 허용해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양현종은 9월에 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류현진과 김광현이 주춤한 사이 다시 한번 다승왕 경쟁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다승 공동 1위를 노릴 수 있었던 한화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끝내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3⅔이닝 동안 8실점의 부진한 투구를 보이며 다승왕 등극에는 실패했다.
▲ 성장하지 못했던 2010년?
좌완에이스의 모습을 보이며 타이거즈 팬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양현종이지만, 사실 2010시즌과 2009시즌의 기록을 비교하면 양현종이 성장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해 양현종이 2009년보다 나아진 것은 4승을 더 거둔 다승 뿐이었고, 평균자책은 3.15에서 4.25로 1점 이상 높아졌고, 1.29로 준수했던 WHIP은 규정이닝을 충족한 투수들 중 세 번째로 나쁜 1.58까지 추락했다.[WHIP=(안타+볼넷)/이닝]
문제는 2009년에 좋아졌던 제구력이 다시 나빠졌다는 것이다. 9이닝당 3.51개였던 볼넷 숫자는 2010년 5.21개로 대폭 늘어났고, 이는 규정이닝을 채운 15명의 투수 중 번사이드(5.27개) 다음으로 많은 기록이다. 피안타율도 .278로 치솟았고, 9이닝당 탈삼진도 8.41개에서 7.71개로 줄어들었다. 홈런 허용율은 줄었지만, 작년의 양현종은 투구수가 많아 빠른 경기진행을 선호하는 팬들에게 관전을 피해야 할 투수로 낙인찍혔다.
승수가 늘어난 것도 ‘이길 줄 아는 투수가 됐다’기 보다는 단순한 ‘행운’이라 평할 수도 있다. 지난해 타이거즈 타자들은 경기당 4.59점을 득점하여 리그에서 세 번째로 저조한 득점력을 보였지만, 양현종이 등판했을 때는 6.09점을 뽑아주었다. 양현종의 득점지원은 리그에서 장원준, 김선우 다음으로 높은 것이며, 로페즈가 3.89점, 서재응이 4.93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KIA 타자들이 양현종만 편애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현종이 작년보다 나빠진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에이스로서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서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껴 마운드에서 자신 있게 공을 뿌리지 못했고, 이는 결국 사사구 남발로 이어졌다.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 타이거즈가 16연패 기간 동안 보여준 양현종의 투구다.
연패 기간 동안 양현종은 3경기에 등판해 13이닝 동안 11실점하며 2패만을 기록했다.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7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하고도 타선 불발로 승리를 챙기지 못했으나, 이후 SK전(5이닝 5실점)과 삼성전(1이닝 5실점)에서는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행히 최하위인 한화를 5이닝 2실점으로 막아 간신히 연패를 끊긴 했지만, 아직 에이스의 역할을 짊어지기에는 경험이 적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양현종에게 더욱 중요한 2011시즌
2010년의 양현종은 팬들에게 에이스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막판까지 류현진, 김광현과 다승왕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실질적으로 2009년보다 나빠진 성적은 양현종에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다행히 새 시즌을 맞이하는 KIA의 투수력 전망은 좋은 편이다.
로페즈와 윤석민은 작년 부진의 설욕을 다짐하며 와신상담하고 있고, 서재응은 리그에서 가장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라는 명성을 이어갈 태세다. 따라서 에이스의 부담감을 벗어 던진 양현종이 좀 더 편한 환경에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자만이나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해 거둔 16승은 운이 많이 따른 결과라 생각하며 마운드에 오를 필요가 있다. 제구력을 좀 더 가다듬어 볼넷을 줄이지 않으면 16승이 아니라 16패를 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냉혹한 프로야구의 세계다.
양현종은 타이거즈에 있어 김정수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왼손 에이스다. 양현종이 수준급 좌완의 등장으로 흥분에 휩싸인 타이거즈 팬들의 환호를 앞으로도 계속 받길 원한다면, 작년의 영광을 추억하기 보단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어 매 경기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마운드에 올라야 할 것이다.
// Lenore 신희진 [사진제공=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