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투수에 비해서 프로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더욱 요구된다.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좀처럼 겪기 어려운 빠른 직구와 현란한 변화구를 눈에 익혀야 하고 각 투수들의 장단점, 투구 습관 등 타자가 프로 1군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부분은 투수보다 많다.
이 때문에 프로 데뷔 첫해부터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타자들은 투수들에 비해 그 수가 적은 편이다. 지난해 도루를 제외하면 전 부문에 걸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대호도 최고타자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입단 6년차에 접어들면서였고, 김현수 역시 3년차 시절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2001년의 김태균 이후 7년 만에 타자로 신인왕을 수상했던 최형우는 그 해 MVP를 차지한 김광현보다 5살이 더 많은 중고 신인이었다.
그러나 신인 타자가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프로야구에도 입단하자마자 리그를 주름잡았던 ‘괴물급 신인 타자’들이 존재했다. 여기에 프로로 입단한 바로 그 첫 시즌부터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신인 타자 BEST-5를 선정해봤다.(신인 자격은 있어도, 입단 2년차 이상의 중고 신인은 제외)
1위. 장효조(1983년, 삼성)
장효조는 1983년 당시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였다. 물론 프로 초창기였던 당시에는 첫해부터 프로 무대에 적응하여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것이 일대 사건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장효조는 실업야구를 평정하고 27살의 늦은 나이에 프로에 입단하긴 했다고 해도, 그가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최고타자 자리에 올라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해에 장효조는 타율(.369), 출루율(.469), 장타율(.618), OPS(1.087), 최다안타(117개) 1위에 올랐으며, 홈런(18개)과 타점(62개)은 각각 3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22개를 성공시킨 도루 부문에서도 리그 4위에 오르며 호타준족으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MVP를 받아야 마땅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지만, 당시 리그 MVP는 홈런(27개)과 타점(74개)에서 2관왕에 오른 이만수 현 SK 수석코치(당시 삼성)에게 돌아갔고, 신인왕 역시 타율 4위(.312)에 오른 박종훈 현 LG 감독(당시 OB)이 수상했다. 신인왕 투표에서는 ‘신인답지 않다’는 이유로, MVP 투표에서는 ‘신인’이라는 이유로 장효조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MVP를 수상한 이만수가 당시 기록했던 OPS(출루율+장타율)은 장효조와 비교하면 다소 초라한 .932에 그쳤고, 이것이 리그 2위의 기록이었다는 점에서 장효조가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다.
2위. 양준혁(1993년, 삼성)
1993년의 양준혁도 MVP를 수상했다 하더라도 납득이 갈 정도로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106경기에 출장하여 .341의 타율로 리그 1위에 올랐고, 출루율(.436)과 장타율(.598)도 각 부문 2위인 장종훈(.405)-김성래(.544)를 크게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비율스탯을 기록했다. 누적 스탯에서도 다른 선수들보다 20경기 가까이 결장했음에도 홈런(23개)과 타점(90개)에서 리그 2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비록 신인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28홈런 91타점으로 두 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팀 선배 김성래에게 MVP를 양보한 것은 양준혁에게 있어서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도 신인왕을 차지하지 못한 장효조는 87년에 MVP를 수상하며 83년의 아쉬움을 달랬지만, 양준혁은 끝내 단 한 번도 MVP의 영광을 차지하지 못한 채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통산 최다안타 1위, 최다홈런 1위, 최다타점 1위, 최다득점 1위에 빛나는 양준혁은 단일시즌 MVP는 아닐지라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혹은 ‘프로야구 역사의 MVP’라 불려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당시 양준혁이 막판에 페이스를 끌어 올리며 김성래에 1타점 차로 따라붙자, 우용득 당시 삼성 감독은 시즌 마지막 2경기에서 양준혁과 김성래를 모두 출장시키지 않았다. 팀 내의 서열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미리 수를 쓴 것이다.)
3위. 박재홍(1996년, 현대)
1996시즌엔 일약 ‘박재홍 신드롬’이 일어났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흔치 않은 30홈런-30도루를 신인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달성했으며, 홈런(30개)과 타점(108개)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나마 박재홍에게 신인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103개의 삼진을 당해 이 부문 2위에 올랐다는 것 정도다.
3할에 조금 못 미치는 .295의 타율에 그쳐 MVP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박재홍은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옥에 티가 있다면 도루 성공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괴물 신인’ 소리를 듣던 1996년에도 36도루 17실패로 성공률이 67.9%에 그쳤고, 통산 도루 성공률도 64.8%로 도루효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4위. 김재현(1994년, LG)
장효조는 실업야구를 평정하고 나이 27세에, 양준혁 역시 삼성에 입단하려는 목적으로 쌍방울의 지명권을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상무에 입단한 후 24살부터 프로 무대에 등장했다. 박재홍 또한 연세대에서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후 입단한 케이스로 이들은 모두 대학이나 실업무대를 거치며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재현은 다르다. 1994년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한 김재현은 첫 해에 1경기를 뺀 나머지 모든 경기를 소화하며 3할에 가까운 타율(.289)을 기록했고, 21개의 홈런, 2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됐다. 도루실패가 4번에 불과, 도루 성공률도 84%나 됐다.
김재현보다 많은 홈런과 많은 도루를 기록한 대졸 타자들도 존재하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선수가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홈런과 두 번째로 많은 타점(80개)을 기록했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이것이 ‘고졸 신인’ 김재현을 네 번째 순위로 놓은 이유다.
5위. 유지현(1994년, LG)
앞서 언급한 김재현과 정교한 방망이를 보여준 서용빈, 그리고 그들과 ‘신인 트로이카’로 명성을 날리며 1994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던 유지현이 5위다. 그는 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톱타자로 전경기에 출장했으며 .305의 타율과 15개의 홈런, 51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이 해에 유지현이 기록한 홈런과 도루 개수는 그의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
1994년은 프로 2년차에 접어든 이종범이 4할 타율과 200안타에 도전하면서 모든 야구팬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 있었지만, 같은 유격수 포지션에서 최다안타 3위, 도루 2위에 오른 유지현의 등장도 LG팬을 열광시켰다. 거기에 팀을 우승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동료인 김재현-서용빈을 제치고 신인왕 수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 그 밖에 뛰어난 활약을 보인 신인 타자는…?
일부 야구팬들은 어째서 이종범이 이 순위에 없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인왕은 양준혁에게 양보했지만, 이종범은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안타-타점-도루에서 팀 내 최다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치며 신인왕 양준혁과 MVP 김성래가 버틴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정규시즌에서도 전준호와 치열한 도루 타이틀 쟁탈전 끝에 2개 차이로 2위에 머물렀지만, 7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당시 주전 타자들이 부진했던 해태의 공격력을 이끌었다. 하지만 도루를 제외하면 이종범의 신인시절 성적은 타율 2할8푼, OPS .762로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았다. 이종범이 본격적으로 야구천재다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부터였다.
이 외에도 4억4,000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해 1997년 최다안타 3위에 오른 이병규, 쌍방울에 입단해 첫 해에 27개의 홈런을 기록한 김기태(타율은 .262로 낮았다), 1990년 신인으로 주전포수 자리를 꿰차며 팀을 첫 우승으로 이끈 김동수, 비록 88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입단해 .335의 타율과 20개의 홈런을 기록한 2001년의 김태균도 인상적인 데뷔 해를 보낸 타자들이라 할 수 있다.
프로야구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에는 90년대보다 첫 해 뛰어난 활약을 보인 타자가 더 많았다. 1987년 최다안타왕을 차지하며 신인왕을 수상한 빙그레 이정훈(타율 .335, 4홈런 20도루), 타이거즈의 처음이자 마지막 신인왕인 1985년의 이순철(타율 .304, 12홈런 31도루) 등도 강렬한 데뷔 시즌을 보낸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류현진이나 오승환의 경우처럼 투수들은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도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타자들은 갈수록 1군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10년간 타자 신인왕은 3명에 불과한 것이 이를 보여주며, 이 중 최형우와 양의지는 입단 후 경찰청에서 실력을 가다듬은 후에 1군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앞으로도 신인으로 대단한 활약을 펼친 타자들은 대부분 2군에서 오랜 기간 조련을 거친 ‘중고신인’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졸 타자의 경우는 2군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1군에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Lenore 신희진[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티스토리 뉴스뱅크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