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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아직 어린 에이스들, 항상 잘할 수는 없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4. 15.

‘코리언특급’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이던 1999년 갑작스러운 슬럼프에 빠져 고전한 적이 있었다. 이전까지 2년간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29승을 거두며 다저스의 풀타임 선발투수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데다, 겨우내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까지 받았던 박찬호의 입지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찬호는 99시즌 예상을 깨고 극심한 난조에 빠지며 13 11패 평균자책점 5.23이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당시 평균자책점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최악의 기록이었고, 13승도 정규시즌 막판에 타선의 지원을 등에 업고 몰아치기로 거둔 승수들이었다.

 

훗날 2002 FA로 텍사스로 이적했을 당시에는 허리부상이 부진의 빌미가 되었던 것과는 또 다르게, 이때는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부진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오프시즌 기간 동안 아시안게임 대표팀 참여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는 등의 추측만 난무했을 뿐, 실질적으로 특별한 부상도 없었고 당시 대표팀에 합류했던 다른 프로 선수들의 활약과 비교해도 박찬호의 부진은 원인 모를 슬럼프에 가까웠다.

 

박찬호는 훗날 시간이 흘러 이때를 가리켜나도 모르게 다소 자만심에 빠졌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바 있다. 그로 그럴 것이 박찬호는 당시만 해도 26세의 혈기왕성한 영건이었고,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거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생의 꿈이던 메이저리그에서 일급투수로 자리를 잡고, 목구멍의 가시 같은 병역문제도 해결한 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던 것이다.

 

20승도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이전과 달리 경기는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 않았고 여러 가지 악재들이 겹치자 박찬호 스스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한만두 사건(타티스에게 한 이닝 연타석 만루홈런 허용)’이나, 팀 벨처에게 날린 태권 발차기 해프닝 등도 모두 이때 벌어졌다.

 

찬사와 갈채에만 익숙해져 있던 박찬호로서는, 주변의 높은 기대가 언제든 싸늘한 시선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경험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고 회고했다. 반드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라는 표현으로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으며, 정신적 안정을 위하여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99년의 시련은, 거칠 것 없는 비상에만 익숙해져 있던 박찬호가 잠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했다. 심기일전한 박찬호는 이듬해 평균자책 3.27을 기록하는 뛰어난 피칭으로 18승을 거두며 자신의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올 시즌 초반 프로야구에서는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토종 에이스들의 나란히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류현진, 윤석민, 김광현, 양현종 등 특급 투수들이 모두 아직까지 첫승을 신고하지 못한 채 잇단 부진으로 논란의 도마에 오른 상태다.

 

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프로에 데뷔하여 일찍 두각을 나타냈지만, 알고 보면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다. 일반적인 또래들 같으면 군대에 갔다가 갓 대학에 복학할 시기이거나, 이제 겨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점에 있는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 나이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고 많은 돈을 벌게 되면서 스포트라이트에도 익숙해져 있지만, 그들 역시 언제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미숙한 부분이 많은 젊은이들인 것이다.

 

류현진이나 김광현같은 선수들에게는 언제부터인가대한민국의 에이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선수들 본인이나 지켜보는 팬들이나, ‘그들이 잘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퀄리티스타트를 하고 승리투수가 되는 것쯤은 이제 당연하게 여긴다. 좋게 보면 그것이에이스라는 칭호에 걸맞는 기대치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인 만큼 때로는 못할 수도 있는 것인데, 1~2경기 못하면부진이라는 딱지가 붙고 그것이 조금 더 길어지면슬럼프라는 우려가 나오기 일쑤다. 열 번 잘해도 한두 번 못하는 것이 더욱 부각되는 것은, 어린 나이에 에이스라는 책무를 짊어진 젊은 선수들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압박이다.

 

성공에만 익숙해진 사람들은 위기나 시련이 찾아왔을 때, 그에 대처하는 면역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은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재목들이다. 벌써부터 끊임없는 성공에만 길들여지고 안주하기보다는, 많은 시련을 겪더라도 안팎으로 단단해지며 좀더 성장해야 할 시기다. 지켜보는 팬들도 잠깐의 부진으로 실망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보다는 긴 안목에서의 인내와 배려가 필요한 순간이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홍순국의 순 스포츠,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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