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 후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것은 바로 롯데 고원준의 일시적인 평균자책점 1위 등극 소식이었다. 고원준은 지난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3⅓이닝을 역투하며 8경기 연속 무실점과 평균자책점 0.00의 행진을 이어갔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고원준은 선발이 아닌 구원투수라는 점이다. 근데 벌써 8경기에 나서서 14⅔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초반이라고는 하지만 경기 후반에 나서는 구원투수, 그것도 마무리에 가까운 선수가 규정이닝을 채워서 평균자책점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구대성이나 김현욱이 활약하던 90년대 중후반도 아니고, 2011년 현재 프로야구에서 벌어진 기현상이다.(다행히 20일 경기에 등판하지 않으면서 현재는 순위에서 사라진 상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고원준은 지난 12일 사직 두산전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3이닝 이상(3⅓이닝)을 소화했고, 17일 잠실 LG전에서는 송승준에 이은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마찬가지로 3⅓이닝 동안 실점 없이 호투하며 데뷔 첫 세이브까지 올렸다. 이 사이인 14일 두산전에서 1이닝을 던지기도 했었다.
<고원준의 최근 등판일지>
4/12 두산전 3⅓이닝 39구 3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4/14 두산전 1이닝 25구 1피안타 2볼넷 2탈삼진 무실점
4/17 LG전 3⅓이닝 47구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4/19 한화전 3⅓이닝 37구 4탈삼진 퍼펙트
17일 LG전은 연패를 끊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치더라도, 고작 하루의 휴식 이후 다시 3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것은 무리한 등판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쯤 되면 고원준이 롱릴리프인지, 셋업맨인지, 마무리인지 헷갈릴 정도다. 한화전 역시 아슬아슬한 연장접전을 펼치느라 그랬다는 변명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제 겨우 만 20세에 불과한 젊은 투수의 어깨를 혹사시키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는 어렵다.
사실 고원준의 평균자책점 1위 등극보다 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양승호 롯데 감독의 기형적인 선수기용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난 한화전이 끝난 후, 롯데 구단 팬 게시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롯데 구단의 부진과 양승호 감독의 무능함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다.
요즘 롯데와 관련된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양승호 감독을 욕하는 것이 마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양승호 체제로 새롭게 개편된 롯데는 시범경기 1위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시즌초반 4승 2무 9패의 성적으로 7위에 처져 있는 부진에 빠져있다. 지난주에는 4연패의 수렁에 빠진 적도 있었다.
믿었던 선발진이 주전들이 잇단 부상과 슬럼프로 무너진데다, 특유의 핵타선도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선수들의 잦은 포지션이동과 빈번해진 작전구사로 대표되는 양승호식 야구가, 기존의 롯데 야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란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아직 시즌 초반인 만큼 양승호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이르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으로서 롯데의 지휘봉을 수락한 그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전임자의 그늘에서 비교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양승호 감독 체제의 부진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만큼 로이스터 감독이 남긴 여운이 짙어진다는 의미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양승호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롯데 팬들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지 못했다. 전임 로이스터 감독은 임기 동안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어냈으며, 부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이 구단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 등장한 양승호 감독은 사실 팬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우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로이스터를 경질해놓고, 제대로 된 프로 감독 경력도 없는 인물을 선임한 인사의 타당성에 대하여 팬들은 납득하지 못했고, 구단의 처사에 대한 의심은 오래가지 않아 감독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고 있다.
어차피 양승호 감독은 로이스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기는 야구’를 하라고 영입된 인물이다. 로이스터와 똑같은 방식의 야구를 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를 영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양승호식의 야구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이기지도 못하면서, 감동도 없는’, 결과적으로 가장 좋지 못한 상황을 계속 연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최강을 자랑했던 롯데 타선은 올 시즌 타율 .227, 53득점으로 각각 6위에 그치고 있다. 팀홈런은 5개로 8개 구단 중 최하위 기록이다. 롯데는 지난 시즌을 통틀어 연봉패를 단 두 번밖에 당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개막 이후 5경기만에 두 번의 영봉패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다소 좋아진 게 있다면 불펜의 안정감이지만, 대신 이번엔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마운드는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그것도 8경기에서 무자책점 행진을 벌이고 있는 고원준의 역투에 기댄바 크다. 흔히 불펜이 강하다면 뒷심이 좋아야 정상일 것 같지만, 롯데는 올 시즌 3점차 이하 승부에서 고작 1승 2무 6패에 그치고 있다. 불펜이 특별히 좋아졌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팀 전력이 하향평준화 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성적이 나오지 않다 보니 초보감독다운 무리수도 남발되기 십상이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심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양승호 감독은, 최근 경기에서 선발진이 무너졌다는 이유로 마무리 후보였던 고원준의 투구이닝을 늘리며 사실상 전천후 계투로 활용하고 있다. 그만큼 믿을만한 투수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아직 보직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시적인 기용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전임 로이스터 감독 체제하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발투수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며, 불펜에서도 필승계투조와 패전처리조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했고, 투수의 휴식일을 철저히 보장했다. 연투나 혹사 같은 단어는 로이스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로 인하여 롯데는 8개 구단 가장 싱싱한 선발진을 꾸릴 수 있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시즌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후반기 항상 뒷심을 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발휘되었다.
고원준은 지난해 넥센에서 선발 자원이었다. 1년 전 SK와의 경기에서는 노히트노런에 가까운 투구를 펼칠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은 재목이다. 불펜의 비중이 높아진 요즘 프로야구라지만, 어린 선수에게는 투구수와 이닝에 대하여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꼬이는 상황 속에서 양승호 감독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 체제 하에서 롯데의 부진이 깊어질수록, 로이스터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이기지는 못해도 팬들의 신뢰나 희망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 팬들이 양승호 감독에게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어쩌면 로이스터와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구시대의 야구’를 보고 있다는 데자뷰 때문이 아닐까?
// 구사일생스 이준목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