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야구라는 스포츠를 두고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맞는 말이다. 드라마 속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가 있듯, 야구도 1회부터 9회까지의 흐름 속에 그 모든 요소들을 담고 있다. 심지어 그 결과에 따라 때로는 감동과 전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감과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는 점까지도 닮아 있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가 명품이거나 걸작이 아니듯,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야구에도 막장 드라마가 존재한다. 야수의 실책이나 투수의 볼넷 남발로 인한 자멸, 투수의 혹사를 대가로 얻어낸 상처뿐인 승리, 필요 이상의 신경전으로 인한 심각한 난투극 등은 야구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패턴의 경기 내용이다.
그래도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야구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승리’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라운드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야구판 자체가 막장이 되는 일은 정말 봐주기 힘들다. 막장 드라마는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고 하지만, 그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단순히 욕만 하고 끝날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의 야구판이 딱 그렇다.
오상민... 추신수... 그리고 임태훈…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들이다. 오상민이 온갖 더러운 루머(?)에 휩싸이며 소속팀으로부터 웨이버 공시를 당했을 때만 해도 ‘그래, 1년에 한번씩은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애써 넘어가려 했었다. 어쩌면 오상민의 영향력이 야구계에서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좀 쉽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홍순국의 순 스포츠]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미국 결찰에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충격이었다.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아는 추신수였기에 실망이 더욱 컸다. 음주운전은 ‘살인미수’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 잡는 행위이며, 모두가 잘못임을 뻔히 아는 일이다. 따라서 ‘한 번의 실수’라는 이유로 쉽게 용서해줄 수 없는 문제다.
추신수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막장 드라마 같은 사건이 야구팬들의 눈과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주인공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와 일류 프로야구선수, 그들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자살시도까지. 실제 드라마의 소재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 아나운서의 미니홈피와 트위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아직 이 사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야구팬들에겐 충격일 수밖에 없다.(송 아나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은 정말로 해킹에 의한 누군가의 범죄로 밝혀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원래 ‘공인(公人)’이란 ‘공적(公的)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바로 이 ‘공인’의 범주에 속해있는 셈이다. 하지만 언어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거나 발전하기 마련이며, 지금에 와서 이 ‘공인’이란 단어는 ‘유명인’이란 말과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선수처럼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람들을 두고 포괄적인 의미로 ‘공인’이라 부르곤 한다.
스포츠 선수가 공인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서, 정치인과 연예인, 그리고 프로 스포츠 선수의 공통점은 그들이 버는 돈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떤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형의 재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며, 그것은 인기, 지지도, 팬들의 사랑에 의해 그 값어치가 매겨진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지만, 사실 그 실력이란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생산성을 지니지 못한 것이다. 단지 공을 빠르게 던지고 방망이를 잘 휘두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것이 ‘야구’라는 스포츠로 조직화되고, 그 스포츠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비로소 그 행위에 의미가 부여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야구 선수(정치인, 가수)가 야구(정치, 노래)만 잘하면 되지 사생활이 무슨 상관이야?”라는 말이 통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무형의 재화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아닌 그들을 지지하고 아끼는 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가 다 거기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들은 자신의 영역뿐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야구를 보는 것은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라는 것은 그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유발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어떤 한 선수가 개인의 사생활 문제 때문에 보는 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이미 그 선수는 ‘프로’라는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 앞에 둘 자격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다.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로 퇴출되는 것이 결코 과한 처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생활에서 비롯된 막장 드라마가 야구계를 어지럽히는 건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나 잘못이었다면 얼마든지 용서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거나, 사회적 통념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라면 아무래도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이미 일이 이렇게 널리 알려졌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가끔은 우리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그들에게만 지나칠 정도의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길이고, 또한 감수해야 할 부분인 것을. 일반인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각자의 특수성에 맞게 감수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듯, 공인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더라도 그라운드 안에서만 하자. 차라리 야구장에서의 난투극이나 오물투척이 낫지, 이런 식의 범죄행위나 치정극은 보고 싶지 않다. 더욱이 그 과정에 지독스러운 비극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막장 드라마만큼은 피해주길 바랄 뿐이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일도 제발 없었으면 한다.
// 한잔 생각이 간절한 일요일 새벽에… by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