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는 외국인 투수 돌풍이다. 삼성의 카도쿠라, SK의 글로버, KIA의 로페즈, LG의 주키치와 리즈, 두산의 니퍼트 등 외국인 투수들이 저마다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야구는 역시 투수놀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투수들에 비하여 타자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매우 초라하다. 9일 현재 삼성의 라이언 가코는 .247의 타율과 1홈런 27타점의 부진한 성적에 그치고 있다. 중심타선을 이끄는 거포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선수가 시즌의 40%을 훌쩍 넘길 동안 홈런이 1개라는 것은 치욕스런 일이다.
넥센의 코리 알드리지는 현재까지 6홈런 28타점을 기록 중이다. 가코보다는 결정력에서 조금 낫지만, 타율은 .228으로 더 한심하고 삼진은 무려 65번이나 당해 불명예스러운 1위다. 2위 김상현과도 13개나 차이가 난다. 이 정도면 ‘용병’이라는 타이틀은 고사하고 웬만한 국내 선수보다도 못한 성적이다. “이 선수들에게 줄 몸값으로 2군에서 쓸만한 유망주 서너명에 투자하는 게 더 낫겠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가코와 알드리지의 공통점은 둘 다 배트 스피드가 떨어지고, 국내 투수들의 볼배합을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코는 시즌 초반부터 지나치게 소극적인 스윙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는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자신감까지 잃은 모습이다. 알드리지는 스윙폼이 너무 커서 변화구에 대한 커트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노려서 치는 공이 아니면 십중팔구 삼진을 먹기 일쑤다. 결국 본격적으로 퇴출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낯선 리그에서의 데뷔 첫해인 경우, 보통 타자들은 투수보다 적응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들의 성적은 낙제점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코치는 “시즌 개막 이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아직도 적응 중이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한마디로 한국야구와 투수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좋은 타자들은 배팅 포인트를 최대한 뒤로 가져간다. 그만큼 변화구 대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코스의 공이 오더라도 빗맞은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대호나 김현수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타고난 선구안과 타격센스를 갖춘 것은 아니다. 어차피 야구는 확률싸움이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분석과 연구를 통하여 투수의 볼배합을 간파하여 노림수라도 강해야 한다.
“외국인 선수들도 살아남으려면 공부를 해야만 한다. 이쯤 되면 외국인 선수들도 상대팀에 장점과 단점이 다 노출되었을 시기다. 그럼 자신들은 한국 투수들의 습성이나 볼배합을 분석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 노림수도 가능한 법이다. 팀에서 주는 전력분석 자료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연구해서 자신만의 공략법을 찾아야 한다.
알드리지와 가코를 보면 시즌 개막 때와 비교해서 지금도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크게 향상된 부분도 발견할 수 없다. 웬만한 국내 선수 같았으면 벌써 2군행이다. 세계 어디를 봐도 외국인 선수를 그렇게 기다려주는 팀은 없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그만큼 한국야구의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야구해설가들은 가코나 알드리지가 결코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펠릭스 호세나 타이론 우즈, 제이 데이비스, 클리프 브룸바와 같이 한국무대에 성공한 타자들이 지금 한국무대에 돌아온다고 해도 쉽게 과거와 같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높아진 한국야구의 현재 수준이다.
이점은 이제는 한화 소속이 되어 경기 출장을 앞두고 있는 가르시아도 마찬가지다. 가르시아는 가코나 알드리지와는 달리 한국무대에서 이미 3년을 활약한 경험이 있다. 적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두 선수에 비하여 월등히 유리한 부분이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그만큼 이미 한국의 각 구단에 장단점이 극명하게 노출된 선수이기도 하다. 가르시아는 롯데에서 매년 세 자릿수 삼진을 기록했으며, 타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졌다. 롯데에서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 멕시칸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하지만,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형적인 ‘타고투저’ 경향의 리그임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비교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김성근 SK 감독은 색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굳이 타자를 데려오고 싶다면 메이저리그 경력보다도, 오히려 일본에서 검증 받은 외국인을 데려오는 게 낫다.”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로서 마지막 3할 타자였던 로베르토 페타지니의 사례가 좋은 예다.
페타지니는 99년 야쿠르트와 계약한 뒤 2001년 홈런-타점 2관왕을 차지하며 일본야구에서 최고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2008년과 2009년에는 LG에 입단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 힘으로 정면승부하는 미국보다, 파워는 떨어져도 정교하기로 소문난 일본야구에서 검증받은 선수라면 한국에서도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주장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타자로서 타율 3할 이상은 2009년 페타지니가, 30홈런-100타점 이상은 2008년의 가르시아를 끝으로 그 맥이 끊겼다. 과연 초창기와 같은 외국인 타자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 기록제공=Stat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