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약간 이상열기 수준이다. 역대 프로야구사에 이렇게 인기를 몰고 다니는 하위팀 감독이 있었던가?
한화 한대화 감독은 얼마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야왕’으로 불린다.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한대화 감독은 그냥 꼴찌팀의 감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한화의 성적부진이 한대화 감독이 아니라 무능한 구단 측과 열악한 선수층의 한계라는 점에서, 성적에 대한 질타보다는 팬들의 동정여론을 받는 정도였다.
하지만 5월 중순부터 한화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탈꼴찌에 성공하며 7위로 올라서자 한화 팬들은 들썩였다. 2009년 이후 한화 팬들조차 기대를 걸지 않았던 일을 해내자, 그때부터 한 감독을 ‘야왕’으로 칭송하는 목소리가 일어났다.
야왕, 말 그대로 ‘야구의 제왕’이라는 뜻이다. ‘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SK 김성근 감독을 패러디한 느낌도 준다. 성적이 조금 좋아졌어도 이제 겨우 7위에 불과한 팀의 감독에게 야왕이라는 찬사는 어딘지 모르게 난감하게 들리기도 한다. 한대화 감독 본인도 별명을 처음 들었을 때 “칭찬이 맞나? 어째 놀리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했을 정도다.
야왕이라는 별명 속에는 알고 보면 한화 팬들의 복잡한 감정이 녹아있다. 사실 시작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반반씩 섞여있었다. 꼴찌 시절엔 한대화 감독의 초라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꼬는 의미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열악한 상황에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팀을 재건해가는 한대화 감독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면서 팬들의 반응도 바뀌어갔다. 야왕은 그러한 팬들의 기대치와 미래의 희망이 반영된 별명이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에게 이름처럼 행복한 운명을 타고나라고 좋은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어주듯, 팬들 역시 한 대화 감독이 별명을 따라서 언젠가 한화의 재건을 완성하는 ‘야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한화에는 유독 친근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 많았다. 지금은 KIA 소속인 이범호는 한화 시절 ‘꽃범호’로 불렸다. ‘꽃보다 아름다운 범호’라는 뜻인데, 남자다운 외모의 이범호와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지만, 그 시작은 짓궂은 패러디에서 비롯됐다. 이범호와 닮은꼴 외모로 알려진 개그맨 오지헌이 출연했던 개그콘서트의 코너 ‘꽃보다 남자’를 빗대어 만들어진 별명이다. 어떻게 보면 비아냥대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제는 어느새 이범호를 상징하는 가장 친근한 별명으로 자리잡았다.
일본 지바 롯데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태균은 한화 시절 아예 ‘별명왕’으로 불렸다. 유명한 것만 간추려봐도 김실연, 김똑딱, 김비켜, 김뒤뚱, 김테레사, 김가발, 김질주 등등 그의 일거수일투족 자체가 모두 별명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듣기에 따라 당황스럽거나 민망하게 만드는 별명도 있었지만, 그런 표현 하나 하나가 모두 김태균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는 지수였다.
김성근 감독은 LG 시절인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난 후, 우승팀인 삼성 김응룡 감독으로부터 “야구의 신과 경기하는 것 같았다.”는 찬사를 들었고, 이후 ‘야신’은 김 감독의 별명으로 굳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성근 감독은 프로무대에서 단 한번도 우승한 경력이 없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흐른 후 김성근 감독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3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곡차곡 추가하며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야신으로 인정받았다.
한화 팬들도 한대화 감독이 자신들이 지어준 별명을 따라 언젠가 진정한 야왕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한화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