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졌다. 언제나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남을 것만 같았던 김경문 감독이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6월 중순, 성적 부진을 이유로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구단의 강압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라지만, 구단 내부에 존재하는 숱한 문제들의 책임을 한 몸에 짊어지고 떠나간다는 점에서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로야구계에서 감독이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꾸준한 성원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팬들은 단지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감독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우승을 차지했던 김성근과 조범현, 두 감독만 놓고 봐도 잘 알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SK를 제외한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의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고, 조범현 감독은 정작 KIA 팬들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경문 감독은 넥센 김시진 감독과 더불어 가장 안티가 적고, 널리 야구팬들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는 감독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두산 팬들로부터는 조금씩 아쉬운 점이 지적되고 있었지만, 나머지 7개 구단의 팬들이 보기에 김경문 감독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자 ‘모셔오고 싶은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김경문 감독이 이런 식으로 시즌 중에 지휘봉을 내려놓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7위라는 성적을 남겨놓고 말이다. 올 시즌 개막 전만 하더라도 두산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팀이었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올해야말로 두산이 우승할 때”임을 외쳤을 정도였기에, 이런 결말은 너무나 의외다.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모든 것을 헝클어 놓았다. 4월까지 13승 1무 7패로 6할이 넘는 승률(.650)을 기록했던 두산은 5월 이후 10승 1무 25패, 승률 .286이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치면서, 1위를 다투던 상황에서 7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5월 초에는 이미 야구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건이 있었고, 이후에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비극적인 일까지 벌어졌었다.
그러고 보면 두산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예상치 못한 잡음이 팀의 발목을 잡았었다. 2009년 말에는 김명제가 음주운전 중 교통사고로 인해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이했고, 작년에는 포스트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마무리 이용찬이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야구팬들의 분노를 샀다. 거기에 이번 임태훈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까지.
김명제가 두산의 선발 로테이션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면? 이용찬이 여전히 두산의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었다면? 임태훈이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스윙맨으로 그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두산이 이렇게 허무하게 주저앉으면서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김경문 감독의 퇴진이 선수단 관리 소홀의 문제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야심 차게 뽑은 더스틴 니퍼트는 그나마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라미레즈는 한 경기도 뛰어 보지 못하고 퇴출당했고, 페르난도는 오히려 경기에 나서는 것 자체가 ‘패전 보증수표’처럼 되어 가고 있다.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이혜천은 이제 한국에서도 통하지 않는 투수가 되었고, 거액을 들여 영입한 이현승은 2년째 실망만 안겨주고 있다.
게다가 더 이상의 ‘화수분 야구’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존 멤버들이 하나씩 부진에 빠지면서 팀 성적이 요동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김경문 감독은 그 모든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사퇴라는 방법으로 책임을 졌다.(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의 김현수는 확실히 ‘겉멋’이 든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김현수가 현재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2008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공교롭게도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 놓으면서, 지난 시즌 2,3,4위에 올랐던 감독들이 모두 떠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로부터 재계약을 거부당했고, 선동열 감독은 삼성 그룹 내 인사이동과 맞불려 지지 세력을 잃어버리면서 다소 어이없게 팽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경문 감독까지. 아이러니 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현실이다.
한국에 야구가 전해진지 100년이 훨씬 넘었다. 그간 있었던 야구와 관련된 숱한 사건들 중에서 최고의 경사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두 가지의 눈에 띄는 성과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다.
9전 전승의 신화를 써내려 가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던 당시 야구대표팀, 당시의 수장이 바로 김경문 감독이었다. 김경문 감독의 인기는 그때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야구를 잘 모르는 국민들조차도 김경문 감독의 인품과 지휘방식에 호감을 느꼈고, 야구팬들은 그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감독이 되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의 신화는 일단 여기에서 멈췄다. 아직 우리 나이로 54세 밖에 되지 않은 김경문 감독이기에, 앞으로 또 다른 팀에서 감독 경력을 이어갈 기회가 있을 것이 틀림 없다. 벌써 어떤 팀의 팬들은 올 시즌이 끝난 후 김경문 감독을 영입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으며,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신생 구단인 NC소프트 역시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고, 불협화음 없이 선수단을 이끌어 갈 것처럼 보였던 김경문 감독의 야구 인생에 있어 ‘시즌 중도 사퇴’라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최고의 감독도 프로야구계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설마 그가 시즌 중에 낙마하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두산 선수단과 프런트는 이번 김경문 감독의 사퇴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나는 김경문 감독의 뜻을 이해하고,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수들 개개인이 깨달아야 하고, 프런트가 느껴야 한다. 지금의 두산은 ‘김경문 감독도 일으켜 세우지 못할’ 정도로 형편 없는 팀임을 말이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두산 베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