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KIA 타이거즈 팬들은 아주 오랜만에 1군 엔트리 명단에서 반가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07년 ‘임의 탈퇴’라는 처분으로 구단과 불명예스런 결별을 했던 김진우가 무려 4년 만에 다시 1군 무대를 밟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제2의 선동렬로 거듭날 수 있는 사나이’, ‘풍운아’ 등 그를 상징하는 단어가 많았을 만큼, 김진우는 KIA의 신인사(史)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다. 덕수정보고(현 덕수고) 류제국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모교 진흥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1군 진입은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1군 무대 성공 여부를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퓨쳐스리그 성적 또한 신통치 않았다. 2군에서 10경기에 등판하여 17과 2/3이닝을 소화했지만,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8.15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진우의 1군 승격은 일종의 도박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는 17일 삼성전에 등판하여 1이닝 동안 안타 하나만을 내주었을 뿐, 삼진 두 개를 솎아내며 깔끔하게 한 회를 책임졌다. 특히, 그의 장기 중 하나였던 ‘폭포수 커브’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 주효했다. 비록 19일 경기에서는 한 타자도 잡아내지 못한 채 볼넷 두 개만을 허용하며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지만, KIA 팬들로서는 ‘김진우’라는 이름 석 자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만했다. ‘그라운드의 풍운아’ 김진우는 그렇게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 뉴스메이커, 김진우
사실 김진우에 대한 이야기 거리는 상당히 많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1년에는 다른 동기들을 뒤로 하고 고교야구판을 평정(대통령배/봉황대기 우승, 청룡기 준우승)했고, 이를 눈 여겨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그를 잡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무쇠팔’로 평가 받을 만큼 잔부상 없이 고교생활을 마친 것도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192㎝-110㎏의 당당한 체구를 바탕으로 시속 150km가 넘나드는 빠른 볼을 뿌렸던 그는 데뷔 첫 해에 탈삼진 왕 타이틀을 따냄은 물론, 12승 11패 평균자책점 4.07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인 첫 해를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신인의 마음 가짐’을 잊지 않는다면 ‘제2의 선동렬’로 성장하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야구 인생은 스스로 바라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프로 2년차였던 2003년 4월, 음주 폭행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6 시즌에 10승 4패, 방어율 2.69를 기록하며 마지막 힘을 낸 것도 잠시, 이듬해 7월, 그는 ‘팀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사’를 이유로 팀을 무단이탈했다.
이전까지 김진우 문제에 대해 쉬쉬하던 KIA가 끝내 ‘임의탈퇴’ 카드를 꺼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때로는 스포츠면에, 때로는 사회면에 등장했던 그는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야구계 안팎을 달궜던 뉴스메이커임에 분명했다.
▲ 더 이상의 방황은 없기를
그랬던 그는 2009년을 기점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경찰청 유승안 감독의 배려로 벽제야구장에서 몸을 만들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때만 해도 몸만 제대로 만들면, KIA 마운드 복귀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두 달간의 경찰청 생활에도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당시 투수조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김경원 경찰청 투수코치는 “항간의 소문처럼 (김)진우가 훈련에서 무단이탈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경찰청에 있는 두 달 동안(1월~3월) 충실히 훈련했지만, 공백이 길었기에 생각보다 몸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점을 스스로 많이 답답해했다. 나중에는 안 되기에 코칭 스태프 전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라며 힘겨워 했던 후배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일본 독립리그 코리아 해치를 거쳐 동강대학교에서 개인 훈련에 임하는 등 서서히 그라운드 복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대학야구 2부 리그가 열린 신월야구장에서 동강대 선수들과 나란히 서 있는 덩치 큰 김진우를 볼 수 있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는 다시 KIA의 덕아웃을 찾았다. 먼저 고개를 숙이며 야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 결실이 지난 17, 19일 경기에서 나타난 셈이다.
‘풍운아’라 불렸던 아기 호랑이는 이제 28살의 ‘청년’이 되어 다시 무등산에 나타났다. 이제 김진우가 더 이상 홀로 방황하는 일 없이 팬들이 바라는 것처럼 오직 야구에만 전념하는 고참급 선수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 유진 김현희 [사진제공=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