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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별명열전’ 프로야구 감독이 스타가 되는 시대

by 카이져 김홍석 2011. 7. 20.

야신, 야왕, 조갈량, 소통왕.... 야구팬들이라면 친숙한 인물들의 닉네임이자 소위 요즘 프로야구판을 달구는 핫 키워드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호칭들이 선수가 아니라 바로 감독들의 별명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야구팬들 사이에선 감독들에게 별명 지어주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괴물(류현진)’이나 빅 보이(이대호)’처럼 선수들이 별명으로 불리는 일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지만, ‘근엄하신 감독님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은 과거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프로야구 1세대 감독들 중에서 별명으로 가장 먼저 유명해진 인물은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유명했던 고 김동엽 감독이었다. 프로야구 초창기 해태와 MBC의 사령탑을 지냈던 김동엽 감독은 항상 빨간 장갑을 차고 나오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괴짜 감독으로 유명했던 김 감독은 독특한 개성과 쇼맨십으로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항의문화를 볼거리(?)로 승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본인이 심판 출신인 김감독이 판정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빨간 장갑을 차고 나와서 후배 심판들을 상대로 배치기을 구사하며 격렬하게 항의했고, 이런 장면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은퇴한 김응용 전 해태 감독은 거대한 체구를 빗대어 코끼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평소에는 느릿느릿하고 굼떠 보이지만, 한번 뚜껑(?)이 열리면 앞뒤 가리지 않고 콧김을 내뿜으며 선수들에게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 카리스마는 영락없는 코끼리, 그 자체였다는 평가다. 김응용 감독의 애제자이기도 했던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은 젊은 시절엔 선수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김감독을 코끼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전에는 대부분 별명이 있더라도 언론이 지어준 경우가 많았고, 팬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다. 팬들 사이에서 감독들 별명의 대중화를 부채질한 계기는 바로 김성근 감독이 야신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응룡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야구의 신과 경기하는 것 같았다.”고 찬사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김성근 감독의 공식 별명으로 굳어졌다. 심지어 언론에서 김성근 감독을 언급할 때면 본명보다 야신이라는 닉네임이 더 자주 등장할 정도다. 김성근 감독이 2007년 이후 SK에서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야구의 트렌드를 바꾸었다는 찬사를 받으면서, 야신이라는 별명은 팬들 사이에서도 김성근 감독의 능력과 업적을 찬양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온라인이 활성화된 최근에는 젊은 팬들 사이에서 감독들이 친숙한 별명으로 소비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대화 한화 감독은 야구의 왕이라는 의미에서 야왕으로 불린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야구의 대통령이라는 뜻의 야통이 되었다. 최근 사퇴한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은 이름을 빗대어 달 감독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했다.

 

별명이 붙는다는 것은 그만큼 팬들에게 있어서 관심의 표현이자 친근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로야구의 팬 문화가 발전하면서 감독들도 예전처럼 근엄하게 무게만 잡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는 응원의 메시지도 담겨있다. 감독 2년차에 불과한 한대화 감독이나, 올 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은 류중일 감독은 모두 야왕이나 야통같은 거창한 별명으로 불리기엔 아직 이룬 것이 많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팬들이 화려한 닉네임을 붙여주는 것은, 언젠가는 이들이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뛰어나 감독이 되기를 갈망하는 기대치가 담겨있다.

 

반면 팬들에게 원망의 의미가 담긴 별명들도 있다. 보통 이슈의 중심에 놓여있는 감독들일수록, 언론이나 공식매체에서 불리는 공적인 별명이 있는가 하면, 안티팬들 사이에서 불리는 비공식적인 별명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KIA의 조범현 감독의 공식 별명은 조갈량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조뱀으로 통한다. 특별한 의미는 없이 그냥 조범현 감독의 이름을 비꼰 것이다. 공식적으로 소통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양승호 감독이 롯데 팬들 사이에서 양펠레양승호X’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은 감독들도 자신이 팬들 사이에서 어떤 별명으로 불리는지를 대강은 알고 있다. 감독들은 팬들의 관심의 표시로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한대화 감독은 처음에는 놀리나?’하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더 좋은 감독이 되라는 격려의 의미도 생각한다.”고 밝혔다. 류중일 감독은 아직은 부담스럽다. 만일 우리가 올 시즌 우승이나 하면 모르지만.”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처럼 감독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은, 감독 중심의 야구로 대표되는 한국프로야구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철저히 선수 중심의 야구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감독이 선수보다 더 주목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선수기용이나 전술운용 등, 경기에서 감독이 미치는 영향력에 더 많은 무게를 둔다. 매일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 승패를 놓고 감독의 전략전술과 선수기용이 팬들 사이에서 가장 이슈가 된다. 감독이 웬만한 선수보다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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