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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돈키호테 최향남의 ‘이룰 수 없었던 꿈’

by 카이져 김홍석 2011. 7. 28.

풍운아최향남의 야구인생은 마치 현대에 재림한 돈키호테를 연상케 한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51 65 15세이브 평균자책점 4.04를 기록한평범한 투수지만 최향남은 야구실력보다는 잦은 기행과 독특한 세계관으로 더 눈길을 끌었던 선수였다.

 

최향남의 야구인생은 한마디로도전모험으로 요약된다. 1990년 해태에서 데뷔한 최향남은 차세대 에이스 유망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으로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채 LG로 이적한다. 98 LG에서 12승을 거두며 최고시즌을 보냈고, 그 해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결국 2004년 다시 친정팀 KIA(전신 해태)로 이적하게 되었다.

 

최향남은 이때부터 미국진출이라는 새로운 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KIA에서 2005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트리플A에서 1년 간 활약했던 최향남은, 2007년부터 롯데로 복귀하여 불펜투수로 2시즌을 활약했다. 로이스터 감독이 처음 부임했던 2008시즌에는 잠시 마무리로도 활동하여 2 4 9세이브 3홀드 평균 자책점 3.58의 호성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헌했다.

 

특히 다른 불펜투수들과 달리 과감하고 빠른 템포의 정면승부로데운 술이 식기 전에 임무를 마친다 <삼국지>속 관운장의 고사에 빗대어향운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별명은 지금도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역대 어떤 스타들의 닉네임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가장 멋진 별명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최향남은 이후 다시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며 미국행을 결심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최향남의 선택에 대해 놀라움 반, 비웃음 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무대에서도 최고수준으로 꼽힌 적이 한번도 없는 선수, 그것도 전성기가 한참 지난 30대 중후반의 늙다리 투수가 감히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는 것은, ‘라만차의 기사돈키호테를 꿈꾸는 시골노인 알론조 키하나의 과대망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2009년 초 포스팅 입찰금 101달러에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한 최향남은 결과적으로 메이저리그 정식 무대는 끝내 밟지 못했다. 하지만 최향남은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 A팀 앨버커키 아이소톱스에서 9 2패 평균자책점 2.34로 맹활약하며 그의 미국무대 도전이 단지객기만은 아니었음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야구관계자들은나이라는 걸림돌만 아니었다면 최향남이 충분히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최향남은 메이저리그행이 사실상 힘들어진 2010년 중반, 조심스럽게 롯데를 통하여 국내 복귀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롯데로 복귀한다면 4년 동안 보류 선수로 묶이게 되어 해외진출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당시 최향남의 복귀 포기 선택으로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마무리 투수 보강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롯데 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야구계에서도 최향남에게현실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비판적인 반응이 우세했다. 더구나 최향남이 국내 복귀를 거절하고 한때 일본진출을 검토한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최향남은 졸지에 안티팬들을 끌어 모으게 됐다. 이후 최향남이 이듬해 결국 롯데로 복귀한 뒤에도 한동안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본행이 무산되고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최향남은 롯데로 돌아왔지만, 끝내 실력을 다시 선보일 기회는 얻지 못했다. 롯데의 마무리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었던 최향남이었지만, 시범경기에 1번 등판했을 뿐, 팔꿈치 부상 때문에 재활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롯데는 최향남이 오랜 재활에도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자 웨이버 공시 신청을 결정했다.

 

최향남의 파란만장했던 야구인생을 두고실력도 없는 투수가 겉멋이 들어 헛된 꿈만 꾸다가 쫓겨났다.’고 비아냥거리는 쉽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최향남이 자신의 야구인생으로 인하여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일이 없으며, 그는 단지 자신이 살고 싶은 야구인생을 스스로 선택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돈키호테를 소재로 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이룰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이라는 노래가 있다.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이라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일지라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그렇지 못한 삶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뮤지컬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노래는 돈키호테의 삶과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넘버이기도 하다.

 

최향남의 야구인생이 선동열이나 송진우같이 타의 모범이 될 만큼 위대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향남 역시 화려하지 않던 선수 생활 속에서도 20년 간 프로 무대에서 영욕의 세월을 견디며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의 길을 개척해왔다. 끊임없는 부상과 부진의 릴레이 속에서도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과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겠지만, 그는 적어도시도도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삶보다는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삶을 택했다. 모든 것이 결과로만 평가받는 이 시대, 최향남보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이들이 얼마나 될까.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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