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야구팬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사건은 스탯티즈(http://statiz.co.kr)가 잠정적으로 운영을 중단한 사건이었다. 스탯티즈는 야구의 정확한 통계에 목말라했던 팬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 사건의 빌미가 됐던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팬들의 비난에 시달렸고, 이와 관련해서 야구 기록에 대한 저작권에 관한 기사도 여러 차례 게재됐다. 하지만 스탯티즈는 아직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고, 이제 팬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야구 통계 사이트는 아이스탯(http://istat.co.kr)만이 남게 됐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생기는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KBO 홈페이지(http://koreabaseball.com)가 얼마나 불편하기에 팬들이 스스로 기록을 수집하고 서버비용까지 들여가며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일까?
▲ 예년에 비해 정보 제공 폭이 넓어진 KBO 기록실
KBO 기록실에 접속하면, 투수별, 타자별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현재 투수별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평균자책, 승, 패, 세이브, 홀드, 상대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삼진, 실점, 자책점, 완투, 완봉, 블론세이브, 희타, 희비, 폭투, 보크, 총투구수, 이닝당 투구수, K/BB, K/9, B/9, H/9, WHIP, 피안타율 등 다양하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K/BB나 K/9 같은 기록은 제공해주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이와 같은 기록도 표기해주면서 사용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선수 이름을 클릭하면, 더욱 상세한 기록도 확인이 가능하다. 위에 언급한 각종 기록은 물론이고, 최근 5경기 투구 기록, 통산 기록, 연도별 TOP 10 기록을 열람할 수 있으며, 선수 정보에서 ‘일자별 기록’을 클릭하면 올 시즌 게임 로그를 확인할 수 있다. ‘경기별 기록’을 클릭하면 더욱 상세한 조건 하에 성적을 볼 수 있다. 월별, 요일별, 구장별, 홈/원정별, 상대팀별, 주/야간별, 전/후반기별, 선발/구원별 성적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상황별 기록’을 클릭하면 타자유형별, 주자상황별, 볼카운트별, 아웃카운트별, 이닝별, 타순별의 성적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윤석민이 주자가 없을 때 피안타율이 .181로 뛰어나지만, 주자가 있을 때는 피안타율이 .243로 나빠진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더 세부적인 내용도 열람할 수 있어, 작년보다는 한층 나아진 정보를 제공해주면서 선수 개개인의 정보에 대한 팬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타자 쪽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재작년부터 타자 순위에 OPS를 포함시키더니 올해부터는 도루성공률, K/BB, 장타/안타, 멀티히트 등의 기록도 함께 제공해주고 있다. 투수와 마찬가지로 선수 이름을 클릭하면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일자별, 경기별, 상황별 기록을 모두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실책, 수비율, 도루저지율 등 수비 기록을 제공해주지 않고 있는 점은 미비점으로 꼽을 수 있다.
▲ 개인 사이트에 비하면 못 미쳐
예년보다 KBO 기록실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개인 야구 통계 사이트에 비하면 이용이 불편하다. 가령, 투수별 기록에서 WHIP과 평균자책점 등 비율스탯을 클릭하면 규정이닝을 충족한 투수들의 이름만 나열되지만, 같은 비율스탯인 피안타율은 규정이닝을 충족하지 않은 투수들도 순위권에 들어온다. 때문에 피안타율 낮은 순으로 정렬하면 1위에 위치한 선수가 올 시즌 한 경기 등판에 그친 박정태, 이대진, 정회찬으로 표기된다. 이들이 기록한 피안타율은 ‘제로’다.
피안타율뿐만 아니다. KBO가 올 시즌부터 제공하기 시작한 비율스탯(이닝당 투구수, H/9, B/9, K/9 등)은 모두 규정이닝을 충족하지 않아도 순위권에 표기가 된다. 이는 타자도 마찬가지여서, 도루성공률 기록을 클릭하면, 100%의 성공률을 기록한 28명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들 가운데 단 하나의 도루만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들이 대다수다. 더욱 불편한 점은 이들의 도루 숫자를 알기 위해서 1page를 클릭하면(도루 기록은 1page, 도루성공률은 2page를 클릭해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순위가 사라지고 타율 순위가 뜬다.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지어 작년보다 나빠진 부분도 있다. 작년까지는 은퇴 선수의 기록을 조회하고 싶을 때는 기록실 좌측 메뉴에서 ‘선수 검색’을 선택, 공란에 해당 선수 이름을 적으면 통산 기록을 조회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선수 검색’ 메뉴를 선택해도 포지션별로 현재 등록된 선수들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만 나열해줄 뿐, 이름을 적을 수 있는 공란을 제공해주고 있지 않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KBO 기록실에서 은퇴 선수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설프게 만들 생각이면,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이처럼 KBO 기록실이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의 틀을 유지하면서 기록만 하나씩 추가한 데에 그쳤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조금 더 편하게 기록을 열람하기 쉽게 하려면, 지금의 틀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기록실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개인 통계 기록 사이트를 확인하면 그 차이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프로야구 개인 통계 사이트인 istat은 이용자가 기록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피안타율의 경우, ‘투수 순위 기록’ 조회메뉴에서 피안타율을 클릭하면 일정 이닝(팀 경기수 × 0.5)이상 출장한 선수들만 표기해준다. KBO에서는 피안타율 최저 1위가 박정태, 이대진, 정회찬이었지만, istat에서는 전병두(.190)라고 표기해주고 있다. 지금은 잠정 중단한 statiz는 규정이닝, 규정이닝의 70%, 규정이닝의 50%로 분류해서 표기하는 것도 가능했다.
istat의 편리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기록을 확인하더라도, 팀별, 유형별(ex. 좌완, 우완, 사이드암), 기간별, 상대별로 모든 기록을 정렬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KBO 기록실에서는 알 수가 없었던 KIA 투수들의 삼성 상대 평균자책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KBO에서 이를 확인하려면 선수 이름을 일일이 클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은퇴한 선수들의 통산 기록과 프로야구 초창기부터의 주요 데이터도 확인이 가능하다. 다만, 본격적으로 개인이 기록을 집계한 2005년 이전의 상세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KBO 기록실에서 확인할 수 없는 기록도 열람할 수 있다. 가령, 올해 김현수의 왼손 투수 상대 타율 .258은 KBO 기록실에서도, istat에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김현수의 왼손 투수 상대 출루율과 장타율은 istat 기록실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KBO 기록실만 보면 김현수의 올해 왼손 투수 상대 타율은 작년(.220)보다 나아진 점은 알 수 있어도, 김현수의 왼손 투수 상대 장타율(.330)은 작년(.393)보다 나빠진 사실은 알 수 없다. 즉 KBO 기록실만 열람하고 ‘김현수가 올해 좌투수 상대로 많이 나아졌다.’라고 이야기하면 틀린 말이 된다는 뜻이다.
▲ 개인 통계 사이트를 막고 싶다면 그만큼의 정성을 보여야
과거의 폼에서 달라지지 않은 채, 단순히 기록만 추가했기 때문에 KBO 기록실이 예년보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해도, 팬들은 잘 이용하지 않고 개인 야구 통계 사이트를 찾는다. 6월 한 달 간, 리그 전체 타자들의 OPS 순위를 한 눈에 보고 싶어도 KBO 기록실에서는 타자 개인마다 월별 기록을 일일이 찾아서 적어둬야 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개인 통계 사이트를 이용하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KBO에서 공식적으로 야구 통계 기록을 제공하는 스포츠투아이는 개인들의 기록 수집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기 전에 앞서, 자신들이 야구팬들의 기록을 열람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느냐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프로스포츠의 주인공은 팬이다. 팬이 찾고자 하는 정보를 제공해주지도 않으면서, 그들이 프로야구를 봐주고 야구장을 찾아주길 바라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KBO가 정말로 프로야구 팬들을 위하고 싶다면, 현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개인 통계 사이트의 기록을 KBO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잡든지, 그럴 의지가 없다면, 이들을 단속하겠다는 스포츠투아이의 대응을 앞장서서 막아야할 것이다. KBO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몇 명의 야구팬들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며 하고 있는데 수고비도 주지 못할망정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야구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야구 인프라와 KBO의 행정은 야구팬들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야구팬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야구를 즐기는 시설 문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단기간에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 해도, 야구팬들의 기록을 열람하고자 하는 욕구 정도는 KBO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쉽게 충족할 수 있다.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기록 사이트를 운영하는 개인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다거나, 개인 통계 사이트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인수해서 그들의 노하우를 익히는 것은 어떨까?
애초에 KBO가 이용자 중심의 기록실을 구축했다면 소수의 팬이 기록 통계 사이트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statiz가 중단되면서 야구팬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프로야구가 앞으로도 오랜 기간 국내 최고의 스포츠로 자리 매김하고 싶다면, KBO는 야구팬들의 욕구를 조금 더 확실하게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춰야할 것이다.
// Lenore 신희진 [사진=KBO 홈페이지 기록실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