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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롯데 김사율, 13년 만에 되찾은 1순위의 자존심

by 카이져 김홍석 2011. 9. 1.



요즘 행복하시죠?”라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유니폼 입고 야구장 나가는 게 행복합니다.”라고 그는 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담담한 듯 보였지만, 그 속에 담긴 기쁨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프로에 몸 담은 지 13년째인 이제서야 겨우 행복함을 느끼는 남자, 바로 롯데의 김사율이다.

 

롯데는 1997시즌 리그 꼴찌를 기록했고, 덕분에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명권으로 뽑은 선수가 바로 경남상고(현 부경고)의 에이스였던 김사율이다. 그는 당시 고졸 신인들 중 최고액인 2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롯데에 입단했다.

 

사실 드래프트 1순위였다고 해서 김사율이 고교 랭킹 1의 선수였던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김사율은 투수들 중에서도 4등이었다. 김사율과 동기생인 1980년생(99학번) 선수들 중에는 부동의 3’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세 명은 고교야구와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날렸고, 국내의 프로구단이라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한 차원 높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는 코리안 특급박찬호의 활약으로 인해 국내 유망주들의 해외 러시가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결국 고교 랭킹 1~3위였던 백차승(부산고)과 봉중근(신일고) 그리고 송승준(경남고)은 모두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정말 탐 나던 선수가 모두 사라진 상황 속에서, 롯데는 어쩔 수 없이 김사율을 택해야만 했다.

 

(만약 당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무차별 스카우트만 아니었다면, 롯데는 고졸 우선지명(1) 2 1순위 지명권으로 백차승과 송승준을 모두 데려갈 수 있었고, 그랬다면 아마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진 롯데의 기나긴 암흑기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교야구에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야구팬이라면 이와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만큼 백차승고 송승준이라는 두 투수에 대한 언론과 팬들의 관심은 상당했었다. 롯데 팬들은 김사율에 대해 기대를 걸면서도, 한편으론 백차승과 송승준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의 반쪽 짜리 기대 속에서 시작된 프로생활, 그래서였는지 김사율의 프로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99년 프로에 데뷔한 후 2004년까지의 6년 동안 김사율은 146경기에 등판해 292이닝을 던졌고, 8 20패 평균자책점 5.49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거뒀다. 선발로도, 구원투수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의 구위나 컨트롤은 1군 무대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1순위 유망주의 초라한 몰락, 그러던 중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입대를 했고, 2007년에 복귀한 후에도 딱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미 팬들은 김사율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었고, 그렇게 그는 패전처리 전문 투수로 프로생활을 이어가는 듯했다. 2009년까지는 말이다.

 

그러던 김사율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10, 30세의 프로 12년차가 되어서였다. 10년이 넘게 흘린 땀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 투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좋은 자양분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줬지만 김사율의 투구에는 관록이 묻어나기 시작했고, 그는 그렇게 롯데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며 팀의 4강행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올해, 김사율은 프로 데뷔 13년만에 최고의 해를 맞이하고 있다. 48경기에 등판해 거둔 5 2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58이라는 성적, 드래프트 1순위 선수의 최고 성적이라기엔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가져다 준 결과는 모든 롯데 팬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롯데는 강하다. 7월 이후 롯데가 보여주는 경기력은 선발과 타력 중심의 야구를 했던 지난 3년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말도 안 되는 대패를 하고도 그 다음날 그대로 갚아주는 최근 롯데의 모습은 놀랍고 또, 신선하다. 정말 오랫동안 롯데 야구를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느낀 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던 1999년 이후 처음이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전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화룡정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사율이다. 그가 뒷문을 완벽하게 막아주고 있기에 이제 롯데는 1점차 승부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타선이 3점 이하를 얻고도 승리하는 롯데의 모습은 6월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롯데는 지금 2위를 놓고 KIA-SK와 다툼을 벌이고 있다. 원래도 강한 타력과 수준급 선발진을 갖춘 롯데는 4강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팀이었다. 그런 롯데가 2위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김사율이 믿음직한 모습으로 9회를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그 동안 김사율에 대해 아쉬운 소리만 했던 롯데 팬들도 이제는 그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김사율이 야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또 행복할 수밖에. 오랜 고생 끝에 드디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있는 김사율, 그런 만큼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도 각별하다. 30대가 되어서야 정말 어렵게 꽃을 피웠으니, 아무쪼록 그 향기가 오래도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길 기대한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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