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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최동원,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

by 카이져 김홍석 2011. 9. 15.

인생을 후회없이 살고있나 궁금해질때 스스로에게 내려볼수 있는 ''에 대한 세 가지질문이 있다. 스스로 후회없이 바칠수있는 '꿈을 위하여' 달려왔는가. 자신이 떠난뒤에도 그 '꿈을 추억하고 지지하며 눈물흘려줄 사람들'이 곁에 있는가. 그리고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군가의 꿈'이 되어줄수 있는가. 이 세 가지에 모두 'YES'라는 답을 내릴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않은 훌륭한 삶을 산 것이다.

 

최동원은 그랬다. 평생 야구공 하나에 열정을 바쳐 꿈을 던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와 최동원의 꿈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최동원 자신이 '누군가의 꿈'으로 남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전설로 남았다. 이보다 더 훌륭하고 가치있는 삶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동원은 야구선수였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직업이 있듯이, 최동원도 시작은 대한민국에 널린 수많은 야구선수들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최동원'을 특별한 이름으로 사람들의 각인속에 만들어낸 것은, 타고난 재능도 예고된 운명도 아닌 바로 스스로의 꿈을 향한 노력과 열정이었다.

 

많은 이들이 꿈을 쫓아서 살아간다. 개인의 명예나 가족의 행복이건, 혹은 거창한 이념이건. 그러나 누구나 그 꿈을 항상 지키면서 살아갈수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당할수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때로는 타협을 해가면서 그렇게 적당히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 처세의 미덕으로 여겨진다.

 

최동원은 강직했다. 한없이 시람좋아보이는 인상과 달리, 대쪽같은 성격은 타협이나 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격만큼이나 야구 스타일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주저하지않고 앞으로만 나아갔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선택에서는 어떤 일 있어도 굽히지 않았다. 야구에서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나 최동원은 항상 '정면승부'를 고집했다.

 

최동원의 야구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84년 한국시리즈의 추억이다. 최동원은 5경기에 나와 혼자서만 4승을 수확하는 활약으로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전설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최동원의 '무쇠팔'을 찬양하는 영광의 추억인가 하면, 누군가는 몰상식한 혹사로 그의 전성기가 단축되었다는 안타까움의 회한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날의 결과가 아니라, 최동원의 '꿈을 향한 열정'이었다.

 

연투에 이은 피로로 코피가 터져나오고 어깨를 제대로 들어올릴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동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최동원에게 있어서 최고의 순간은 우승이 아니라, 마운드에서 일구마다에 혼을 실어담아 꿈을 쫓던 그 모든 과정 순간순간에 녹아있는 것이다.

 

또한 마운드위의 모습도 최동원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최동원은 좀더 편안한 삶을 살수 있었다. 84년 우승 이후 구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롯데의 프랜차이즈스타로서 안정된 말년이 보장된 길을 외면하고 최동원은 초대 야구선수협의회 창립에 앞장섰다. 억대 연봉을 받던 시절. 정작 최동원 본인에게는 솔직히 필요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료 선수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최동원은 화려한 외양과 달리,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야구선수들의 그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동원이 단지 개인의 영예만을 쫓는 선수였다면 하지 않았어도 될, 아니 하지 말았어야할 일이었지만 최동원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야구와 '야구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명감이 있었다.

 

물론 야구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순진한 최동원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그에게 돌아온 보복은 고향팀에서 쫓겨나듯 트레이드되는 것이었고, 최동원은 선수생활 말년을 쓸쓸히 전전하다가 변변한 은퇴식도 못하고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다. 손익계산을 따지자면 어쩌면 그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잘못되고 후회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최동원은 야구팬들의 가슴에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아직 진정한 '프로의식'이라는게 자리잡히지 못했던 시절, 어쩌면 최동원이야말로 스타 야구선수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가장 먼저 실천하려 했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도 이제 어느덧 30년의 역사를 채웠다. 어린 시절 최동원이나 선동열, 박철순의 플레이를 보며 열광하던 키드들이 이제는 성장하여 혹자는 한국프로야구를 이끄는 또다른 스타가 되었고, 혹자는 열혈 야구팬들이 되어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다. 최동원은 비록 고향팀에서 은퇴하고 지도자도 하고싶다는 꿈을 다 이루지못하고 떠났지만, 그가 남긴 한국야구에 남긴 무형의 유산은 이제 후배들과 야구팬들의 가슴에 또다른 꿈이 되어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최동원도 사람이기에 실수도 많았고 때로는 후회하는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에 부끄럽지않은 삶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떠나는 순간까지 그 강직함을 지켰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굽히지않고 외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여정은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최동원이 야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한 감동은, 기술이나 기량의 차원을 넘어 곧 그의 삶의 방식이 남긴 유산이었던 것이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해본다. 당신이 곧 누군가의 꿈이 되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 꿈을 물려받기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겠는가?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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