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송지선 아나운서와의 스캔들, 그리고 그녀의 자살 충격으로 1군 무대를 떠나 있던 두산 베어스 임태훈 선수가 4개월 만인 9월 17일(토)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를 통해서 복귀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은 온통 임태훈 복귀와 관련해서 온통 비난과 질책의 글들로 넘쳐났다.
전쟁 같다.
임태훈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임태훈뿐만 아니라, 임태훈의 소속 구단인 두산 베어스에서부터 임태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타도의 대상인 듯하다. 반대로 임태훈을 위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서 임태훈을 위한 격려나 위로의 선을 넘어, 임태훈을 비난하는 네티즌들부터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행실까지 거론하며 욕하기도 한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고층 빌딩에서 자신을 던져 생을 포기한 직후의 상황을 보는 것처럼, 인터넷 세상이 뜨겁다 못해 거칠고 감정적이며 원색적인 표현에 욕설까지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까? 일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재판하듯 쓰여진 기사들도 있었으며, ‘익명성’과 ‘비대면성’이라는 편리함을 이용해서 배설에 가까운 댓글 작업에 매진한 네티즌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그러나 임태훈 스캔들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스포츠 기자들이나 언론인들은 실체적 진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기사가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죽음을 폄훼하는 내용의 글이 될 경우 대중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리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성(性)이라는 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터부(taboo)시 되어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온라인을 통해서 확대되어 공적인 영역으로 번져갔다 해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이를 공개적으로 기사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 번 용기를 내어서 터부(taboo)를 넘어보자.
임태훈과 고 송지선 아나운서 사이에 일들에 대해서 확인된 사실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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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자신과 친분이 두터웠던 연하의 임태훈이 이성적으로 좋아졌으나 임태훈은 이성적인 교제를 거부했다. 그러나 어느 날 임태훈은 성적인 행위를 요구했고 그녀는 이에 응한다. 이후에도 만남을 가졌지만 임태훈은 전지훈련 이후 그녀를 멀리 했다. (이상의 내용이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미니홈피에 한동안 게재되었다가 삭제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그녀는 한 여성 팬이 자신의 집에 찾아왔었고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로그인 되어있던 미니홈피에 허위의 사실을 올렸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인터넷에서 이 내용이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임태훈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라왔던 글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며 사실도 아니라고 거듭 해명한다. 그러나 사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이러한 해명에 네티즌들은 더욱 다양한 루머들을 생산하고 임태훈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다. 이 때 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임태훈과 연인사이였다고 공개한다. 이때부터 임태훈의 소속 구단인 두산 베어스가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임태훈은 언론에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의 교제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이후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인터뷰를 한다. 그 다음 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고층 빌딩에서 스스로를 던져 생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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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포기한 죽음은 아주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옳지 못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명예를 지키려고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고 하며, 두려움을 회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 중에 하나는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명백한 사실에 추측과 상상을 더해야 그럴 듯한 원인과 가해자가 나타나게 된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죽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임태훈이 관련되어 있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배심원들로 하여금 임태훈을 가해자로 지목하게 만든다.
우리는 추측과 루머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거두어 낸 위의 팩트(fact)들을 가지고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조각들이 빠져있는 퍼즐 판처럼 객관적인 팩트만 가지고 일련의 사안들을 정리해 보니까 뭔가 싱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누구라도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행간의 보이지 않는 내용들을 추측하고 추정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상식선‘에서 추정할 수 있을 뿐이지, 일반인들이나 야구팬들의 분노를 야기할 수도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은 많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그 주체가 기자이건 야구팬이건 네티즌이건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번 사건을 덮고 가서는 안 된다. 잘못된 행동들이 있었다면 고백과 사죄가 있어야 하며, 책임감 있는 행동과 반성도 필요하다. 아울러 잘못한 사람에게 반성과 고백,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가 당사자에게 그 책임과 잘못 이상의 도덕재판이나 여론재판을 통해 ‘괴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한 사람의 영혼을 깊은 생채기를 만들게 되어 인생을 파탄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다른 인격살인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 두 남녀 사이의 문제가 공론화 된 사건에 대해서 진실과 수습이 있어야 하는데, 당사자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이미 세상에 없다. 남은 한 사람이 진실을 고백해야만 이 문제가 진정되고 교훈으로 마무리 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이 문제는 임태훈에게도 두산 구단에도, 또 한국 야구계에도 상처뿐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임태훈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낙인처럼 아주 오랜 기간 쫓아다닐 것이란 사실도 자명하다.
그래서 1군 복귀 직전 임태훈이 구단을 통해 올린 사과문에도 불구하고(짧고 형식적인 유감표명으로 비춰져 진실을 알기에는 부족한 사과문이므로) 네티즌들이나 야구팬들, 그리고 일부 언론인들까지 임태훈이 진실을 밝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유일한 당사자인 임태훈의 고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말은 마치 어머니가 어린 자녀에게 ‘솔직히 말하면 잘못을 용서해 줄 테니 사실을 이야기하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어린 자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사실을 고백해도 용서해주지 않았던 선례(先例)가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경우에도 혼나는 것이 두려워 진실을 이야기 하지 못하거나, 끝까지 잘못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더라도 계속된 매질에 눈물을 보여야 진정성을 받아들여 주었던 선례 역시 부담이다. 때문에 어떤 선택에도 두려움이 존재하여 진퇴양난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임태훈 역시 그 어떤 선택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아닐까? 임태훈은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죽음이 있은 뒤부터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도 상투적으로 보이는 인터뷰용 멘트 외에 모두가 궁금해 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침묵하지 않을 수도 없어 보인다. 임태훈에게는 그 어떤 진실을 말해도 태풍같이 강력한 비난으로 돌아올 것만 같아 두려울 것이다.
그를 위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고, 어리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지만, 그는 물리적으로만 성인일뿐 아직 20대 초반의 야구밖에 모르는 청년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세상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나이든 어른도 거센 비난과 악플에 상처받아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우리가 직접 여론의 비난과 그에 대한 공포를 경험해 보지 않아도, 사람이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수없이 뉴스와 신문을 통해 들어왔다.
지금 임태훈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용기일지 모른다. 여론이라는 미명아래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추측하는 부정적인 내용들만이 진실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해자가 아니어도 그의 용기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가 용기를 내 잘못한 부분들을 고백하고 사죄할 경우 역시 그의 용기를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임태훈에게는 진실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는 그 용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또는 그로 인해 크게 상심해 있을 때 우리를 혼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아빠(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는 우리들에게 그 어떤 체벌이나 꾸중, 호통보다도 큰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 힘은 우리에게 더 큰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많은 네티즌들의 욕설과 비난을 보면 임태훈의 삶이 무너져 내려야 고 송지선의 죽음이 위로받을 수 있으며, 그의 반성에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리를 내는 듯하다. 지금 임태훈과 우리 모두에게 고백과 수용의 용기 말고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관용이 아닐까?
// 글쓴이 : 아름다운 청년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P.S. <야구타임스>를 통해 임태훈과 관련된 기사를 내보낸 날, 한 팬분께 장문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임태훈에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자기 나름의 철학이 담긴 글이었고, 표현력과 문장력이 매우 뛰어난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임태훈에 대한 글을 부탁드렸고, 그 결과가 바로 위의 내용입니다.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긴 어려운 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그것이 가치 없다고 말할 수 없기에 블로그를 통해 소개해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글의 내용 중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ㅡ 카이져 김홍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