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만해도 두산에는 3번을 쳐줄만한 마땅한 선수가 없었다. 김동주, 최준석으로 이어지는 4, 5번 타순은 나름대로 힘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의 앞에서 공격의 활로를 열어주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도 갖춘, 그런 타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부 FA 영입 등 투자에 다소 인색한 모습을 보여온 두산이기에 새로운 유망주들이 발굴되어 혜성처럼 등장해 3번을 쳐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 혜성은 예상보다 일찍 나타났다.
이듬해 나타난 혜성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적으로 타격왕을 차지하며 팀의 3번 타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물론 시작은 2번 타자였다.) 당시 팀 동료였던 홍성흔과 함께 나란히 타격 1, 2위를 차지했던 김현수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이지 굉장한 타자였다. 게스 히팅이 아닌 속구에 초점을 맞춘 후 그때그때 대응해나가는 식의 타법과 어떠한 코스로 들어오더라도 기어이 안타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설령 안타가 되지 않으면 커트라도 해내고, 좌타자임에도 좌완의 공을 무리없이 쳐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타격기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물론 이후에 김현수보다 고타율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차지한 타자들이 더러 나타났지만 김현수는(신고선수 출신이라는 점과 맞물려) 그 누구보다 강한 임팩트를 지녔던 타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김현수는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경기력에서도 예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김현수의 장점이라 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가 되는 귀신같은 타격을 꼽을 수 있는데 요즘의 김현수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기 쉽지않다. 어처구니없는 볼에도 배트가 나오는가하면 스탠딩 삼진을 당하는 모습 또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근 몇 년 동안 김현수는 다소 무게가 있는 배트를 사용해 오고 있다.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한 포석이었다. 실제로 그에 걸맞게 홈런 개수 역수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그 개수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09시즌 23개, 10시즌 24개, 11시즌 현재까지 12개)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해 배트 무게를 늘린 것 치고는 성과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개인적으로 배트 무게를 늘린 것이 김현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 김현수가 사용하고 있는 910g의 무게가 선수 본인에게 적합한 수준이라면 지금과 같은 현상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김현수의 성적은 09시즌을 기점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기량이 계속해서 향상되어야할 23세의 선수의 성적이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김현수의 재능으로 봤을 때 그는 자신의 커리어 하이였던 09시즌을 뛰어넘는 성적을 기록하고도 남을 선수다.(09시즌 타율 0.357 홈런 23 타점 104) 하지만 배트 무게를 꾸준히 늘려온 결과물이 지금의 성적표라면 배트 무게를 줄이는 것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현수가 사용하는 910g의 배트는 상당히 무거운 축에 속한다. 철 지난 지진을 피해 국내복귀를 선언한 김태균이 900g짜리 배트를 사용하고, 빅리거 추신수가 890g짜리 배트를 사용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더욱 그러하다.
물론 그보다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는 타자들도 많다. 이대호가 930g에서 최대 950g, 가르시아가 930g, 이승엽이 915~925g으로 더욱 무게감있는 배트를 사용한다. 하지만 거포라고해서 모두 하나같이 이들과 같은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붕괴됐지만 한때 KIA의 타선을 책임졌던 'CK포‘ 최희섭과 김상현은 나란히 880g 의 배트를 사용하고 김상현의 경우 시즌 말미에는 850g까지 배트 무게를 줄인다. 그리고 앞서도 언급한 추신수 역시 890g짜리 배트를 사용한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통산 762개로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중인 배리 본즈 역시 890g짜리 배트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배트 무게를 늘리면 반발력이 커져 홈런 개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하나 반대로 배트 무게를 줄인다고 해서 홈런 수가 꼭 감소하는 것만은 아니다.
09시즌 홈런, 타점, 리그 MVP를 석권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KIA 김상현은 당시 배트무게를 늘리며 장타력을 향상시키려는 김현수를 향해 ‘지금도 최고의 타자인데 왜 타율을 낮춰가면서까지 홈런을 늘리려 하느냐?’며 의아해 했다. 배트 무게가 가벼워도 중심에만 잘 갖다 맞춘다면 충분히 장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배리 본즈, 그리고 ‘캐넌’ 김재현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배트를 사용했지만 그것을 빠른 배트 스피드로 상쇄한 케이스들이다. 위의 사례들로만 봐도 알 수 있듯 꼭 무거운 배트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선배들의 조언, 그리고 근 몇 년간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김현수의 성적으로 봤을 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