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규시즌이 진행 중이지만 롯데의 연고지 부산은 이미 포스트시즌을 연상시키는 열기에 빠져있다. 시즌 초반 한때 하위권을 전전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가을잔치 진출을 넘어 어느새 SK와 2위 다툼을 펼치는 상황까지 왔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SK와의 지난 주중 3연전이 열리던 사직구장에서는 사실상 확정된 PS행에 들뜬 축제 분위기와 미리 보는 포스트시즌에 대한 긴장감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삼삼 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팬들은 벌써부터 가을잔치를 그리면서 “올해는 우승할 수 있다.”며 들뜬 전망을 내놓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부산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익숙해진 롯데 선수들조차도 “요즘 홈경기를 할 때마다 마치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때마침 부쩍 쌀쌀해진 날씨도 가을잔치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일조했다.
지난 상대가 디펜딩 챔피언이자 현재 2위 자리를 놓고 가장 치열하게 경쟁중인 SK와의 맞대결인지라 팬들 이상으로 선수단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어차피 두 팀은 다가오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을 노리려면 한번은 마주쳐야 할 운명이다.
롯데는 올 시즌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평균 관중 2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2만 관중을 돌파한 적이 있는 롯데는 올해도 최고 인기구단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후반기 들어 팀 성적이 점점 좋아지고 가을잔치가 가까워오면서 더 많은 관중들이 사직구장을 찾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규시즌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성적을 바라보면서 포스트시즌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롯데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올해 가을잔치에 대한 기다림이 절실하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룬 것도 대단하지만, 이제는 가을잔치 참가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도전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롯데가 만약 2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구단 역사상 단일리그제에서 최초의 2위 등극이 된다. 99년 전체 승률로 2위에 오른 적이 한 차례 있지만 당시는 양대리그제였다. 이때를 제외하면 롯데는 정규시즌에서 2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적이 한차례도 없다. 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에도 84년(전후기리그제)에는 통합승률에서 4위에 그쳤고, 92년에는 3위로 포스트시즌에도 올라 상위팀들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08년부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며 플레이오프에 3년 연속 진출했으나 정규시즌 성적은 첫 시즌 3위가 최고였고 이후 두 시즌은 4위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롯데에게 진정 절실한 것은 결국 우승이다. 정규시즌 2위도 한국시리즈에 오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롯데는 1992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끝으로 18년 동안 정상에 올라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프로야구 8개구단(전신 포함)을 포함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로이스터 감독이 3년 연속 PS진출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에 실패한 것도, 포스트시즌에서 우승에 도전할만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롯데에게는 올해가 우승을 노릴 적기라는 판단이다. 현재 올해의 롯데는 최근 몇 년간 가장 안정된 투타 밸런스를 보여주고 있다. 고질적인 약점이던 불펜과 수비의 취약함도 많이 보완되었다. 올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는 간판스타 이대호의 거취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롯데가 올해 전력투구해야 할 숨은 이유다. 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이대호로서도, 선수생활 동안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우승을 올해는 반드시 고향팀에서 이루고 싶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또한 팬들이 올해 가을야구를 바라보는 것은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줄 양승호 야구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하다. 양승호 감독은 지난해까지 롯데 팬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로이스터 감독의 뒤를 이어 롯데의 지휘봉을 잡았다.
시즌 초반에는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를 드러내며 우여곡절이 많았던 양승호 감독이지만 이제는 전임감독을 뛰어넘는 성적을 바라보고 있다. 양승호 감독은 시즌 전 “최소한 정규시즌 2위 이상은 들어야 우승을 노릴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어쨌든 시즌 막바지 들어 그 목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롯데가 목표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구나 올 시즌 들어 공교롭게도 지난해 4강 팀 감독들이 줄줄이 유니폼을 벗으며 올해 포스트시즌은 초보감독들의 경연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4강이 유력한 팀들 중 KIA 조범현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올 시즌 처음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초보 사령탑들이다. 감독으로서 처음 포스트시즌 무대를 앞두고 있는 양승호 감독에게 상대팀 감독들 역시 경험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라는 점은 나쁠 게 없는 요소다.
팬들의 관심사는 이제 ‘가을야구’를 보는 것을 넘어 ‘가을에도 통하는 롯데 야구’를 볼 수 있느냐다. 로이스터 감독은 좋은 감독이지만 결국 단기전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롯데가 양승호 감독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양승호 감독은 로이스터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의문부호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다. 양승호 감독도, 롯데 선수들과 팬들의 시선은 벌써 가을잔치라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