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래야 한다. 최고의 투수들이 맞붙은 경기라면 준PO 1차전이라는 중요한 경기라 하더라도 이런 스코어가 나와야 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아야 모두가 즐거운 법이다. 준PO 1차전에서 KIA의 ‘특급 우완’ 윤석민이 보여준 피칭은 “올 시즌 최고 투수는 바로 나다!”라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 내용 자체도 매우 수준 높았다. 올 시즌 리그 최소 실책 1,2위의 팀답게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의 번트와 도루시도를 모두 봉쇄하며 긴장감을 드높였다. 점수가 많이 나지 않았을 뿐, 타자들의 집중력도 대단했다. 결국 9회 차일목의 만루홈런이 터지면서 KIA가 5-1의 기분 좋은 승리를 가져갔다.
▲ ‘나만 투수다’를 보여준 윤석민
1회부터 5회까지 SK는 단 하나의 잔루도 남기지 않았다. 처음 던진 공이 정근우에 의해 안타가 되고, 2회에도 박진만이 볼넷으로 걸어 나갔으나 그 둘은 모두 누상에서 횡사하고 말았다. 3회부터는 11명의 타자를 연속해서 범타로 잡아내기도 했다. 7회에는 제구가 잘못된 공이 최정의 배트에 맞아 ‘의도치 않은 병살’을 유도하는 등, 운도 따라준 경기였다. 무엇보다 계속된 도루 시도를 잘 막아낸 차일목의 ‘내조’가 돋보였다.
8회까지 허용한 안타는 고작 2개, 당연히 실점은 없었다. KIA 타자들이 계속해서 찬스를 무산시키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마운드를 지켜냈다는 점은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한다. 9회 대타로 나선 최동수에게 홈런을 허용하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1차전 승리의 1등 공신은 윤석민이다. 차일목의 도움을 받은 윤석민은 말 그대로 ‘나만 투수다’를 연출해냈다.
사실 윤석민은 2009년 당시 팀 우승에 크게 공헌하지 못했다. 당시의 주역은 로페즈와 최희섭-김상현의 CK포였다. 류현진이 가을잔치와 관계없이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김광현이 가을의 전설을 그리고 있는 동안 윤석민은 조금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 시즌 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로 투수부문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 탈삼진)을 달성하고, 중요한 준PO 1차전에서 멋진 피칭을 선보이면서 그 모든 설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 의표를 찌른 이범호의 선발출장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까지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것은 역시 이범호의 활용 방법이었다. 이미 수비는 힘들다는 판정이 내려진 상태였고, 기껏해야 경기 후반에 대타로나 기용될 정도의 몸 상태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범호가 떡 하니 3번 타자로 출장하는 게 아닌가!
조범현 감독은 과감하게 이범호는 지명타자 겸 3번으로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켰고, 나지완과 김상현을 4~5번에 배치했다. 대신 컨디션이 나쁜 최희섭을 7번으로 돌리며 ‘로또’를 심어두었다. 결과적으로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지만, 이범호 선발 출장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1회의 라인 선상 2루타를 때려낸 것도 그렇고, 이후 SK 배터리의 대응도 이범호를 굉장히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를 제외하면 조범현 감독의 경기 운영에 대해서는 판단이 쉽지 않다. 실제 경기는 윤석민이 거의 홀로 지배했기 때문. 김광현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도 3회에 또 다시 번트를 시도하는 등, 조범현 감독의 소심한 경기 운영 스타일은 여전했지만, 사실 성공을 거뒀다고 보긴 어렵다.
차라리 1회부터 적극적인 작전(예를 들면 번트 대신 도루)을 시도했다면, 오히려 김광현을 일찍 무너뜨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9회 차일목의 만루홈런이 터진 덕분에 경기가 쉽게 마무리 되었지만, 8회까지 4번이나 선두타자가 출루했는데도 그들 중 홈을 밟은 선수가 없었다면, 그건 감독 역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장점과 한계가 드러난 이만수 감독대행의 PS 데뷔전
이번 경기는 이만수 감독대행의 포스트시즌(PS) 데뷔전이었다. 결과는 비록 패전이었지만, 이만수 감독의 투수 운용은 나쁘지 않았다. 5회 김광현을 바꾼 것이나, 7회 정대현을 내리고 정우람을 올리는 등 투수 교체 타이밍도 상당히 훌륭했다. 특히 정우람을 무리시키지 않고 9회에 바꿔주면서 2전 이후의 희망을 남겨놓았다.(개인적으로는 피하지 않고 김광현을 윤석민과 맞대결 시켰다는 점이 너무나 맘에 든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히 보였다. 이번 1차전의 경기 시간은 3시간 10분으로 PS 경기 치곤 비교적 짧았다. 그리고 그 중 상당 시간이 KIA의 공격이었고, SK의 공격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경기가 훌륭한 투수전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만수 감독이 KIA의 페이스에 끌려 갔다고 볼 수도 있다.
예전 타이거즈의 신화를 창조했던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나 ‘야신’ 김성근 감독이 ‘명장’이라 불리는 것은 단순히 작전을 잘 짜고, 선수단을 잘 이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감독이 그 흐름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경우도 있다. 김응용과 김성근은 이 부분에서 가히 독보적인 존재들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PS 경기 시간은 4시간이 기본이었는데, 이것도 경기의 흐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오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빨리 진행되는 투수전 속에서 그 흐름을 그대로 놔두면 SK는 윤석민에게 이번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대행은 6회까지 도루 시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작전도 없었고, 대타도 기용하지 않았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분위기를 환기시켰다면, 윤석민이 저토록 침착하게 좋은 피칭을 이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타로 기용된 안치용(볼넷)과 최동수(홈런)가 보여준 활약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식 단기전의 특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하던 대로’ 혹은 ‘정석대로’의 경기운영만 해나간다면, 메이저리그 코치 출신인 이만수 감독대행은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과 마찬가지로 미국식 야구의 한계를 드러내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 KIA의 스윕 가능성도 있다
KIA는 선발이 강하고, SK는 불펜이 강하다. 이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 에이스인 윤석민에게 완투패를 당한다면 그건 SK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다. 2차전 이후에도 선발 매치업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는데, 불펜의 힘까지 비축해준 꼴이 되기 때문이다.
KIA에는 유독 SK전에 강한 투수가 2명 있다. 서재응(2승 1.93)과 양현종(SK전 평균자책 0.86)이다. 2차전 선발인 로페즈는 2009년 우승의 주역이며, 트레비스도 최근 구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불펜이 약하긴 해도 심동섭과 손영민은 믿을 수 있는 선수들이다. 선발 중 1~2명을 불펜으로 돌리면, 물량 싸움에서도 SK에 밀리지 않는다.
반면 SK는 기대를 걸었던 고든이 제 컨디션이 아니며, 2차전 선발로 예상되는 송은범 역시 50~60개 정도가 한계다. 2차전도 선발이 4~5이닝을 책임지면, 이후는 불펜 운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찬스가 되면 어떻게든 1점이라도 짜내던 타력에서의 집요함이 김성근 감독의 퇴임과 함께 사라진 이상, 불펜 중심의 야구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하긴 힘든 상황이다.
정규시즌 마지막 10경기에서 1할의 빈타에 허덕였던 최정은 끝내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고, 3~9번으로 선발 출장한 선수들은 안타 하나 기록하지 못했다. 타력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KIA의 힘이 앞서는 것이 확실하며, 그 차이가 2차전 이후로는 더욱 크게 드러날 확률이 높다. KIA의 스윕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겠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