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이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한번 번성하면 다시 쇠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올 시즌 롯데도 마찬가지다. 수년간 하위권에 맴돌던 팀을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면서 4강권의 강팀이 되었고, 롯데 구단은 ‘우승’을 위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넥센으로부터 황재균과 고원준을 영입했다. 여기에 로이스터 감독이 우승까지 이끌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재계약을 포기하고, 양승호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 시작은 나빴지만, 끝은 창대했던
그러나 양승호의 롯데는 그 시작이 좋지 못했다. 4월에 치른 23경기에서 고작 7승만을 수확하며 .333의 승률에 그쳤다. 롯데팬들 사이에서도 양승호 감독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나빴다. 꼴찌에 허덕이던 팀을 4강권으로 끌어올린 로이스터 감독의 그림자도 컸고, 롯데 프런트의 일련의 행보에 실망감을 보인 팬들도 많았기에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롯데의 장점은 두려움 없는 타격이었는데, 양승호 감독은 팀배팅을 주문하고, 불펜 운영에서 패전조와 승리조를 구분하지 않고 운용하다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 전임 로이스터 감독이 보인 모습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외국인 투수인 코리에게 너무 많은 이닝을 주문하기도 했고, 초반 마무리로 기용했던 고원준을 ‘중무리’로 기용하는 등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임 로이스터 감독 체제 하에서는 모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용병술에 있어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이 수비 포지션이었다. 좌익수 홍성흔은 만세를 불렀고, 중견수 이승화는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렸다.
하지만 5월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 강민호에게 번트를 지시하며 팬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시간을 두고 보니 양승호 감독은 리그에서 가장 번트를 적게 시도하는 감독이었다. 고원준은 선발로 고정되었고, 불펜진도 임경완-강영식-김사율로 이어지는 필승계투조가 정립되기 시작했다. 선발투수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로이스터와 양승호, 두 감독 모두 같았다.
5월 들어 롯데는 14승 8패 1무의 성적으로 월간 최다 승률(.636)을 기록했다. 꼴찌 다툼을 하던 순위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6월에 8승 14패로 다시 주춤했지만, 7월(.684)과 8월(.696)에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단숨에 4강권으로 올라섰다. 롯데는 후반기 최고의 팀이었다. 51경기 가운데 34경기를 이겨 .694의 승률을 기록, 이는 정규시즌 1위에 오른 삼성의 후반기 승률(.660)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후반기 대폭발에 힘입어 롯데는 정규시즌 2위를 확정 짓고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단일리그 체제에서의 정규시즌 2위는 팀 창단 이후 처음인 대사건이었다. 전임 로이스터 감독도 해내지 못한 일을 신임 사령탑인 양승호 감독이 해낸 것이다.
하지만 롯데는 플레이오프에서 준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SK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투수력의 양과 질에서 SK에 미치지 못했고, 리그 최강의 공격력도 SK의 마운드 앞에선 소용 없었다. 염종석의 대활약으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던 1992년, 그 이후 19년 만의 도전이 물거품으로 끝난 것이다.
▲ 투-타 에이스 이탈, 내년엔 어쩌나?
문제는 내년 시즌 롯데는 투-타의 중심축이 빠진 채로 시즌을 맞이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FA 자격을 취득한 이대호의 거취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지만, 에이스 장원준은 이미 경찰청 입대가 예정되어 있다. 올 시즌 장원준은 15승 6패에 3.1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다승 3위, 평균자책 4위, 투구이닝 3위의 뛰어난 성적이자 자신의 커리어 하이의 기록이기도 하다.
장원준의 장점은 별 탈 없이 매 시즌 꾸준히 자신의 공을 던졌다는 점이다. 2006년 본격적으로 풀타임 선발로 뛴 이래 올해까지 6년 연속 규정이닝 이상의 공을 던졌고,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1985년생으로 올해 27살인 장원준은 벌써 롯데 팀 역사상 6번째로 많은 승리와 투구이닝을 기록 중이다. 그의 앞에는 윤학길, 염종석, 손민한, 주형광, 최동원 같은 팀 내 전설들만 있을 뿐이다.
장원준의 공백은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은 고원준이 메워줘야 할 것이다. 지난 겨울 넥센에서 트레이드 되어온 고원준은 올해 152⅔이닝을 소화하며 9승 7패의 성적을 거뒀다. 선발로 정착한 후에도 좋은 피칭을 보여주며 차세대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직 장원준 수준의 기량이라고 하긴 어렵다. 특히 KIA를 제외하면 삼성이나 SK 같은 강팀을 상대로는 약한 면모를 보였다. 모름지기 에이스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는 피칭을 보여줘야만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대호의 향후 거취다. 이대호는 명실상부한 현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다. 지난해 유래가 없던 타격 7관왕을 달성했으며, 올해도 타율-최다안타-출루율 1위, 홈런과 타점은 2위에 올랐다.
이대호의 장점은 그가 홈런만 많은 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대호는 지난해 .364, 올해 .357의 타율로 2년 연속 1위에 오르는 등 통산 3번이나 타율 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교타자이기도 하다. 이미 세간에서는 “이대호는 국내 프로야구 수준을 뛰어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롯데는 지난해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이대호를 서운하게 하기도 했으며, 일본의 오릭스에서는 2년 총액 5억엔(약 75억원)을 제시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지바 롯데와 라쿠텐 역시 이대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롯데 팬들은 이대호가 남아주길 바라고 있지만, 일본 구단의 러브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대호가 떠난다면, 내년 시즌 누가 롯데의 4번을 맡는가도 문제다. 최근 기량이 급성장한 손아섭과 전준우 등 젊은 타자들이 있고, 최근 4년 동안 .339의 타율을 기록한 홍성흔도 있지만, 이들뿐 아니라 그 누구도 이대호의 존재감을 대신하긴 어렵다. 이대호를 잡는데 실패한다면, 롯데는 큰 폭의 전력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양승호의 리더십, 내년 시즌에 증명될 것
장원준의 이탈은 확실하고 이대호의 거취는 불투명하다. 만약 두 명의 팀 내 투-타 에이스가 모두 팀을 떠난다면, 내년 시즌 롯데의 전력은 올해만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SK에 덜미를 잡힌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팬들 역시 최동원의 별세와 더불어 4년 연속 반복된 포스트시즌 시리즈의 패배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올해 양승호 감독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팀의 문제점을 빨리 수정하고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플레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경쟁팀들의 내-외부적인 악재,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이 다져 놓은 든든한 전력이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대호와 장원준이 빠진다면, 당장 내년 시즌 롯데의 전망은 어려워진다. 그만큼 롯데에서 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현재로서는 이대호 잡기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대호가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올 시즌 초반 부진한 출발을 씻고 후반기에 날아오른 양승호 감독의 지도력은 내년 시즌에 진정한 검증을 받을 것을 보인다.
// Lenore 신희진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