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의 최대관심사는 역시 각 팀들의 전력보강과 선수이동에 쏠린다. 프로무대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선수들에게는 손꼽아 기다려온 FA(자유계약) 자격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일반계약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아낼 수 있는 FA는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회이지만, ‘아무나’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FA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9년(대졸선수는 8년)이상 꾸준히 출전 경기수를 채워야 하고, 그 동안 충분한 가치를 입증해야만 FA 대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내 프로야구의 FA 제도는 지나치게 구단측에 유리하게 치우쳐있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번에는 다소 수정됐다. 타 구단의 FA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전년도 연봉의 200%와 보상선수 1명, 혹은 전년도 연봉의 300%를 보상해야 한다. 물론 여전히 톱스타급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평범한 선수들이 이적이나 연봉 대박을 꿈꾸기엔 부담스러운 장벽임에 틀림없다.
1999년부터 FA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후, 이 제도의 첫 수혜자가 된 것은 송진우(한화)와 이강철(해태)-김동수(LG)였다. 송진우는 한화에 잔류했고, 이강철과 김동수는 팀을 옮겼다. 이때만해도 당시 최대어였던 FA 선수들의 몸값이 3년간 7~8억원 선이었으니 물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지금 보면 단촐하기까지 하다.
2000년대부터 FA 제도가 활성화되며 머니 게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삼성, LG 등 우승에 굶주린 부자구단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스타선수들을 쓸어 담으며 10억대를 넘어 20억대를 훌쩍 넘기는 매머드급 계약들이 속출했다. 선수들의 몸값은 한없이 치솟았고, ‘FA 대박’이라는 용어가 현실화된 시기였다. 홍현우가 해태에서 LG로 이적하면서 4년간 22억이라는 대박을 터뜨렸고, 김기태도 LG에서 삼성으로 4년간 18억 원이라는 대형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선수들의 몸값에 정점을 찍은 것은 심정수였다.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거포 심정수는 2005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면서 4년 동안 옵션 포함 총 60억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에 계약하며 FA 대박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로 인하여 선수들 사이에서는 ‘FA로이드’라는 신조어가 나돌기도 했다. 이전까지 평범한 활약을 보이던 선수들이 FA를 1~2년 앞둔 시점부터 갑자기 기량과 성적이 크게 향상되는 효과를 빗댄 것이다. 선수들에게는 FA라는 목표를 통하여 더욱 분발할 수 있는 동기부여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FA는 한편으로 ‘먹튀’ 선수의 양산이라는 달갑지 않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거액을 들여서 영입한 선수들이 막상 계약 이후 뜻밖의 부진에 허덕이거나 부상으로 몸값만큼의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면서, FA 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FA 대박의 수혜자로 기억되는 선수들 중 상당수가 먹튀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대 최고액 FA 계약자인 심정수만 해도 잦은 부상과 노쇠화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총액은 60억이었지만 상당부분 옵션이 걸려있는 계약이었기 때문에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심정수가 실질적으로 수령한 금액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FA 먹튀 잔혹사로 가장 곤욕을 치른 팀은 단연 LG다. LG는 FA 최초의 ‘대형 먹튀’로 기억되는 홍현우를 비롯하여, 2007년 역대 FA 몸값 3위에 해당하는 박명환(4년간 40억), 진필중(4억 30억) 등을 영입했다. 하지만 모두 쌍둥이 유니폼만 입으면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먹튀의 전당’이라는 달갑지 않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FA에 투자하느라 허공에 날린 돈만 합쳐도 괜찮은 유망주 10명을 키우고도 남았다는 평가다. 여기에 그만큼 돈을 들이고도 최근 9년간 포스트시즌조차 나가보지 못했을 만큼 성적은 성적대로 말아먹은 LG이기에 더욱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물론 투자 대비 제 몫을 한 선수들도 있다. 심정수와 함께 2005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박진만은 국민유격수라는 애칭을 얻으며 뛰어난 수비력을 앞세워 2005~2006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송진우는 유일하게 FA 계약을 세 차례나 맺으며 프로야구 최초의 200승 돌파와 투수부문 각종 최고령 기록을 모조리 경신하며,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로 남았다. 2009년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 홍성흔도 매 시즌 3할을 웃도는 꾸준한 성적으로 FA의 모범사례가 된 케이스다.
최근에는 FA제도의 취지가 왜곡되면서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오히려 선수인생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설사 FA를 선언하더라도 어느 구단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하면 ‘FA 미아’가 되어 다음 시즌을 뛸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구단에 미운털이라도 박힐 경우 아예 야구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지난해 FA를 신청했다가 어느 팀의 부름도 받지 못하고 결국 유니폼을 벗어야 했던 이도형이나 최영필, 2007년의 차명주나 노장진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수이적과 직장선택의 자유라는 FA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때, 평범한 선수나 은퇴를 앞둔 노장들의 생존권을 박탈할 수 있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숙제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