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야인으로 머물던 ‘야신’ 김성근 감독이 이제 막 출범하는, 그것도 프로야구단도 아닌 독립야구단 초대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고양의 영입추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치부했지만, 지난 5일 김성근 감독의 고양행 발표로 꿈은 현실이 되었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 감독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시절과 이방인에 대한 텃세를 극복하고 오직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 자리까지 달려온 잡초 같은 근성의 화신이다. 1983년 OB 베어스를 시작으로 태평양, 쌍방울, LG, SK 등 여러 프로구단 감독을 거쳤고, 맡은 팀마다 강팀으로 환골탈태시키는 지도력을 보였지만, 항상 구단과의 마찰로 경질되는 등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열정과 승부욕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며 ‘야구의 신’으로 추앙했다. 올해 중반 SK 감독직에서 해임된 김성근 감독은 재야에 머물며 그 동안 후배 야구인들을 육성하는 일을 지원해왔다.
사실 김성근 감독은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직후, 몇몇 프로팀 감독설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일본 프로팀에서 영입설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상의 문제로 영입이 무산되면서 고양행이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 9월초에도 한차례 고양 측의 감독 영입제의를 받기는 했지만 고문으로서 창단 작업을 도와주는 역할만 수행했을 뿐, 공식 제의를 수락하지는 않았다.
최근 들어 일본측과의 협상이 무산된 이유도 컸지만, 김성근 감독의 마음이 움직인 결정적인 계기는 고양 구단의 적극적인 러브콜이었다. 고양 원더스 구단주인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는 몇 번이나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서 진심을 담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근 감독은 왜 정식 프로팀이 아닌 고양 원더스를 선택했을까. 고양 측은 프로야구 2군 감독급을 기준으로 최고 대우 조건(2억 안팎 추정)에, 기간에 관계없이 타 구단에서 영입제의가 오면 언제든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는 조건을 보장했다고 밝혔지만, 역시 프로 1군급 감독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김성근 감독을 움직인 것은 돈보다도 결국 한국야구 발전을 위한 명분이었다.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는 ‘주류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야구선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통한 사회기부’를 목표로 창단된 팀이다. 드래프트 미지명 선수를 비롯하여 타 구단에서 방출된 임의탈퇴 선수, 자유계약 선수 등으로 선수단이 구성된다.
김성근 감독의 목표는 독립야구단이라는 실험모델을 통하여 프로야구라는 주류에만 한정되지 않는 한국야구의 저변을 넓히는데 있다. “고양 원더스가 성공적으로 자리잡는다면 제2, 제3의 독립야구단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고, 타 구단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은 고양을 통해 재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발굴된 선수들이 프로 1,2군에 다시 진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국내 야의 인프라가 더욱 확대되고 하부 기반도 탄탄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김성근 감독은 단지 야구만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야구나 승부만이 아니라 인생을 가르치는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고양 원더스에서의 목표가 성적지상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다른 프로구단과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성근 감독은 여기서 다소 의외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바로 한국야구단의 메이저리그 진출이다. 이제 갓 신생한, 프로 1군에도 진입하지 못한 독립야구단 초대감독의 포부치고는 황당해 보일 수도 있지만, 김성근 감독은 진지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야구의 세계화다.
김성근 감독은 일찍부터 “한국야구가 ‘작은 시장’ 안에서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언젠가는 개인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팀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한국 프로팀이 마이너리그에 진출해 성적을 내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도 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양이 그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허민 구단주도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공통의 목표의식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고양 원더스는 KBO 리그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팀. 내년 1월부터 2월까지 전지훈련을 거친 뒤, 내년 시즌부터 프로야구 2군 리그 팀들과 번 외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KBO는 정식 회원팀이 아닌 고양 원더스의 경기는 ‘교류경기’라는 형식으로 48경기를 치르기로 잠정 결정한 상태다. 원더스는 북부리그 5개 팀과 홈-원정 경기를 3경기씩 치러 30경기, 남부리그 6개 팀과는 원정에서 3경기씩 18경기 등 총 48경기를 치르는 일정이다. 김성근 감독은 KBO와 구단들의 합의하에 가급적 경기수를 늘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누구는 허황되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뜻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단지 결과론에 불과하고, 꿈조차도 꾸지 못할 삶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김성근과 고양 원더스가 바라보고 있는 공통의 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어갈 것인지 지켜볼 만하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고양 원더스 페이스북,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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