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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프로야구, 아버지 리더십에서 어머니 리더십으로

by 카이져 김홍석 2012. 2. 1.

한국프로야구에서 감독들은 웬만한 스타급 선수들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야구의 중심이 감독에 있느냐, 선수에 있느냐는 한국야구의 오랜 화두였다. 그만큼 감독의 능력이 작게는 한 경기의 결과에서, 크게는 시즌의 성적 혹은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데 있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감독이 어떤 형태의 지도방식과 리더십을 표방하느냐는 해당 팀의 성적과 비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감독의 스타일이 곧 팀의 색깔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감독의 성향에 따라 빅볼과 스몰볼이 갈리고, 자율야구, 관리야구, 믿음의 야구 같은 정의들이 새롭게 탄생했다.

 

한국프로야구의 감독 지형도는 2011년을 기점으로 변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김성근 감독(고양 원더스)의 퇴진으로 프로 출범 초창기부터 건재했던 프로야구 1세대 감독들이 모두 현역에서 물러나고, 신생구단 NC 다이노스를 비롯한 현재 프로야구 9개 구단 감독들이 모두 프로선수출신 감독들로 채워진 것. 연령대로도 60대 이상의 노장 감독들이 사라지고 40~50대가 모두 그 자리를 채웠다. 최연소인 김기태 LG 감독은 69년생으로 이제 겨우 43세에 불과하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NC 다이노스가 아직 정식으로 1군 무대에 오르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현재 8개 구단 사령탑 중 가장 감독경력이 오래된 인물은 선동열 감독(KIA)으로 이제 7년차에 불과하다. 그 다음으로는 넥센 김시진 감독이 5년차, 한화 한대화 감독이 3년차, 삼성 류중일 감독과 롯데 양승호 감독은 고작 2년차에 접어든다.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이만수 SK 감독을 비롯하여 김기태 LG 감독과 김진욱 두산 신임감독은 1군 감독으로서는 올해가 첫 데뷔시즌이다.

 

감독들의 세대교체는 곧 지도방식과 사고의 변화를 불러왔다. 소위 관리야구나 자율야구, 미국식 야구니, 일본식 야구니 하는 기계적인 구분을 떠나 조직과 구성원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과거의 프로 감독들은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엄격한 가부장적인 권위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엄한 아버지리더십이다.

 

아이들은 어릴 때는 엄한 아버지를 어려워한다. 아버지들은 엄격하고 무뚝뚝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속정은 누구보다 깊다. 선수와 감독의 관계도 이와 같았다. 어느 정도 연차가 오르기 전까지는 감히 감독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고, 지시에 토를 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 감정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고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며신비주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는 누구보다 강해야 하고 리더가 쉽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김응룡 해태 감독이나 김재박 현대 감독, 김성근 SK 감독 등이 모두 이런 경우다. 흔히덕장으로 일컬어지는 김인식 감독 역시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만큼 선수들에게 친근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현역 시절, 선수들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의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의 권위에는 그에 걸맞는 명분과 원칙이 있었고 성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또한 무조건적인 권위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나름의 자율과 공감대가 있었다. 김응룡 감독은 강성 이미지와 달리 정작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의 능력을 누구보다 믿고 신뢰한 자율야구의 선두주자였으며 심리전의 대가였다. 김성근 감독은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철저하게 계산된 데이터와 확률 야구를 통한결과로서 구성원들의 믿음을 이끌어냈다.

 

최근의 리더십은 권위보다는 소통 위주의어머니 리더십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엄한 아버지는 아이들을 강하게 단련시키려고 하지만, 현명한 어머니는 자식들을 격려하고 포용한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방식은 당장은 효율적이지만, 시키는 데만 익숙해지다 보면 정작 아버지가 없을 때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을 겪는 부작용도 있다. 이런 권위형 지도자들이 이끌던 팀들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새로운 리더십이나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급격하게 무너지는 사례도 많았다.

 

오늘날에는 유능한 리더가 혼자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원 전체를 이끌어가기보다는, 각자의 개성과 사고를 존중하고 서로간의 공감대를 중요시하는 것이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진다. 어떤 리더십이 더 우월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상호보완적인 현상에 가깝다.

 

젊은 감독들은 감정표현에 자유롭다. 류중일 삼성 감독이나 양승호 롯데 감독, 이만수 SK 감독 등이 좋은 예다. 과거에는 감독이 말을 많이 하거나 액션이 잦아지면가볍다는 선입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의 심정에서 선수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할말은 한다.

 

선수들과의 관계 역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물론 이들도 엄할 때는 엄하고 결단을 내릴 땐 단호해야 한다. 자율 속에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것은 권위로서 통제하는 것보다 배는 더 어렵다.

 

예전 같으면 그렇게 물러서야 개성강한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이끌어나가느냐고 한 소리 들었을 인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우승을 비롯하여 프로야구 상위 1~3위가 모두 젊은 리더십을 표방한 초보 감독들의 몫이었다.

 

한 원로 야구인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예전에는 감독들이 덕아웃에서 살짝 인상만 찡그려도 선수들이 긴장했다. 어쩌다 호통이라도 한번 듣는 날에는 거의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혼이 빠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야단맞으면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표정으로는 지도자의 말에 승복하지 못하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제는 웬만한 팬들조차도 다들 야구박사가 되어있는데 머리 큰 프로 선수들은 오죽 하겠나?”고 쓴웃음을 지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도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가슴뿐만이 아니라 머리로서 선수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감독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속으로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권위로서 지시하기보다는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고, 경험을 내세우기 전에 논리로서 이해시켜야 하는 시대다. 그런 면에서 직접 프로선수 생활도 해보고 다양한 야구환경의 변화를 겪어본 젊은 감독들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가졌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요즘 감독들이 예전보다 감독노릇 하기는 정신적으로 더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한국야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리더십과 어머니 리더십의 상호 조화가 필요하다. 야구인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권위적이고, 나이가 젊다고 해서 개방적인 것도 아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에 입문하고도 정작 선수들과 잘 소통하지 못했던 감독들도 있다. 반대로 엄격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라고 해서 꼭 시대에 뒤처진 리더십도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좀더 다양한 형태의 리더십과 야구철학이 공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성근 감독이나 김인식 감독이 60대 이상을 넘겨서도 충분히 능력과 실적을 인정받는 노장 감독들이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들은 엄청난 승수만큼이나 그에 비례하는 많은 패배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들이 한두 시즌 반짝하고 명장소리를 듣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륜과 노하우가 패배의 역사 속에서도 녹아있다.

 

반대로 젊은 감독들이 기성의 틀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그렇듯, 그 리더십에도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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