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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클레멘스와 이치로의 인생역전(부제 : 이치로 ‘명예의 전당’에 초대 받을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2.

‘로켓맨’이라는 애칭으로 모든 미국 야구팬들의 우상이었던 로저 클레멘스(46).
그러나 지난해 12월 발표된 미첼 보고서(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을 입증하는) 명단에 클레멘스의 이름도 버젓하게 올라가면서 그 위상이 급전직하했다.
역대 최고의 지지율로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이 높았던 클레멘스는 미국을 능멸한 거짓말쟁이가 됐다.
반면 “야구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간판스타 이치로 스즈키(34)의 인기는 나날히 치솟고 있다.
불리한 신체 조건을 노력과 끈기로 이겨낸 것에 대한 지지다. 두 사람의 운명은 너무 극명하다.



클레멘스가 이치로와 대조되는 이유

2007년 12월 13일 메이저리그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2006년 3월에 조지 미첼 전 민주당 상원위원을 위원장으로 위촉하여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근육 강화제와 성장 호르몬에 관련된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던 ‘미첼 위원회’가 드디어 그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이 ‘미첼 보고서’에는 몇 년 전부터 홀로 집중 포화를 당하고 있던 배리 본즈를 비롯하여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스테로이드 전도사’ 호세 칸세코, 마크 맥과이어, 제이슨 지암비 등을 비롯해 80여명의 전현직 메이저리거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로켓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 미국 야구팬들의 꿈이자 상징이었던 로저 클레멘스(46)의 이름도 그 저주스런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클레멘스의 금지약물 사용 의혹은 수많은 야구팬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배리 본즈에 이어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를 불신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그 결과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가 아닌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을까?’가 관심의 대상이었던 클레멘스는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와는 정 반대로 스테로이드(또는 성장 호르몬)의 의혹에서 자유로우면서, 다른 방향의 최고를 지향하는 선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지마라, 야구를 하고 있으면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의 야구 영웅 이치로 스즈키(34)가 지난 달 자신의 모국인 일본에서 어린이 야구단을 상대로 한 말이다. 자신의 재능과 실력 그리고 노력만이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여겨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이치로의 성격과 신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작은 체구를 지닌 이치로를 향해 약물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가장 위대한 선수에서 ‘비겁자’로 낙인이 찍힌 로저 클레멘스와 타고난 신체 조건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끈기로 그것을 이겨낸 이치로. 이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앞날의 여정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날개를 잃어버린 클레멘스

메이저리그에서는 20세기 초반까지 반발력이 적어 멀리 뻗어나가지 않는 공을 공인구로 사용했다. 이는 투수에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고, 통산 최다승의 주인공인 사이 영(511승)과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 받는 월터 존슨(417승) 등이 최고의 투수로 명성을 날렸다. 단일 시즌 방어율 순위 50위권의 기록 가운데 무려 47개가 이 시기의 기록이다.


1920년을 기점으로 반발력이 뛰어난 것으로 공인구가 바뀌었고, 이후의 시대를 일컬어 우리들은 ‘라이브볼 시대’라고 부른다. 라이브볼 시대가 열린 이후에 가장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는 투수가 바로 7번의 사이영상에 빛나는 로저 클레멘스다. 24년의 선수생활 동안 통산 354승 184패 3.12의 방어율 그리고 4672개의 탈삼진(역대 2위)의 멋진 성적을 남긴 클레멘스는 팬들에게 사랑받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미첼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본인은 계속해서 금지약물 사용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약물 사용에 대해 오랫동안 시달려왔던 팬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FOX 스포츠의 설문조사 결과 무려 64%의 팬들이 “클레멘스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고 응답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팬들의 등 돌림은 향후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도 큰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뿐 아니라 동료 선수들 중에서도 몇몇은 “클레멘스가 90년대 후반 이후로 수상한 4번의 사이영상을 없던 것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평소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로저 클레멘스로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매년 12월에 이루어지는 전미야구기자협회(BWAA)의 투표에서 75%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된다. 투표에는 단순히 선수가 남긴 성적만이 아니라, 선수 생활 동안의 임팩트나 영향력, 그리고 인기와 도덕성까지도 어느 정도 고려가 된다.


불과 석 달 전만 하더라도 이 모든 면을 갖춘 로저 클레멘스의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100%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의 추이에 따라 그 가능성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통산 586홈런(역대 8위)의 기록을 남겼지만, 은퇴 후 금지 약물 파동에 휘말린 마크 맥과이어가 지난 두 번의 투표에서 얻은 지지율은 25%를 넘지 못했다. 클레멘스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결정된 리치 고시지는 “클레멘스가 이미 다 드러난 마당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법정 소송까지 준비하는 것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클레멘스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그 날개를 잃어버리고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당당한 동양인 이치로 스즈키

MVP 1회, 신인왕, 타격왕 2회, 최다안타 1위 4회, 7년 연속 올스타 선정 및 골드 글러브 수상 그리고 2번의 실버 슬러거까지, 지난 7년 동안 이치로가 남긴 업적은 화려하기만 하다.


2001년 데뷔와 동시에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오른 이치로는 그 해 ‘이치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팀을 117승(45패)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이례적으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2004년에는 161경기에서 262개의 안타를 몰아쳐 단일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사상 최초로 7년 연속 3할-200안타-30도루-100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34살이 된 2007시즌에도 이치로는 여전히 놀라운 모습을 선보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1060경기 만에 1500안타를 돌파(역대 3번째로 빠른 페이스)했으며, 올스타전 사상 최초로 그라운드 홈런을 팬들에게 선물하고 MVP의 영광도 차지했다. 그 직후 소속팀 시애틀과 5년 간 9000만 달러에 계약(전체 5위에 수준)하며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치로는 지금까지 1592안타 67홈런 427타점 782득점 타율 .333(현역 1위)의 통산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도 사람인 이상 30대 후반이 되면 기량의 쇠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니, 올해 35살이 된 이치로가 명예의 전당 보증 수표라 할 수 있는 3000안타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비록 3000안타를 달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통산 165승에 불과한 샌디 쿠펙스는 단 4년의 전설과 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미국 진출 후 이치로의 행보가 만들어낸 파장도 그에 못지않다. 비록 빅리그 데뷔는 늦었으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밀도 있고 농도 짙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치로의 뒤를 이어 많은 일본 타자들이 빅리그에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이치로의 위상을 위협할 만한 일본 출신 선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그만한 실력과 스타성을 동시에 갖춘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일본 출신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라는 타이틀은 이치로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이점이다.


무엇보다도 성실한 자기관리와 언론에도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치로는 기자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미국의 메이저리그 담당 기자들에게도 인상 깊게 박혀있다. 3년만 더 지금과 같은 성적을 이어나가 10년 연속 3할 200안타 100득점 이상의 업적을 남기게 된다면, 기자들은 그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영웅의 앞날은...

아무리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고 해도, 감히 로저 클레멘스가 남긴 저 위대함에 비할 수는 없다. 아니, 없었다. 적어도 미첼 보고서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두 영웅을 바라보는 시선은 180도 달라졌고 이치로처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선수들에 대한 평가는 한층 더 높아졌다.


2008년, 이치로는 또 하나의 축제를 앞두고 있다. 일본시절까지 포함해 통산 2,870안타를 기록 중인 이치로는 앞으로 130개만 추가하면 일본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개인 통산 3,000안타를 돌파하게 된다.


그 뿐이 아니다. 만약 올 시즌 안에 215개의 안타를 기록하게 된다면 일본 야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의 3,085안타와도 타이를 이루게 된다. 지난 7년 동안 평균 227개의 안타를 만들어 냈던 그이기에 기록 경신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이치로의 손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클레멘스의 앞날에 놓여 있는 것은 지루하게 이어질 법정 공방뿐이다.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친구까지 잃은 클레멘스는 팬들의 싸늘한 시선 속에서 고독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고, 설사 법정에서는 승리한다 하더라도 이미 떠나버린 팬들의 사랑을 되찾기란 요원한 일이다.


자기 자신과 팬들 앞에서 정직했던 이치로와 양심을 팔아서라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를 원했던 클레멘스는 결국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길도 달라지고 말았다. 스포츠에 있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자신이 흘린 땀뿐이라는 이치로의 말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스포츠 전문 잡지 월간 ‘스포츠 온(Sports On)’ 2월호에 기고한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