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본격적인 준비만 남았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입단계약을 맺은 류현진은 한국에 돌아온 후 당장 내년 시즌에 ‘10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을 목표로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팬들 역시 한국의 ‘괴물’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나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류현진의 계약 내용은 6년간 3,600만 달러지만,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매년 투구이닝에 따라 100만 달러씩의 옵션이 걸려 있으며, 첫 5년 동안 750이닝을 채우면 선수의 선택에 의해 FA를 선언할 수 있다. 류현진이 매년 투구이닝에 대한 옵션을 따낸다면, 실질적인 계약내용은 5년간 3,400만 달러가 되고 2017시즌 후 만 30세의 나이로 FA 시장을 두드릴 수 있게 된다.
스캇 보라스라는 거물급 에이전트와 포스팅 금액을 합쳐 연평균 1,000만 달러가 넘는 몸값. 이 두 가지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다행히 류현진은 이 모두를 손에 넣었으며, 이젠 실전에서 그 실력을 보일 일만 남았다.
미국 무대에 뛰어든 이상 일단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인 차이에 대한 적응 여부도 아주 중요하다. 특히 언어의 장벽은 하루 빨리 허무는 것이 좋다. 다행히 류현진은 매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고, 강심장으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야구 외적인 요소로 인해 고생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극복해야 할 경기 외적인 요소는 그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험난하고 어려운 조건들이 류현진의 앞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 프로야구 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격차가 느껴질 조건들이 있다. 류현진이 앞으로 익숙해져야만 하는 3가지 환경을 살펴본다.
▲ 엄청난 이동거리
대전에 연고를 두고 있는 한화 이글스는 우리나라의 프로 구단 가운데 가장 이동거리가 적은 편이다. 보통 1년에 6,000~8,000km 정도를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3일에 한 번씩 차를 타고 수백km를 이동한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국내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매년 1만km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들이 여름만 되면 지쳐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의 이동거리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메이저리그 팀들의 1년 간 평균 이동거리는 무려 55,000km에 달한다. 한화의 8~9배 정도 되는 셈이다. 특히 류현진이 속한 LA는 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팀이라 연간 이동거리가 7만km를 넘어가기도 한다. 아무리 비행기로 이동한다 하더라도, 공항까지 가는 시간 등을 포함하면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된다.
동부에 위치한 뉴욕과 서부의 LA 간의 거리는 서울-부산의 10배가 넘고, 이 두 도시 사이에는 3시간의 ‘시차’까지 존재한다. 시차 적응을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3시간의 차이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메이저리그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와 달리 경기가 열리는 시간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 일정치 않은 경기 시간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평일 경기는 오후 6시 30분, 주말 경기는 공중파 TV 중계가 없는 한 오후 5시로 고정되어 있다. 선수들이 매일 똑 같은 일정을 소화하는 만큼 컨디션 조절이 용이하다. 모든 경기가 저녁 시간대라는 점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경우 같은 시간대를 기준으로 하면 그날의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경기와 가장 늦게 시작되는 경기의 시간 차가 무려 10시간이나 될 때도 있다. 동부의 어떤 도시에서는 오후 1시에 경기를 시작하고, 서부의 어떤 팀들은 오후 8시에 경기를 시작한다. 거기에 3시간의 시차까지 적용되면 실질적인 시간 차이는 더욱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도시에서 동일한 상대와 3~4연전을 펼치는데도 경기시간이 매일 바뀌기도 한다.
가령 전날 뉴욕에서 오후 7시쯤 열리는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본 후 밤새 4,500km를 이동하여 다음날 오후 2시에 LA에서 열리는 시합에 선발등판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선발투수만 미리 출발시킬 때도 있지만, 굳이 그런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동일 다음날의 등판은 체력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에게 연일 깨졌던 ‘미국 대표팀’의 야구는 대단치 않았을지 몰라도, 메이저리그의 야구 수준은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은 이 엄청난 체력적인 부담감을 이겨내면서 연간 162경기나 되는 대장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류현진이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경기 외적인 요소에 대한 적응도 아주 중요하다. 경기에 등판해서 좋은 투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인데, 그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 5일 로테이션에 대한 적응
박찬호의 성공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것을 도입했고, 그와 시기를 같이하여 ‘5인 선발 로테이션’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는 동일하게 5명의 선발투수를 운영한다. 하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은 전혀 다르다. 메이저리그의 5’인’ 로테이션은 5’일’ 로테이션과 거의 동일한 의미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일주일마다 한번씩 꼬박꼬박 휴식일이 주어지고, 더블헤더가 없기 때문에 비로 인해 취소된 경기는 시즌 막바지로 연기된다. 따라서 주중 3연전의 첫 경기인 화요일과 주말 3연전의 마지막인 일요일 경기에 연달아 등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선발투수가 5일만에 또 다시 마운드에 서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보통은 6일, 때로는 7일만의 등판도 꽤나 잦은 편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는 일정하게 정해진 휴식일이 없다. 구단별로 매달 2~3일 가량의 휴식이 불규칙적으로 주어질 뿐이다. 정규시즌 경기수가 162경기나 되는 만큼 시즌이 진행되는 6개월 동안은 거의 쉴새 없이 경기가 이어지고, 일단 시합에 돌입하면 12연전 정도는 기본이다. 선발투수가 5일만에 등판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전체의 20% 미만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는 70%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를 포함해 지난 몇 년간 류현진의 등판 일정은 대부분 ‘일주일에 한 번 등판해서 120구 던지기’였다. 류현진의 경기당 투구이닝이 유독 많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들보다 긴 휴식을 가지고 등판해서 많은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일정을 기대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의 기본은 ‘5일만에 등판해서 100구 던지기’다. 투구수가 줄어드는 대신 등판 간격이 짧아지고, 등판 횟수 자체가 한국에서보다 최소 5회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그로 인한 피로도는 무시할 수 없다. 익숙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패턴에 적응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법. 특히 매주 주어지던 휴식일이 사라진다는 점은 예상보다 훨씬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류현진의 실력 그 자체는 메이저리그에서 3선발로 활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하지만 실력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 무대다. 류현진이기에 어려움 없이 잘 해낼 것이라 기대하지만, 류현진이라도 방심하다간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장애물이다. 류현진의 도전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세밀한 준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MLB.com 메인화면 캡쳐,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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