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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109cm의 난쟁이 타자 에디 가이델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13.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맥 라이언과 함께 로멘틱 코미디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빌리 크리스탈이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양키스는 이 배우 겸 코미디언과 ‘1일 계약’을 체결했고, 크리스털은 양키스의 동료(?)들과 간단한 훈련을 함께한 후 14일(한국시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전에 출장할 예정이다. 뉴욕 주 롱 아일랜드 출신으로 평생 양키스의 팬이었던 크리스털은 60살이 되어서야 그동안 꿈꿔오던 것을 이루었다며 기뻐하고 있다.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도 ‘아주 재미난 아이디어’라며 이를 승인했다고 한다. 메이저와 마이너라는 구분 하에 성적 여하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수도 있는 스프링 캠프지만, 며칠간은 양키스의 트레이닝 훈련장 레전드 필드에 즐거운 웃음이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 팬들을 위한 프로 야구

이러한 것은 일종의 팬 서비스다. 그리고 ‘스포츠 =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의식이 강한 메이저리그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예전 칼럼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프로 스포츠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한 아무런 외부 생산력이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메이저리그는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팬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방법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도 투구 인터벌을 길게 가져가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그러한 습관을 가지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시간을 끌게 되면 팬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일 지라도 팬들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메이저리그가 100년을 넘게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할 수 있는 이유다. 어지간하면 강공을 선택하고, 감독들이 여러 가지 작전을 남발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괴짜 구단주 빌 빅

빅 빌은 4~50년대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전신) 등의 구단주였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야구를 가지고 장난을 친 괴짜’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어떤 상황에서든 팬들을 위한 야구를 하기 위해 노력한 괴짜였다.


물론 팬들을 위한 야구가 많은 관중을 끌어 모으게 되니, 결과적으로 자기 배를 불리겠다는 목적이 가장 컸지만 말이다. 빌은 경기장에 관중을 끌어 들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니그로 리그의 영웅 사첼 페이지를 메이저리그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빅이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30대 후반의 선수도 보기 힘들던 1948년 당시 42살이었던 페이지의 메이저리그 입성은 그 자체로 뉴스거리였다.(페이지는 이후 1965년 59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라 최고령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시절에는 ‘구단주의 날’이라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이 되면 경기장에 입장하는 관중들에게 각종 작전이 적힌 피켓을 나눠준 다음, 그 관중들이 시키는 대로(예를 들어 관중들이 ‘번트’라는 피켓을 많이 들었다면 타석의 타자가 번트를 대는 식의) 경기를 진행했다. 가끔은 상대 팀과 타자에 따라 경기장의 펜스를 변형 시키는 등의 엽기 행각을 벌였던 빌 빅은 지금도 메이저리그의 탕아로 회자되고 있다.


▷ 난쟁이 타자 에디 가이델

그러한 빅의 엽기적인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 일화가 하나 있다. 바로 1951년 8월 19일에 벌어졌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벌어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때는 2차전 1회말 브라운스의 공격, 1번 타자 프랭크 소셔의 타석이었다. 첫 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브라운스 벤치에서 선수 교체를 선언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걸어 나오더니 타석에 들어서서 조 디마지오의 타격 폼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난쟁이 타자 에디 가이델(당시 26세)의 등장이었다. 당시 26세였던 가이델은 어려서부터 발육 장애를 겪은 탓에 그 키가 109센티에 불과했고, 등에 달고 있는 번호는 ‘1/8’이었다. 관중들이나 상대하는 선수들이나 이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난감해 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당황했던 사람은 상대 선발인 밥 케인 이었다.


알다시피 스트라이크 존이란 상대하는 타자들의 신장에 따른 것이다. 가이델의 스트라이크 존이 보통 선수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터라 케인은 4개 연속으로 볼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걸어서 1루로 출루한 가이델은 곧바로 원래 팀의 주전 선수인 짐 델싱과 교체되었고, 그가 벤치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 사건은 구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빅이 연출한 것이었다. 극비리에 그를 데려오기 위해 나무 상자 속에 넣어서 구장에 들여왔고,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팬들은 너무나도 즐거워했다. 타이거즈 측에서는 부정선수라며 강력히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이델은 빅의 치밀한 주도 하에 이미 사무국의 승인을 받은 정식선수였던 것이다.


가이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이 몇 분으로 끝났지만, 이후 미국 전역에서 유명세 타며 인기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현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메이저리그 최장신인 랜디존슨과 가이델의 실물 크기의 마네킹이 나란히 세워져있고, 경기 당시 입었던 유니폼도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팬들을 즐겁게 해주겠다’라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의지와 의식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빌리 크리스탈의 ‘1일 계약’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는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