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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또는 선수)의 ‘팬’이라는 건 어떤 것일까요?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0. 20.

전주 KCC의 간판스타였던 이상민 선수가 지난 오프시즌 기간에 서울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었죠. 이제 겨울이 다가와 새로운 농구 시즌이 시작되려고 하니 각종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서 눈에 띄는 글이 있습니다.

“이상민이 있을 때는 KCC 팬이었는데, 이상민 없는 KCC는 정이 안가! 난 이제부터 삼성 팬 할래~!”

라는 내용의 글이죠.

과연 이러한 글을 쓴 사람, 또는 이 글을 보고 공감하는 이들을 KCC의 팬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제가보긴 이들은 이상민 선수 개인의 팬일 뿐, KCC의 팬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과거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 시절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죠.

“나는 박찬호 선수가 뛰는 LA 다저스의 팬이야!”

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다저스는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상의(솔직히 말하자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팬 층을 국내에 확보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들에게 다저스는 ‘어떠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만 좋아할 수 있는 팀’이었습니다. 이들이 다저스의 팬일 때는 박찬호 선수가 등판하는 35경기 뿐, 나머지 127경기에서는 다저스가 어떤 팀과 경기를 하고 또한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요.

피아의 구분 기준 또한 참으로 모호했습니다. 같은 다저스 소속의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 ‘박찬호 선수의 승리에 도움을 준 선수는 좋은 선수, 그렇지 못한 선수는 관심 밖의 선수, 방해를 한 선수는 나쁜 선수’라는 이상한 잣대로 평가되어 매 경기마다 이리저리 난도질당하곤 했었죠.

결국 다저스 팬을 자처했던 이들 중 1%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99%는 박찬호 선수의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과 동시에 좋아하는 팀을 바꾸었습니다.

과연 이들을 다저스의 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상민 선수가 없다고 KCC 팬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도, 박찬호 선수를 기준으로 모든 평가를 하던 이들도, 선수 각자의 팬일 뿐, 그 팀의 팬은 아니지 않을까요?

이러한 구분이 참으로 모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호한 구분 때문에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가끔은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죠.

A라는 팀의 팬들이 모여서 그 팀에 소속되어 있는 a라는 선수가 팀에 해악을 끼치니 트레이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a 선수의 팬이 ‘나도 A팀의 팬인데 그런 일 없다’라고 반박하며 끼어들 때가 있죠.

그리고 b라는 선수의 팬들끼리 모여서 ‘지금 b가 소속되어 있는 B팀은 b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듯하니 C라는 팀으로 이적하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B팀의 골수팬이 나서서 ‘무슨 헛소리냐’라며 목소리(글소리?--;)를 높이곤 해 게시판이 뜨겁게 달궈지곤 합니다.

각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전 메이저리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응원하는 팀은 없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지금 현재 그 곳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닌 제가 대부분 지역 연고지에 따라 가지게 되는 ‘좋아하는 팀’이 있을 리가 없죠.

‘좋아하는 선수’는 있어도 ‘좋아하는 팀’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잘하길 바랄 뿐이죠.

물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선수들이 속한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해서 우승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뿐, 제 개인적 관심은 선수들 한명 한명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가끔씩 오해하곤 하죠. 이젠 익숙해진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요.

여러분은 어떤 것 같으세요? 한 팀의 팬이라 자처하시는 분들은 그 팀이 리빌딩을 위해 현재의 스타급 선수들을 트레이드 한다고 해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줄 자신이 있으신가요? 또한 한 선수의 팬이라면 그 선수가 자신의 연고지를 떠나 먼 곳으로 이적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응원을 해줄 자신이 있으신지요?

얼마 전에 NBA의 특급 스타 르브런 제임스가 뉴욕 양키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디비즌 시리즈가 펼쳐지는 경기장에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대표하는 지역의 간판스타로 클리블랜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르브런은 놀랍게도 인디언스 모자가 아닌 양키스의 모자를 쓰고 나타났죠.

수많은 이들이 그의 ‘지역을 대표하는 공인으로서의 개념 없음’을 비난했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르브런의 행동은 ‘공인’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개인만을 들여다봤을 때, 어렸을 때부터 양키스의 팬이었다는 그는 진정한 ‘한 팀의 팬’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죠.

여러분이 좋아하는 건 무엇입니까? 선수입니까 아니면 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