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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는 다저스에 남아야만 한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20.

박찬호가 제 8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범경기가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12이닝 동안 무자책(1실점) 행진을 이어갈 정도로 좋은 피칭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경쟁자인 에스테반 로아이자까지 괜찮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바람에 LA 다저스 감독인 조 토레의 머릿속만 복잡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선 7:3 정도로 박찬호가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로아이자가 일단 5선발로 낙점된다면 다저스 입장에서는 마이너 옵션을 모두 소진한 궈홍즈와 박찬호 둘 중 한명을 택해야 한다. 현실상 두 명 모두를 25인 로스터에 포함시키기란 불가능한 상황. 그렇다면 둘 중 한 명을 다른 팀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다.


사실 현재의 박찬호는 매우 운이 없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마이너리그 계약이었다고 해도, 다저스가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지금쯤 5선발 자리를 확정짓고 본격적으로 시즌 개막을 준비하고 있어도 될 만한 성적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근에는 ‘박찬호, 꼭 다저스일 필요는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줄을 잇는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그러한 의견을 제시하는 팬들이 있다. 아마 실제로도 박찬호가 시범경기의 마지막까지 좋은 피칭을 이어가고도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한다면, 손을 내미는 다른 팀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벌써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팀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찬호는 다저스에 남아야 한다. (나 한 사람의 발언이 얼마만큼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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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이후 박찬호의 가장 큰 문제는 구위(정확히는 볼의 무브먼트)의 상실이었다. WBC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을 때도, 샌디에이고에서 잠시 부활하는 듯 한 기미가 보였을 때도 전성기만큼의 구위를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있었던 시범경기에서 박찬호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의 구위가 되살아났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최근에 좋은 피칭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운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고 단순한 우연도 아니다. 패스트볼의 구속은 조금 저하되었지만, 마치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당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볼 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심과 커브가.(2008/03/16 - [MLB Special~!!] - 박찬호의 ‘명품 커브 & 투심’ 드디어 되살아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박찬호는 올해 35살이다. 세월이 지났으니 당연히 나이는 더 먹었고,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지난 몇 년간 보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행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스프링 캠프에 참여한 것도 지난해와 똑같다. 그런데 갑자기 구위는 돌아오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박찬호가 뛰었던 샌디에이고의 펫코 파크는 ‘투수들의 구장’으로 악명 높았던 과거(박찬호가 뛰던 당시)의 다저스타디움보다도 더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이다. 현재의 다저스타디움은 파울 존을 좁히고 펜스를 앞당기는 등의 조치로 인해 거의 중립구장에 가까운 곳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박찬호의 부활이 바뀐 환경(특히 구장)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딱 하나. 그가 소속된 팀이 바로 LA 다저스라는 점뿐이다. 크게 중요치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박찬호 부활의 유일한 키워드일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박찬호를 지켜봐왔던 팬이라면 그가 얼마나 민감하고 섬세한 투수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투수란 원래 예민한 생물이라고들 하지만 박찬호는 좀 더 특별하다.


누가 포수 마스크를 쓰느냐에 따라 놀라울 정도로 투구 내용이 달라졌었고, 아무리 투수에게 유리한 다저스타디움이라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유난히 좋은 모습을 선보이며 ‘무적모드’로 변신하곤 했다. 상대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팀들은 시간이 지나도 더욱 강하게 제압했지만, 그와 반대로 약점을 노출했던 팀들에게는 더 많이 움츠러들며 난타를 당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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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섬세한 박찬호에게 LA는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곳에는 즐겁고 행복했던 전성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백만에 달하는 LA 교민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이 처음으로 도전해서 마침내 성공신화를 써나간 그 곳. 박찬호는 지금 자신이 거처 왔던 길을 예의 그 곳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박찬호이기에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우려된다. 설령 선발 투수 보직이 보장되는 곳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LA 다저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안정이 그를 이끌고 있는 원동력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 이지 ‘보직의 확정’이 아니다. 어차피 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보직이라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 불펜 투수가 되더라도 다저스에 남아서 뛰어난 피칭으로 일종의 무력시위를 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때마침 에이스 브래드 페니를 제외한 나머지 선발 요원들은 시범경기에서 무척 부진한 편이다.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오게 되어있다.


최선의 방법은 이대로 다저스의 5선발 자리를 꿰차면서 멋진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차선의 방법이 꼭 선발을 보장해주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정답이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저스’라는 팀을 떠난 후로 오랫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그가 너무나도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모처럼 제 자리를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저블루로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박찬호가 5선발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출처 : 홍순국의 순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