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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초청선수’ 박찬호의 험난한 도전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1. 9.

박찬호가 초청선수로 LA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어차피 시간을 두고 기다려도 좋은 조건을 제시할 팀이 없는 상황이니, 오랜 시간 동안 몸 담았던 팀으로 돌아가 정신적인 안정감을 찾고 내년 시즌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은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작년 메츠의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더 좋지 않다. 작년에는 메이저리그에 남을 수 없다 하더라도 마이너리그에서 재기를 노릴 기회는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불투명한 것이다.

‘초청선수’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좋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최후의 보루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한물 간 선수들이나 꽃을 피우지 못해 팀에서 방출된 그저 그런 유망주들의 마지막 종착역과도 같다. 이번 시즌 템파베이에서의 최희섭이 바로 초청선수였다.

메이저리그 각 구단들은 ‘로또’를 뽑는 심정으로 매년 스프링 캠프에 앞서 아무런 구단과도 계약을 맺지 못한 선수들 중 일부를 초청선수를 불러 모은다. 로또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메이저리그에 잔류할 확률도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구단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기대만 한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번 박찬호의 다저스 행은 정식 ‘계약’이 아니다. 단지 다저스의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는 것뿐이다. 계약은 스프링 캠프를 통해 박찬호의 기량이 검증된 후에 이루어진다. 메이저리그에 잔류하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든 그에 따른 계약 조건은 선수의 향방이 결정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청선수는 오로지 스프링 캠프에서 보여 지는 성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시범 경기를 통해 좋은 성적을 보이면 메이저리그에 잔류할 기회가 생기긴 하지만, 예상대로(?) 부진하면 미련 없이 방출된다. 애매한 성적이면 마이너 행을 권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 또한 나름 고역이다. 시즌 시작에 앞서 마이너 행을 거부한 최희섭은 결국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고 있다가 기아 타이거즈로 방향을 선회했다.

실수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거나 ‘다음 번 등판에서는 좀 더 좋은 투구가 예상된다’ 등은 통하지 않는다. 최희섭이 전체 시범 경기 수의 절반도 되지 않는 12경기에 나서서 겨우 20번 남짓 타석에 들어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회 자체도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기회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빅리그 잔류의 꿈은 한낱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만다.

지난해 박찬호는 메츠의 5선발 후보였다. 때문에 7번(선발등판은 5회)의 등판 기회를 가지며 18.1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다. 5점대 후반의 방어율로 아쉽게 경쟁에서 밀리긴 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뒀다면 5선발 요원으로 낙점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저스에서는 그것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내년 박찬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최대한 많아야 4~5회 정도의 등판과 10이닝 정도.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살얼음판 위에서의 등판이다. 시범경기에서 난타당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방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시즌 다저스의 5인 선발 로테이션은 이미 꽉 찬 상태다. 올시즌을 부상으로 날렸던 에이스 제이슨 슈미트를 비롯해 16승(4패)과 3.03의 방어율로 에이스급 투수로 성장한 브래드 페니, 3년 연속 12승 이상 3점대 방어율을 기록 중인 3선발 데릭 로우, 2003년 21승을 거둔 적이 있는 에스테반 로아이자, 팀내 최고 투수 유망주인 채드 빌링슬리 등이 이미 내년 시즌 로테이션을 확정 지어 놓았다.

어차피 메이저리그 베테랑 선발 투수들에게 시범 경기는 거쳐 가는 과정일 뿐이다. 단지 자신의 투구를 시험해 보고,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다저스의 1~3선발 정도 수준이라면 시범경기에서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한다고 해도 그것을 염려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2007년 시범경기에서 페니의 방어율은 8.44였다)

5선발인 빌링슬리는 올시즌 좋은 성적(12승 5패 3.31)을 거두며 검증 작업을 완료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특급 투수 유망주 중 한명이다. 이 자리 역시 변동 가능성은 없다. 올시즌 부상과 부진으로 무너진 로아이자(2승 4패 5.79)가 그나마 만만하지만 7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되어 있는 선수 대신 초청선수를 선발 투수로 낙점 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박찬호가 선발 투수로 다저스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시범경기에서의 완벽한 투구(최소한 방어율 2.50이하)와 선발 투수진의 부상이 뒤따라야만 가능하다. 5선발이 모두 건강하다면 좋은 성적을 보인다 하더라도 불펜 투수로 뛰게 되거나 마이너리그 행을 통고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박찬호 역시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저스 행을 선택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이번 박찬호의 다저스 행은 축하받을 일도, 낙관적인 예측만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LA로의 복귀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한 보도가 줄을 잇고 있지만 사실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때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선수의 복귀라 현지 언론에서도 어느 정도의 관심을 표하고 있다. 물론 예전처럼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응원해 주었던 교민들과 지역 팬들 그리고 가족이 있는 LA에서 마지막 꿈을 꾸겠다는 것이 박찬호의 생각이다.

13년 전 미국에 진출할 당시의 초심을 유지한 채 또다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것에 도전하는 한결같은 박찬호. 그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다시 한 번 도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