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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비디오 판독! 독약이 될 것인가 보약이 될 것인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28.


농구 매니아(물론 농구 매니아 뿐 아니라 90년대 청소년 기를 보낸 모든 분들)들이 슬램 덩크를 수학의 정석처럼 탐독하듯 야구 매니아들의 바이블 만화는 바로 아다치 미쓰루의 TOUCH 그리고 H2 라고 할 수 있겠죠. H2는 말 할 것도 없지만 중학교 시절 H1이라는 해적판 제목으로 처음 읽은 TOUCH는 사춘기 야구 매니아의 마음을 완전 패닉 상태로 몰아갈 만큼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고의 야구 만화임과 동시에 최고의 청춘 만화인 TOUCH에는 여러 명장면과 명언이 나오지만 야구에 관한 명장면 중 어린 저의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았던 것은 바로 지역 결승전에 나온 "심판을 믿지 못하겠다면 야구 하지마라!"라는 감독의 일갈이었죠.


세상에는 정말 여러 스포츠가 존재하지만 채점을 통해 등수를 매기는 체조나 피겨 스케이팅 같은 종목을 제외하고 승부를 결정 짓는데 심판의 결정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는 스포츠는 다름 아닌 야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경기의 기본이 되는 스트라이크,볼 판정 부터 주자의 세이프와 아웃 여부 등등 정말 모든 것이 심판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간적인 스포츠랄까요.


지난 1996년 10월 9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양키스와 오리올스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 1차전 8회말, 근대 야구사에 끊임 없이 회자되는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양키스가 4-3으로 경기에 뒤지고 있던 1사 상황에서 타자로 나온 데릭 지터가 상대 투수 알만도 베니테즈를 상대로 날린 우익수 방면 깊은 플라이 볼을 당시 12살의 제프리 마이어라는 소년이 펜스 아래로 몸을 뻗으며 낚아채 관중석으로 접수해버린 것인데요. 

                         

야구 규정에 따르면 관중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거나 플레이 되고 있는 공에 접촉을 가하면 경기 방해가 선언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웃으로 판정되는 것이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주심인 리치 가르시아는 지터의 타구를 홈런으로 선언하였고 5회 부터 바비 보니야를 대신하여 우익수 수비를 보던 토니 타라스코와 감독 데이비 존슨이 격렬히 항의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터의 홈런으로 연장까지 진행된 경기는 버니 윌리암스의 11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양키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죠.  경기 후 볼티모어는 리그 사무국에 심판 판정에 대한 재심을 요청하였으나 이에 대해 커미셔너 지니 버딕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심판의 판정에는 절대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


매년 있는 일이지만 올해도 메이저리그에는 심판의 홈런 판정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이 있었죠. 펜스 꼭대기 노란 경계선을 맞춰 당당한 홈런을 치고도 심판의 오심으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만들기 위해 홈까지 전력질주 하며 체력낭비 시간낭비 홈런을 기록한 지오바니 소토나 양키스와의 라이벌 전에서 좌측 폴대 안쪽으로 넘어간 3점 홈런을 치고도 파울 판정을 당한 카를로스 델가도, 역시나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우측 홈런 경계선을 맞추고도 억울한 2루타 판정을 받은 에이로드까지 홈런 판정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 오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이저리그 100년 역사에 큰 줄기를 이룰만한 중대 발표를 하였습니다. 바로 Video 판독 시스템의 도입인데요. 그동안 일종의 성역으로 여겨지고 있던 심판의 판정에 제 3의 판단 기준이 도입되는 중대한 사건중에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 및 세이프, 아웃 판정에 대한 판독 신청은 허용 되지 않고 오로지 홈런 판정에만 적용 된다는 제한적 허용이지만 이번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비디오 시스템 도입의 영역이 어디까지 넓혀 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지요. 어쩌면 야구라는 스포츠의 본질적인 성격까지 뒤바뀌게 될 지 모르는 일이기에 2008년 8월 26일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날로 기록될 수 있겠습니다.

                                   
비디오 판독 도입에 반대하는 팬들이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심판 판정의 권위가 흔들린다는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몇년 동안 지속적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미국내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 사무국은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 중 경기 시간 단축이라는 과제가 가장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죠. 올 시즌 경기당 평균 시간은 2시간 51분 42초로 관중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어떻게든 2시간 30분대로 경기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게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노력입니다. 관련해서  각 구단 매니저, 심판진 등이 모여 경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을 세우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면 타자가 투수의 투구 중 타석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면 1스트라이크를 선언하고 투수가 12초내에 공을 던지지 않으면 1볼을 선언한다던지, 감독과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갈 때 걷지 말고 뛰어야 한다는 것 등 여러가지 방안이 오가고 있지만 당장 현실적인  대책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빈번한 비디오 판독 요구가 선수들이 느끼는 경기 흐름에 방해를 주게 되어 경기력 저하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죠. "일단은 찬성한다. 단, 경기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라는 라이언 쳐치의 기대반 우려반 발언에서 볼 수 있듯 말입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준결승에서 볼 수 있듯 한순간의 심판 판정 미스로 인해 몇년간 피땀흘려 노력한 수많은 선수들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이 흐르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누가 뭐라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정이 스포츠에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문제라는 것을 볼 때 이번 메이저리그가 내린 비디오 판정 도입 결정은 어찌보면 야구의 한단계 진화라고 받아들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을 넘게 이어져 온 야구의 룰과 본질, 정신을 훼손 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를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것인가가 이번 문제의 키 포인트임을 생각할 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번 결정에 대한 책임에 더 나아가 향후 관리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막중하게 느껴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전세계 팬들을 실망 시키지 않았으면 하는게 이억만리 작은 나라 한 청년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