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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의 ‘정의’에 대한 아쉬움...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1. 19.

박찬호의 LA 다저스 복귀가 일단은 백지화 되었다.

물론 향후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 것이지만, 당장은 향후의 거취가 불투명한 상태가 된 것이다. 바로 올림픽 예선을 위해 대표팀에 합류한 것 때문이다.

우선 박찬호의 이러한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가대표팀에 보탬이 되겠다는 이유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한 번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선택에 대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비록 지금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엘리트급 투수로 활약하고 있지 못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서 활약했던 그다. 적어도 국가 대표팀에서 만큼은 단 한 차례도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선수다. ‘먹튀’ 라는 비난 속에서 한창 마음고생을 하고 있던 시기에 열렸던 2006년 WBC 에서조차도 그는 대회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의 이러한 선택을 존중하는 바이며, 귀하고도 어려운 결정이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선 ‘갈채’ 말고는 보낼 것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의’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오랜 시간 끝에 내린 제 결론은 정의로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하며 이번 자신의 결정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정의.

사전을 찾아보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 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반대어로 ‘불의’라는 단어가 함께 나와 있다.

박찬호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단어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큰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의라니!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국가를 위하는 것이 ‘정의’라면, 그 반대로 대표팀을 등진 채 자신의 꿈을 쫓는 것은 ‘불의’란 말인가?

부인하고 싶어도 박찬호는 이승엽과 더불어 현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가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글을 모두 기사화 되고 있고,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그것을 보았다.

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박찬호에게 박수를 보내는 쪽과, 그와는 다른 선택을 했던 선수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쪽이다.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김병현과 백차승을 언급하며 박찬호와 비교해 그들을 매국노 취급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는 별개인 이들이 왜 그러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 사이에서의 갈등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딜레마 중 하나다. 공익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풀리지 않는 숙제인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을 잠시 내려놓은 채 국가의 부름에 성실하게 응답한 박찬호의 이번 결정은 칭찬 받을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의 선택을 한 선수들이 ‘공공의 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난해 WBC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다. 그만큼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프로야구의 페넌트레이스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박찬호 자신도 지난 1998년의 방콕 아시안 게임의 출전 영향으로 이듬해 시범경기에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했으나, 정작 정규 시즌에서는 전년도에 3점대였던 방어율이 5점대로 치솟는 부진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대표팀 차출은 분명 선수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국가의 명예를 짊어지고 힘든 싸움을 앞두고 있는 그들에게 국민들의 성원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선수 자신이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있어 중요한 기로에 섰거나, 갈림길에 놓였다면 그 때는 그 선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도 그것을 ‘불의’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이번 박찬호의 선택은 조금은 지나치게 미화된 면이 있다. 그가 포기한 것은 정식 메이저리그 계약이나, 메이저리그에서의 등판이 약속된, 즉 무엇인가가 보장된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다.

그의 신분은 ‘초청선수’였고, 그가 포기한 것은 바로 그 초청선수로서의 신분이다. 비록 예전만 못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을 거둔 투수가 스스로 원했을 때 그러한 신분과 기회를 줄 수 있는 팀은 메이저리그에 너무나도 많다.

지금 박찬호의 상황은 팀에서 정식 계약을 제시하기는 아쉽고, 그렇다고 초청선수라는 조건을 내걸기에는 선수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가능성이 있어 꺼려지는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초청선수의 조건으로 손을 내미는 팀이 없을 뿐, 박찬호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기회다. 이번에 박찬호가 다저스로 가닥을 잡은 것도 그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번 박찬호의 글과 언론의 보도는 ‘박찬호의 포기’ 와 ‘정의’가 너무나도 미화된 채, 다른 선수들의 비난을 조장하는 듯한 면이 분명히 있다.

물론 박찬호가 홈페이지의 글에서 사용한 ‘정의’라는 단어의 뜻은 그 나름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야구선수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로서 이번의 표현은 아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는 국가만의 꿈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꿈이기도 하다. 박찬호 역시도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꿈을 쫓아온 것이다. 국가 대표팀을 선택한 것이 ‘정의’라면 대표팀의 목표는 ‘의무’일 뿐 ‘꿈’일 수가 없게 된다.

이번의 글에서 그가 선택한 단어가 ‘정의’가 아니라 ‘양심’ 이나 ‘책임감’이었다면 어땠을까. 별것 아닌 개인적인 글을 ‘정의의 이름으로’ 다루어 ‘사건’으로 만들어버린 언론이나, 이에 부화뇌동하며 다른 선수들을 표적삼아 비난을 일삼는 일부 네티즌들까지, 이래저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