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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2008 타이틀 예상(2) - AL 사이영상은 누구의 손에?

by 카이져 김홍석 2008. 9. 16.

지난 번 칼럼에서 다룬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 판도는 브렌든 웹(20승 7패 168탈삼진 3.28)이 8이닝 무실점으로 20승 고지를 점령하자마자 그 이튿날 경쟁자인 팀 린스컴(17승 3패 237탈삼진 2.43)이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거두면서 안개 속 형국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다승의 웹이냐 방어율-탈삼진의 린스컴이냐를 두고 전문가들과 팬들은 수많은 예상을 내놓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딱히 뭐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 결국 끝까지 가봐야 최종 승자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런 NL와 반대로 아메리칸리그(AL)의 경우는 너무나도 독보적인 후보 한 명에 의외의 다크호스가 될 만한 선수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도전하는 선수가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신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이긴 하지만, 독보적인 후보의 만장일치를 제지할 수 있느냐가 현실적인 관심사다.


▶ ‘이제는 내가 최고 좌완’ 클리프 리

랜디 존슨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는 2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한 요한 산타나였다. 그리고 지난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C.C. 싸바시아가 사이영상을 수상하면서 그 양상은 2파전이 되어갔다. 하지만 산타나는 지난 오프 시즌 기간 동안 뉴욕 메츠로 이적했고, 싸바시아는 시즌 중반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 독보적인 좌완의 위치를 굳힌 선수는 싸바시아의 팀 동료였던 클리프 리(30)다.


리의 올 시즌 성적은 그 어떤 찬사를 쏟아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지난 1999년과 2000년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후 이토록 AL를 완벽하게 제압한 투수는 처음이다.


올 시즌 29번 선발 등판에서 210이닝(평균 7.24이닝)을 소화했고 22승 2패라는 경이적인 승률과 2.36의 단연 돋보이는 방어율을 기록 중이다. 탈삼진은 157개로 크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다승과 방어율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상 전혀 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탈삼진이 적은만큼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리의 성적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다승과 방어율만이 아니다. 저 22승 2패라는 승률은 지난 1937년 마찬가지로 클리블랜드 소속이었던 쟈니 알렌이라는 투수가 15승 1패를 기록한 이후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로서는 역대 2위에 해당되는 수치다. 210이닝 동안 허용한 볼넷이 28개로 경기당 1개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도 놀랍다.


리가 앞으로 남은 3경기에서 2승을 챙긴다면 24승으로 1990년 밥 웰치(27승) 이후 AL에서는 최다승 투수로 기록될 전망이며, 현재로선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2004년 풀타임 선발로 데뷔할 당시만 하더라도 리는 싸바시아와 더불어 인디언스를 이끌 좌완 쌍두마차로 평가받았다. 싸바시아가 고졸 신인으로서 2살 연상인 리보다도 3년이나 앞서 풀타임 선발로 데뷔했기에 더욱 큰 가능성을 인정받았을 뿐, 실제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3년 동안 46승을 거둔 리는 38승을 거둔 싸바시아의 좋은 파트너였다.(2005년에는 18승 5패 3.79의 방어율로 사이영상 투표에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지난해다. 2007시즌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기 직전 클리프 리는 복부의 통증(리는 과거 탈장으로 수술을 한 적이 있다)으로 2달가량 결장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대신 선발 보직을 꿰찬 선수가 지난해 싸바시아와 더불어 인디언스를 포스트 시즌으로 견인한 파우스토 카모나(2007시즌 19승 8패 3.06)다.


리는 5월 초 메이저리그로 돌아왔지만, 부상으로 훈련도 하지 못한 선수가 버텨낼 만큼 메이저리그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경쟁자들은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5승 8패 방어율 6.29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리는 올 시즌 스프링 캠프에서는 5선발 후보로 전락해 경쟁을 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5선발 자리를 따낸 리는 보란 듯이 올해를 자신의 커리어 하이로 장식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팀 프런트에서는 그를 믿고 시즌 종료 후 FA가 되는 싸바시아를 트레이드했으며, 지난해 그의 자리를 차지해 신데렐라로 등극했던 카모나는 올시즌 부상까지 겹치며 8승 7패 방어율 5.16으로 부진에 빠져있다.


마치 뱀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투구 폼으로 90마일대 초반의 현란한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리는 전체 투구의 70%이상이 직구일 정도로 자신의 구위에 대한 믿음이 있는 투수다. 물론 곁들여 던지는 슬라이더와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도 올해만큼은 에이스급 스터프의 위력을 자랑한다.


직구를 주로 구사하기에 더욱 매력이 넘치는 투수 클리프 리. 올해 AL 사이영상 판도는 과연 리가 만장일치 수장자가 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이제는 ‘K-로드’가 아닌 ‘S-로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데뷔 초기 폭발적인 투구 폼으로 탈삼진을 쏟아내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26)를 보고 팬들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별명인 ‘에이로드’에서 착안을 해 ‘삼진 잡는 로드리게스’라는 뜻으로 ‘K-로드‘라는 멋들어진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별명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그를 상징하는 것은 탈삼진의 K가 아니라 세이브의 S가 되었으니 말이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현지시간으로 13일(한국시간 14일) 시즌 70번째 구원 등판에서 기념비적인 58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지난 1990년 바비 식펜이 세운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인 57개를 넘어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올 시즌 초부터 시작된 그의 거침없는 세이브 행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전반기에만 이미 38개의 세이브로 웬만한 특급 마무리 투수의 1년치 기록을 챙기더니 후반기에도 20개를 더하며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64번의 세이브 찬스에서 58번을 성공해 90.6%라는 높은 세이브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로드리게스는 올 시즌 종료 후 FA가 되어 팀을 떠날 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팀 프런트는 위기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그를 마운드에 올렸고, 거액의 FA 대박을 노리는 로드리게스도 세이브 신기록을 위해 연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웬만해선 메이저리그에서 금기시하는 3일 연속 등판도 4차례나 있었을 정도.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잦은 등판이 무리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선발 투수 가운데 유일한 경쟁자였던 로이 할라데이(18승 11패 198탈삼진 2.77)가 최근 2연패하며 사실상 레이스에서 확실하게 탈락한 가운데 그나마 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바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다. 그의 올시즌 성적은 2승 2패 58세이브 방어율 2.38이다.


사실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 아무리 로드리게스가 신기록을 세웠고, 조만간 사상 최초로 60세이브 고지를 점령할 것이 확실시 된다고 하더라도 선발 투수인 클리프 리의 성적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에릭 가니에는 4승 1패 52세이브 방어율 1.97의 성적으로도 NL 사이영상 투표에서 4위에 그친 바 있다. 82.1이닝에서 114개의 탈삼진을 빼앗는 괴력까지 발휘했지만, 당시 랜디 존슨(24승 5패 334탈삼진 2.32)과 커트 쉴링(23승 7패 316탈삼진 3.23) 등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이브 개수는 더 많지만 64.1이닝에서 32개의 볼넷을 내주는 바람에 Whip(9이닝당 안타+볼넷 허용비율)이 1.27이나 되는 로드리게스의 성적이 당시 가니에의 그것보다 가치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당시 가니에의 Whip은 0.86)


무엇보다 올해 리의 성적은 2002년의 랜디 존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칼럼을 통해 누차 강조하지만 탈삼진은 참고적인 사항이 될 뿐, 다승과 방어율이 같다면 탈삼진에서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삼진이나 땅볼이나 똑같은 아웃 카운트 하나일 뿐이다.


가니에가 2003년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블론 세이브 ‘0’이라는 단일시즌 최다 세이브보다 더욱 가치 있는 기록과 더불어 경쟁자가 될 만한 투수들이 17,18승에 그쳤었기 때문. 아무래도 구원 투수는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20승과 2점대 방어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거머쥔 선발 투수가 탄생한다면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현 시점에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노릴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리의 만장일치를 저지하는 것 정도다. 오히려 로드리게스의 경우는 사이영상 투표보다 리그 MVP 투표에서 더 많은 1위 표를 획득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