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리그 사이영상에 이은 세 번째 2008시즌 타이틀 예상, 오늘은 내셔널리그(NL) MVP 레이스를 살펴본다.
작년에는 시즌 막판 기적 같은 역전을 일구어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선봉장 지미 롤린스가 NL MVP를 차지했었다. 유격수로서 30-30클럽에 가입한 롤린스는 뛰어난 개인성적과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 성적을 바탕으로 MVP 투표에서 16장의 1위 표를 얻으며 353포인트를 획득, 2위 맷 할리데이(336포인트)와 3위 프린스 필더(284포인트)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올 시즌은 지난해 이상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의 상황은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라는 몇 년 전의 유명했던 광고 문구가 떠오를 정도로 수상이 유력한 선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재는 필요 이상의 많은 MVP 후보가 난립해 있다.
▶ MVP와 사이영상, 신인왕 수상자의 선정방법
사이영상과 MVP는 메이저리그 팀이 있는 각 도시에서 두 명씩 선출된 기자단(AL 28명, NL 32명)이 투표권을 행사하여 수상자를 결정하게 된다. 사이영상과 신인왕의 경우 1위부터 3위까지 용지에 이름을 적게 되어 있는데,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씩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MVP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 용지에 적는데 2위부터 10위까지는 각각 9점에서 1점, 1위는 14점으로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투표는 정규시즌 종료와 동시에 비밀리에 행해지며, 그 결과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일정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발표된다.
▶ MVP를 뽑는 기준은 무엇일까?
MVP는 ‘Most valuable Player’를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가장 가치 있는 선수‘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게 되는 선수는 다음의 3가지 기준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은 개인 성적이다. 그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선수를 뽑기 보다는 적당한 기준을 넘어서는 선수들이 첫 번째 기준을 통과해 두 번째 심사로 넘어간다는 느낌이다. 최근 MVP의 기준이랄 수 있는 기준선은 대략 3할-40홈런-120타점 정도. 물론 30홈런-30도루 등도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그 중 하나가 크게 두드러진다면 다른 곳에서의 부족함을 커버해주는 편이기도 하다.
MVP 수상자를 걸러내는 두 번째 채는 소속 팀의 성적이다. 소속 팀이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다면 2차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겠지만, 역시나 포스트 시즌 진출만이 확실한 통과를 보장한다.
간혹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모두 만족하는 선수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 시즌도 있다. 바로 지난 2003년의 아메리칸리그가 그랬다. 때문에 1차 기준인 개인성적 만으로 수상자가 결정되었고, 지구 최하위에 그친 텍사스 레인저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뛰어난 개인성적을 발판으로 첫 번째 MVP 수상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2001년부터 2004년까지의 4연패를 달성한 배리 본즈처럼 워낙에 압도적인 개인성적은 팀 성적을 극복하기도 한다.
개인과 팀 성적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후보들은 마지막으로 팀 내 공헌도(비중)를 심사받게 된다. 아무리 개인 성적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팀 동료들이 너무나도 뛰어난 바람에 자신의 비중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면, 성적 자체는 조금 떨어지지만 팀 내 비중이 절대적인 선수에게 MVP를 내주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한다. 2004년 AL MVP 레이스에서 매니 라미레즈(43홈런 130타점)와 데이빗 오티즈(41홈런 139타점)가 블라드미르 게레로(39홈런 126타점)에게 밀린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올해의 NL MVP 레이스가 안개 속 형국이라는 것은 1차 기준을 통과한 선수는 2차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2차 기준을 통과하는 선수는 1차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과 팀 성적을 동시에 잡은 것처럼 보이는 선수들은 뭔가 모르게 조금의 아쉬운 점이 있다거나 큰 약점이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올 시즌의 NL MVP를 예상하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만 한다.
▶ 후보가 될 만한 선수들은 누가 있나?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모두 추려보면 위의 12명 정도다. 현재로서 투수들 가운데는 명함을 내밀만한 선수가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애리조나의 사이영상 후보 브랜든 웹(20승 7패 3.28)이지만 팀이 5할 승률 미치지 못하고 있는 터라 제외해도 무방할 것이다.
타자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이 거의 확실시(‘O’로 표시) 되는 시카고 컵스와 LA 다저스 소속의 선수들, 포스트 시즌 진출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로 표시)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메츠, 밀워키 브루어스, 휴스턴 에스트로스의 선수들, 그리고 포스트 시즌과는 거리가 멀지만(‘X’로 표시) 개인성적으로 명함을 내밀고 있는 선수들.
최고 승률 팀인 시카고 컵스(91승 58패)에서 MVP감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위의 표에서도 나타나듯이 중심 타자인 아라미스 라미레즈는 개인 성적에서 다소 크게 밀린다. 사실상 수상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다저스에서는 보스턴에서 이적한 후 4할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매니 라미레즈가 MVP 후보로 급부상했다. 다저스(79승 72패)는 매니가 뛴 43경기에서 25승 18패를 기록한 덕에 애리조나를 제치고 서부지구 1위에 올라 있다. 팀 공헌도의 측면에서는 모든 후보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역시나 내셔널리그에서의 출장 경기수가 문제다.
뉴욕 메츠의 4인방은 사실상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다. 사실 저 정도 라인업을 가지고도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짓지 못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나마 데이빗 라이트가 가능성이 있는 듯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이 저 정도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면 설사 메츠가 가을잔치를 확정짓더라도 많은 표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세이버매트릭스의 대가인 빌 제임스가 팀 공헌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윈 쉐어(Win Shares) 포인트에서 라이트(23포인트)는 카를로스 벨트란(27포인트)과 호세 례예스(26포인트)에 이은 팀 내 3위에 불과하다.
필라델피아의 3,4번 콤비 채이스 어틀리와 라이언 하워드는 둘 다 상당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개인기록에서 다소 부족한 듯하나 골드글러브급 수비를 지닌 2루수 어틀리는 남은 기간 동안 타율만 3할대로 끌어올린다면 팀이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강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될 수 있다.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독보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하워드는 비율 스탯에서의 약점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한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12경기에서 8홈런을 쏘아 올린 그가 남은 11경기에서 5개를 추가해 50홈런을 채운다면, 가장 강력한 후보 1순위로 급부상할 것이 틀림없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라이언 브론도 좋은 선수이지만, 역시 아직은 MVP의 포스와는 거리가 있다. 더군다나 최근 감독이 해임되고 계속해서 지켜오던 와일드카드 1위 자리도 동부지구 팀들에게 내준 상황이라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그나마 포스트 시즌 진출의 가능성이 있는 팀 소속의 선수들 중에는 휴스턴의 랜스 버크만이 가장 균형 잡힌 MVP급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홈런만 30개를 채운다면 MVP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휴스턴이 현재 와일드카드 1위인 메츠에 3경기 차로 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신이 대 역전극의 주인공이 되어 팀을 가을잔치로 이끈다면 MVP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는 다른 경쟁자들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개인 성적만 놓고 본다면 세인트루이스의 알버트 푸홀스와 플로리다의 헨리 라미레즈가 최고다. 현실적으로 똑같이 78승 72패를 기록하고 있는 두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지만, 팀이 위닝 시즌(Winning Season-승률 5할 이상)을 보내고 있는 터라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고 있다.
유격수로서 30홈런-30도루를 달성하고 리그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헨리는 지난해 MVP 지미 롤린스와 완전 판박이다. 살인적인 비율 스탯으로 무장한 푸홀스는 잦은 결장으로 인해 누적 스탯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팬과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 개인성적 보다는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가 중요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컵스와 다저스의 진출이 유력한 상황에서 남은 두 자리는 필라델피아(84승 67패), 뉴욕 메츠, 밀워키 브루어스(이상 83승 68패), 휴스턴 에스트로스(80승 70패) 중의 두 팀이 차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예상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MVP 구도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상황 1. 휴스턴이 극적으로 와일드카드를 따냈을 때
휴스턴이 가장 뒤쳐져 있기에 현실 가능성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만약 이렇게 되었을 경우는 명분도 있고 개인 성적도 MVP로서 부끄럽지 않은 랜스 버크만이 1순위다. 오래도록 MVP 후보로서 그 이름을 올렸지만 항상 미끄러졌던 그이기에 동정표까지 더해져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 변수가 있다면 라이언 하워드의 50홈런 달성 여부 정도.
상황 2. 메츠와 밀워키가 남은 두 자리를 차지했을 때
앞서 밝혔듯이 메츠의 4명과 밀워키의 브론은 MVP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많은 후보들에게 표가 골고루 나눠지면서 엄청난 혼전 양상을 띨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었을 때 가장 유리한 것은 전문가와 팬들로부터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역 최고의 타자’ 알버트 푸홀스다. 지난주 행해진 ‘FOX 스포츠’의 네티즌 투표에서도 푸홀스는 46%의 압도적인 지지로 10%를 획득한 2위 매니 라미레즈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상황 3. 필라델피아가 진출하고 휴스턴이 탈락했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투표권을 지닌 기자단은 역대 최저 타율 MVP의 탄생을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역대 MVP 가운데 가장 낮은 타율로 수상한 선수는 지난 1941년 NL MVP를 수상한 마티 매리언(.267)이며, 그 다음이 61홈런으로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경신한 1961년의 로저 메리스(.269)다. 현재 .249를 기록 중인 하워드의 타율은 그들보다 낮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인 ESPN에서는 이 맘 때가 되면 매일 변화하는 상황에 따른 유력한 후보들 5명을 높고 팬 투표를 실시한다. 최근 일주일은 계속해서 푸홀스가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바로 오늘(미국 시간으로 17일)부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시간으로 16일 필라델피아가 하워드의 폭풍 같은 홈런포 행진에 힘입어 메츠를 제치고 지구 선두로 올라섰다. 덕분에 라이언 하워드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5명의 후보에 포함되었고, 진입과 동시에 31%의 지지율로 푸홀스(36%)를 압박하며 2위를 달리고 있다.
하워드가 필라델피아의 포스트 시즌 진출과 시즌 50홈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데 성공한다면, 2006년에 이은 두 번째 수상을 확정지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돌아가는 상황으로 봤을 때, 이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