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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이드로 익힌 홍시, 깨끗하게 씻어서 드세요~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0. 6.
 

홍시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시장에 나가 보면 주황색으로 이쁘게 잘 익은 홍시들이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가격도 비교적 싼 편. 가을철 간식거리로 먹을 이 만 한 과일도 드물다.


감을 가장 단순하게 분류하면 단감과 반시로 나눌 수 있다. 다들 알겠지만 단감은 그냥 깎아서 먹는 단단한 감을 말하고, 반시는 딱딱할 때는 떫어서 먹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랑말랑해지면서 홍시가 되는 감을 말한다.


반시를 잘 익혀서 홍시로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약간의 열을 가하면 잘 익어서 먹음직스러운 홍시가 된다. 문제는 그 열을 가하는 방법이다.(설마 아직도 농민들이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을 수확한다고 알고 있는 순진한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홍시를 만들기 위해 농민들과 과일 중매인(도매상)들은 흔히 공업용 ‘카바이드(탄화 칼슘 CaC2)’를 사용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쯤 부산에 위치한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5개월 정도 한 적이 있다. 때마침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의 홍시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아침에 모든 물건을 옮겨 놓고 난 후 내가 가장 신경 써서 해야 했던 일 중 하나가 카바이드를 신문지에 싸서 반시 박스 안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카바이드를 일반 숟가락을 한 스푼 정도 퍼서 그걸 신문지에 담고 종이접기를 하듯이 접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카바이드를 10kg 박스 안에 2~3개 정도를 넣는다. 그렇게 하면 약 이틀 후 쯤 딱딱했던 반시는 곱게 잘 익은 밝은 주황색을 띄게 된다.


카바이드는 상온에서 공기 중의 물과 반응하여 아세틸렌(CH)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량의 열이 방출되어 반시를 홍시로 익히는 것이다. 그런 반응 과정이 끝나면 딱딱한 고체였던 카바이드가 마치 시멘트처럼 부드러운 가루가 되어 버린다.


신문지에 대충 싼 카바이드가 가루가 되었으니, 홍시 박스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새는 것은 당연한 일. 카바이드가 든 신문지 근처에 있던 것을 비롯해 상당수의 홍시는 카바이드 가루를 뒤집어쓰게 된다. 더군다나 그 역한 냄새는 맡아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다.


공업용 카바이드는 불순물로써 황, 인, 질소, 규소 등이 함유되어 있고, 물과 반응 시 아세틸렌 외에도 황화수소, 포스핀, 암모니아 등이 섞여 나와 이러한 것들이 홍시에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2005년 우리청에서는 농림부, 산림청, 국립독성연구원 등 관련기관의 의견 등을 수렴하고 검토한 결과, 반응 시 부수적으로 생성되는 유독가스 오염에 따른 문제점 등으로 인해 감 등의 과실류를 숙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바 있다.


홍시를 시장에서 사자마자 그냥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행여나 홍시가 갈라질까봐 조심스럽게 물로 대충 씻고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홍시가 바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깨끗이 씻어서 먹어야 한다. 아껴 먹기 위해 껍질까지 다 핥는 것도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카바이드는 감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바나나를 숙성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퍼렇게 덜 익은 귤을 노르스름하게 색깔을 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일하는 동안 느낀 것은 크게 세 가지다.(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니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너무 돌 던지지 마시길...^^;)


첫째, 농산물 도매시장의 중매인들은 절대로 믿어서 안 된다. 그들은 돈만 되면 과일 사먹는 사람들의 건강 따위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농민들 역시 결코 믿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돈만 되면 중매인과 소비자 속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농촌 인심이 좋고 그네들이 소박하다는 건 이미 옛말이다. 3단으로 된 박스 가장 위의 사과를 보고 비싼 가격으로 사들인 중매인이 맨 아래 단에 놓인 절반 크기의 사과를 보고 농민들이 더하다고 욕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셋째, 이 세상에 ‘싸고, 흠 없고, 맛있는 과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싼 건 뭔가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 그냥 제 값 주고 좋은 과일 사 먹는 것이 최고다.


물론 양심적인 농민과 중매인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홍시를 익히기 위해 카바이드를 사용하는 것 외의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부산 시내 과일의 25% 가량이 오가는 내가 일한 곳에서 그런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르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르고 먹다가는 언제 무슨 이상이 생길지 모르는 홍시. 너무나도 맛있는 홍시의 유혹을 정 뿌리칠 수 없다면 깨끗하게라도 씻어서 먹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