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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투심 마스터’ 그렉 매덕스와 '후계자' 제이크 피비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1. 25.

메이저리그 역대 9위에 올라있는 347승을 거둔 주인공, 컨트롤의 마술사, ‘Master' 또는 'Professor'라는 명예로운 별칭으로 불리 우는 사나이. 20년 연속 13승 이상을 거두며, 사상 최초로 20년 연속 두 자리 승수 기록 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위대한 선수.

빅리그 연속이닝 무볼넷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다가도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자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태연하게 고의 사구를 던진 괴짜.

15년 연속 15승-200이닝 투구의 빅리그 초유의 대기록이 걸린 경기에서, 달랑 55개의 공으로 5회까지만 던지고 난 후, 기록 달성까지 아웃 카운트 두 개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덕 아웃으로 들어간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의 소유자.(필자는 그 경기를 TV 중계로 보다가 너무나 화가 나는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박살내고야 말았다)


그렇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렉 매덕스(센디에이고 파드레스)다.

라이징 패스트 볼에 관한 지난 칼럼 이후 각 구질별로 메이저리그 최고수를 선정해 칼럼의 주제로 다뤄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그 첫 번째 주인공을 물색하던 중,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선수는 역시나 매덕스였다. 물론 필자의 개인적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임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누구나가 다 인정하듯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고(넉넉잡아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피칭의 마스터’로 불리는 선수다. 최강 구질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칼럼리스트가 아닌 메이저리그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 ‘투심 패스트 볼’ 이란

TV 중계를 보다보면 투수 뒤쪽에서 화면을 잡을 때가 많다. 그때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공이 타자 앞에서 살짝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면(카메라 각도 상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라이징 포심 패스트 볼이다. 그리고 타자 앞에서 조금 떠오르는 듯이 보이다가 다시 꿈틀거리며 살짝 가라앉는 공도 볼 수 있다. 그 공이 바로 투심 패스트 볼이다.

포심(Four-seam)이 네 개의 실밥(seam)을 걸치고(즉 공이 한 바퀴 돌때 실밥이 4번 통과하게끔 쥐고) 던지는 패스트 볼이라면, 투심(Two-seam)은 두 개의 실밥을 걸치고(한 바퀴에 실밥 2번 통과) 던지는 공이다. 동일한 모션으로 구사되지만 공의 회전력과 움직임에서 제법 큰 차이를 보인다.

포심이 무엇보다 앞으로 뻗어나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 3,4킬로 느리게 들어가는 투심은 타자 바로 앞에서 현란한 좌우 움직임을 동반하며 아래를 향해 약간 떨어진다. 투수의 능력에 따라 그 움직임이 적을 수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투수의 경우는 우타자 쪽으로, 좌투수의 공은 좌타자 쪽으로 휘는 경향이 있어 그런 경우 타자에게 더욱 까다롭게 느껴진다. 또한 투심은 타자가 스윙을 한다 하더라도 공의 윗부분을 때리게 되어 땅볼을 유도하는, 때문에 장타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구질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케빈 브라운의 주 무기로 유명한 싱킹 패스트 볼도 투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포심과 투심만 제대로 던질 줄 안다면, 이 대표적인 두 개의 패스트 볼만 제구 할 수 있다면 그 오프스피드와 로케이션을 통해 충분히 시합을 지배할 수 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선수가 바로 그렉 매덕스다.


▷ 90년대 최강의 마구 매덕스의 ‘투심’

90년대 후반의 빅리그를 지배한 구질은 로져 클레멘스의 스플리터였으며, 2000년 초반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구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서클 체인지업랜디 존슨의 슬라이더였다. 98마일의 강속구를 던지는 이들의 주 무기는 모두 변화구(스플리터를 패스트볼이라 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다)다.

하지만 90년대 최고 투수였던 그렉 매덕스의 주 무기는 그의 90마일짜리 투심 패스트 볼이었고, 그 투심은 90년대 최강의 마구였다(지금은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필자의 기억으론 8년 연속 선수 투표에서 1위에 올랐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컨트롤과 로케이션(볼 배합)으로 승부하는 선수로 알고 있지만 90년대의 매덕스는 분명 ‘구위’로 승부하는 선수였다.


매덕스의 볼넷이 왜 적을까? 단지 컨트롤이 좋아서? 결코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스트라이크 존을 좁게 쓰는 선수가 매덕스이며, 자신의 구위를 믿었던, 즉 한 가운데로 공이 몰린다 하더라도 타자들이 자신의 공을 쉽게 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투구하던 선수다. 실제 90년대 매덕스의 투심은 건드릴 엄두조차 내기 힘든 마구에 가까웠다.

정말 컨트롤이 좋은 선수를 꼽으라면 오히려 매덕스보다는 그의 동료였던 탐 글래빈을 꼽고 싶다. 그의 투구를 본적이 있는가? 공 하나하나가 모두 스트라익존 외곽을 찌르며 아슬아슬하게 들어간다. 구위에 자신이 없는 글래빈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컨트롤과 로케이션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글래빈의 볼넷이 적지 않은 수치를 보이는 것도, 그가 빅리그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가장 넓게 쓰는 선수이며,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듯이 코너웍 승부를 즐기기 때문이다.

김병현 때문에라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의 투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70마일의 너클볼이 손에 걸리는 날이면,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는 춤추는 그의 공을 따라가다 같이 춤을 추기 일쑤다.

쉽게 말하자면 매덕스의 투심이 홈 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보여주었던 움직임이 바로 그와 같다. 매덕스의 투심은 너클볼의 현란함을 가진 90마일짜리 패스트 볼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타자들이 그 공 앞에서 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스탠딩 삼진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 시즌 300탈삼진을 잡은 투수들의 그들의 주 무기는 변화구인데 반해, 일반적으로 컨트롤 피처로 알려진 매덕스의 주 무기가 패스트 볼이라니,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게다가 매덕스는 그들보다도 더 많은 스탠딩 삼진을 잡았다. 구위와 제구력, 그리고 로케이션이 더해진 결과다.


▷ 잃어버린 두 가지

2002년을 기점으로 매덕스는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하나는 체력이고, 다른 하나는 구위다. 데뷔 후 15년 동안 평균 12개의 피홈런 만을 허용하며 단 번도 20개 이상을 내준 적이 없던 매덕스는, 2001년 처음으로 20개의 피홈런을 기록하더니 2003년 24개, 2004년 35개, 2005년 29개로 그 개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저 때를 기점으로 평균 투구 수도 90개미만으로 조정이 되었고, 삼진 개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전보다 더더욱 로케이션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고, 예전처럼 한 가운데로 공을 찌르면 타자들은 장타로 연결시킨다. 41살의 매덕스는 여전히 위대하지만, 서글프게도 예전의 강력함은 잃어버린 모습이다.

젊은 시절 95마일의 강속구를 던지던 매덕스가 그것을 포기하고 80마일대 후반의 완벽한 제구가 되는 패스트 볼러로 변신하여 빅리그 최고 투수로 성장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그 때도 최고 구속은 90마일을 넘나들었다. 지금은 그것조차 힘들다.

『빌 제임스 핸드북』 2007년 판에 의하면 매덕스의 작년 한 해 패스트 볼 평균 구속은 83.4마일(134킬로)에 불과해 빅리그 전체에서 최하위(1위는 98.6마일의 조엘 주마야)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진 공 중 64.7%는 패스트 볼(리그 10위)이다.

예전만 못한 구위지만 그는 더더욱 직구 승부를 고집한다. 예전보다 로케이션에 더 신경을 써야 함에도, 오히려 볼넷 개수를 더욱 줄이며 쉽게 이닝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지난 5년간 매덕스가 허용한 볼넷은 단 164개에 불과하다.

그가 다른 구질을 던지지 못한다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빅리그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구질을 모두 구사할 능력이 있다. 커브, 슬라이더, 싱커, 체인지업 모두 구사가 가능하다(달리 마스터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맘만 먹으면 수많은 구질을 섞어 던지며 까다로운 승부를 고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진 매덕스는 한 타자에게 두 개 이상의 변화구를 선보이며 승부를 길게 가져갈 마음이 없다. 매덕스가 한 타자를 상대함에 있어 필요한 공은 단 3.28개(당연히 빅리그 1위)며, 그 중 2개는 패스트 볼이다.

어쩌면 그렇게 팔꿈치에 무리를 주지 않는 투구 패턴이 41살의 매덕스로 하여금 여전히 두 자리 승수와 3점대 후반~4점대 초반의 방어율을 기록하는 투수로서 빅리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257승 146패 102완투 34완봉 3551이닝 196피홈런 760볼넷 2524삼진 방어율 2.84

매덕스가 35살이던 2001년까지의 통산 성적이다. 얼마 안 있으면 부상에서 복귀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36)의 작년까지의 성적(206승 방어율 2.81)과 비교해 보라. 삼진을 제외하곤 단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이닝 수 차이는 무려 900이닝이 넘는다. 그럼에도 피홈런(페드로 213)은 더 적다.


▷ 현재 최고의 투심 - 제이크 피비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는 투수 중 가장 위력적인 투심 패스트 볼을 구사하는 선수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에이스 제이크 피비(19승 6패 2.54)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매덕스와 같은 팀 동료이며, 올 시즌은 부족했던 2%를 채우며 투수 3관왕에 빛나는 만장일치 사이영상 수상자로 떠올랐다.

그의 투심이 보여주는 무브먼트는 매덕스 이후로 최고 수준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매덕스와 달리 92.5마일의 직구 평균 구속(NL 5위)을 기록 중인 피비가 던지는 투심은 최고 94마일(152킬로)에 달하는 강속구. 그 위력에 있어서는 매덕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거의 투심만으로 승부하던 2004년에 이미 내셔널리그 방어율 왕에 올랐던 피비는, 부상 이후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까지 연마해 올해 더 강력한 모습으로 팬들 앞에 나타났다.

검색창에 ‘제이크 피비’ 만 쳐봐도 그에 관한 동영상이 수십 개가 검색된다. 랜디 존슨처럼 스리 쿼터의 특이한 투구폼을 가진 피비가 90마일대의 꿈틀거리는 투심으로 삼진을 잡는 모습은 언제 봐도 위력적이다.

다행히도 매덕스가 파드레스와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내년 시즌에도 피비와 함께 할 예정이다. 피비가 매덕스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그에게 ‘피칭’에 대한 더욱 깊은 맛을 배우게 된다면, 앞으로 10년 이상은 리그를 지배할 선수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투심 마스터’의 손에서 또 한 명의 ‘투심 마스터’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