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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끝내주게 상복 없는 선수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7.

메이져리그 최다 홈런 신기록 보유자인 행크 아론은 1954년 신인왕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그로부터 3년 후 44홈런 132타점 118득점 .322/.378/.600의 성적으로 홈런과 타점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1955년부터 1973년까지 19년 연속으로 MVP 후보에 올랐지만 정작 투표에서 1위에 오른 것은 그 한번 뿐이었다.


수많은 타이틀을 따내며 항상 리그 최고 수준을 유지했지만 MVP를 수상할 만큼의 압도적인 성적을 보인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3위에만 여섯 번 오르는데 그쳤다. 배리본즈(7회)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2회)까지 두 번 이상 MVP를 수상한 선수가 28명이나 되지만 그 가운데 홈런왕 아론의 이름은 없다.


탈삼진 기록보유자로 유명한 놀란 라이언은 그보다 더하다. 사이영상 투표에서 여섯 번이나 5위안에 랭크되었지만 한 번도 1위를 기록하지 못해 무관의 제왕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팀이 약해 승수에 비해 패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더 좋은 기록을 낸 투수가 꼭 한명씩은 등장했었다.


현역 선수 중에도 명성만 본다면 한 번쯤은 MVP나 사이영상을 탓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수상하지 못한 선수들이 몇 있다. 모두의 꿈인 MVP와 사이영상 선정에서 정말로 상복이 따르지 않았던 선수들을 나름대로의 순위와 함께 정리해본다.


공동 5위 알렉스 로드리게스 - 03,05시즌 MVP, 96,02시즌 2위

두 번이나 MVP를 수상한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무슨 상복이 없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상을 타지 못한 선수만 상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땅히 타야할 때 타지 못했고, 굳이 자신이 받지 않아도 될 때 상을 받아서 비난을 받는다면 그 또한 상복이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에이로드가 이 순위에 포함 된 것은 바로 이런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 때문이다.


1996년 54더블 36홈런 123타점 141득점 .358/.414/.631 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내고도 ‘팀 내 두 번째 타자는 MVP가 될 수 없다(넘버 원 타자는 그리피)’ 라는 여론에 시달리며 역대 최저 포인트 차이(290:287)로 후안 곤잘래스(47홈런 144타점 89득점 .314/.368/.643)에게 MVP를 내주어야 했다. 이는 이후 호사가들에 의해 ‘잘못된 MVP 선정’의 한 사례로 많은 비판을 받는다.


2002년에도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획득(57홈런 142타점)하며 독보적인 성적을 보였지만 팀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 MVP 투표에서 2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포스트시즌 진출 팀 선수 중에는 MVP를 줄 만한 마땅한 수상자가 없다.’ 라는 이유로 에이로드에게 첫 번째 MVP 수상의 영광이 허락된다.


에이로드의 03시즌 성적은 이전 2년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었고, 팀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 시키지 못한 상황에서의 수상이라 ‘작년에 대한 보상차원이 아니냐’ 는 등 많은 반대여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첫 MVP수상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2005년 팀 성적과 개인 성적 모두 흠이 없는 수준으로 당당히 MVP를 수상한다. 하지만 또 다시 그는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에 벌어지는 포스트 시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으로 상을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시기도 잘 만나야 한다.


공동 5위 알버트 푸홀스 - 05시즌 MVP, 02,03,06시즌 2위

에이로드가 시기를 잘 타지 못했다면, 푸홀스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데뷔 이후 지난 6년간 단 한 번도 MVP 투표에서 4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이 선수는 어쩌면 역대 최연소로 MVP 3회 수상의 위업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기록은 스텐 뮤지얼의 28세)


하지만 안타깝게도 푸홀스의 경쟁 상대는 위대한 4년을 보여주고 있던 배리 본즈였다. 2002년과 2003년 어디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본즈의 아성을 넘을 수 없었다. 전년도의 보상 같은 것도 바랄 수 없었을 만큼 당시 본즈는 압도적이었다.


본즈가 부상으로 풀 시즌을 뛰지 못한 2005년이 되어서야 MVP를 수상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는 푸홀스가 데뷔 이후 가장 성적이 나빴던 해였다. 작년에도 몬스터 시즌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후반기 부진으로 라이언 하워드에게 자리를 내주며 2연패에 실패, 그 불운을 이어간다.


푸홀스 정도의 선수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겠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본즈의 약물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니, 앞으로 드러날 진실여부에 따라(과연 진실이 밝혀질 지는 의문이지만)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지도 모른다.


4위 마이크 피아자 - 96,97시즌 2위, 00시즌 3위

MVP 3회 수상자 중에는 뉴욕 양키스를 10번이나 우승으로 이끈 전설의 캡틴 요기 베라와, 단 10년간의 선수생활로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등극한 로이 캄파렐라(통산 242홈런 856타점 장타율 .500)가 포함되어있다. 빅 레드머신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자니 벤치도 2번의 MVP 시즌을 보냈고, 심지어 피아자의 라이벌인 이반 로드리게스도 1999년에 MVP를 수상했다.


그들이 MVP를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타격의 뛰어남과 동시에 포수라는 포지션이 플러스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피아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 네 명의 공격력을 훨씬 능가해 이미 ‘역대 최고의 포수’ 라는 소리를 듣는 피아자는 결국 무관의 제왕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95년 .346의 타율(리그 2위)과 함께 1.006이라는 포수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OPS를 기록하며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지만 신시네티 레즈의 ‘캡틴’ 배리 라킨 등에 밀리며 4위에 그쳤고, 36홈런 105타점을 기록한 96년에도 훗날 약물로 인한 기록이었음이 드러났던 켄 캐미티니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캐미니티는 약물로 인한 후유증으로 2004년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97년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선수 중 마땅한 수상자가 없는 가운데 래리 워커(49홈런 130타점 143득점 .366/.452/.720)와의 경합이었지만 역시나 큰 점수 차로 패하고 말았다. 워커의 성적은 MVP로 전혀 손색이 없었지만, 워커의 홈구장이 쿠어스 필드였다는 점, 무엇보다 피아자의 저 97시즌 성적(40홈런 124타점 104득점 .362/.431/.638)이 역대 포수 최고 시즌으로 평가 받는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이 또한 에이로드의 96시즌과 함께 그동안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MVP 수상 경력이 없으면서도 MVP투표에서 피아자보다 많은 표를 받은 선수는 500홈런 달성자인 에디 머레이 뿐이다. 머레이는 시즌 최다 홈런이 33개일 정도로 다른 거포들에 비해 다소 가늘고 길게 선수 생활을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피아자의 경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3위 커트 쉴링 - 01,02,04시즌 2위

피아자가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고도 MVP를 받지 못한 선수라면, 쉴링은 역대 사이영상을 받지 못한 선수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선수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요한 산타나에게 밀린 97,04시즌은 어쩔수 없지만, 랜디 존슨과 경합을 벌였던 두 번은 너무나도 아쉬운 결과였다.


2001년 쉴링은 257이닝 동안 293개의 삼진을 잡으며 22승 6패 2.98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무려 372개의 탈삼진과 함께 21승 6패 2.49를 기록한 랜디에게 밀린다. 2002년에도 259이닝을 던지며 316개나 되는 삼진을 잡고 23승 7패 3.23의 좋은 성적을 보이지만, 투수 3관왕에 오른 랜디(260이닝 24승 5패 334삼진 방어율 2.32)가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한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도 성적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투구 내용에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그 외 팀을 연패에서 끊어주는 능력 등에서는 쉴링이 오히려 랜디보다 공헌도에서 앞섰다. 게다가 2년 모두 시즌 종료 한 달 정도를 남겨놓은 시점에서는 쉴링의 사이영상 수상이 더 유력했었다. 다만 시즌 막판 쉴링의 부진과 랜디의 대선전이 겹쳐지면서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 뿐이다.


특히 02시즌의 경우 마지막 9월 한 달간 방어율 5.87로 무너지며 마지막 4경기에서 승을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아쉽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뛰어난 활약을 증명하듯 스포팅뉴스는 2년 연속으로 ‘올해의 투수’로 쉴링을 선정했고, 기타 각 언론사에서 주어지는 많은 상들의 주인공도 다름 아닌 쉴링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상을 비롯해 월드시리즈 MVP까지 거머쥐었다 하더라도, 사이영상을 받지 못한 아쉬움은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위 마이크 무시나 - 99시즌 2위, 92,94시즌 4위

언제나 리그 최고의 투수를 선정할 때면 그 후보군에 있는 선수 중 한 명인 마이크 무시나도 사이영상 수상 경력이 없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이영상에 근접한 적도 없다. 유일하게 2위에 올랐던 99시즌(18승 172삼진 3.50)은 투수 3관왕(23승 313삼진 방어율2.07)에 오르며 만장일치 수상을 한 페드로 마르티네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리그 내에서도 항상 엘리트급 에이스로 평가 되어 왔고, 매덕스의 뒤를 이어 1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고 있는 무시나지만, 단 한 번도 20승을 달성하지 못하는 등 큰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 쉴링 만큼의 우승경력도, 핏빛 투혼과 같은 강인한 인상도 심어주지 못했다.


볼티모어 시절에는 약체팀의 강한 에이스로서의 인상이라도 남겼지만, 우승을 위해 양키스에 몸을 담은 이후에는 우승은커녕 사이영상과도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무시나를 쉴링보다 높은 순위에 랭크시킨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통산 243승을 거두는 등 쉴링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무시나지만, 정작 내놓을만한 타이틀이라곤 1995년의 다승 1위(19승)가 전부다.


때는 페드로, 클레멘스와 함께 아메리칸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였지만, 이제는 팀 내에서도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무시나는 은퇴 이후 버트 블라일레븐처럼 꾸준하기는 했지만 최고라고 평가받지는 못했던 투수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1위 매니 라미레즈 - 99,04시즌 3위, 05시즌 4위

메이져리그 팬 중에서도 알버트 푸홀스보다 앞서 ‘괴물’이라 불렸던 이 위대한 타자가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정말로 많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165타점을 기록했던 1999년의 MVP 수상자를 매니로 알고 있지만, 그 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퍼지’ 이반 로드리게스였다.


매니가 MVP를 수상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잦은 부상과 강한 팀 동료들 때문이다. 포스트 시즌을 밥 먹듯이 진출했던 클리블랜드 시절에는 알버트 벨과 로베르토 알로마를 비롯 데이빗 져스티스, 짐 토미 등이 함께했고, 보스턴으로 이적한 후에도 데이빗 오티즈라는 또 하나의 괴물이 나타났다. 오티즈는 매니와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성적을 보이며 오히려 매니보다 더 많은 표를 가져갔다. 매번 팀원끼리 표가 갈리는 바람에 매니는 MVP 투표에서 2위에도 오른 적이 없다.


잔부상만 아니었더라도 그가 지금쯤 두 번 정도의 수상경력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평균 38홈런 121타점을 기록한 지난 12년 동안 매니의 평균 경기 수는 142경기, 평균적으로 해마다 20경기나 결장한 것이다. 특히 38홈런 122타점 .351/.457/.697의 성적을 보인 2000년도에 그가 출장한 게임은 118경기에 불과하다. 150게임만 나왔더라도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과 관계없이 MVP 판도를 뒤흔들 수 있었을 시즌이었다.


앞서
언급한 에디 머레이를 비롯, 멜 오트(511홈런 1860타점)나 데이브 윈필드(465홈런 1833타점) 그리고 알 시먼스(통산타율 .334 1827타점)같은 위대한 타자들이 MVP를 수상하지 못한 최고의 선수들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매니 라미레즈와 비교한다면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이대로 MVP를 수상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면, 매니 라미레즈는 피아자와 함께 MVP를 수상하지 못한 선수 중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